청구인의 청구를 기각한다.

by 해림

“청구를 기각한다.”

공공기관의 처분이 정당했음을 알리는 행정심판 재결서의 그 한 문장을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내뱉었다. 드디어 이겼다. 2월 새 학기 준비로 분주해 잠시 잊고 있었던 찰나, 누런 행정 봉투는 예기치 못한 선물처럼 날아와 미칠 듯한 환희를 안겨주었다.


지난해 9월, 이곳에 교감으로 부임했을 때 학교는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였다.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회장 완장을 찬 한 노인의 횡포로 학교의 행정 기능은 마비될 지경이었고, 일요일마다 수업을 맡던 교사들은 깊은 무력감과 패배감에 침잠해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그는 거주하는 아파트에서도 악명 높은 악성 민원인이었으며, 이전 학교에서는 교사를 무릎 꿇려 끝내 명예퇴직하게 만든 전적까지 있는, 그야말로 '악의 훈장'을 단 인물이었다.


그는 추종자들을 거느리며 학생회비를 사적으로 탕진하는가 하면, 학교 운영에 전횡을 일삼으며 사사건건 민원을 제기했다. 교육청에는 학교의 사소한 실수를 부풀려 고발하며 자신의 위세를 증명했고, 교무실을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며 교사들에게 삿대질과 고함을 일삼았다. 유순했던 전임 교감이 그의 기세에 눌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떠돌았다.


부임 첫날,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여자 교감이니 별것 아니겠지’라던 그의 오만한 눈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일요일 수업 날, 아니나 다를까 그가 교무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내 성미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오만함이었다. 나는 즉시 교무실 출입 규칙을 공표해 상담 신청서 없이는 발을 들이지 못하게 엄명을 내렸고, 학생장 무리가 아지트처럼 사용하던 빈 교실들을 모두 폐쇄했다.


갈등은 위탁 급식업체 방문 날 임계점에 도달했다. 그는 자신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업체에 접촉할 수 없다며 정당한 행정 업무를 방해했고, 선량한 노인 학생들을 겁박했다. 나는 지체 없이 학교 업무 방해와 교칙 위반을 근거로 학생회장을 징계하고 해임 처분했다.


외로운 싸움이 될 것을 알았기에 철저히 무장했다. 변호사와 교육청, 심지어 검사인 작은딸에게까지 법적 자문을 구하며 치밀하게 준비했다. 모든 과정은 문서로 남겼고, 대화는 사전 고지 후 녹취했다. 교사들은 속이 시원하다며 손을 맞잡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후에 닥쳐올 보복이 두려워 몸을 사리고 있었다.

그는 길길이 날뛰며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법적 용어를 교묘히 섞어 번듯하게 적어 내려간 그의 청구서에는 본인의 만행은 실종된 채, 공부하려는 노인을 탄압하는 학교의 모습만 왜곡되어 그려져 있었다.


교육청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며 그가 보란 듯이 학생회장직에 복귀하던 날, 그는 내 코앞에서 “내가 이겼다!”며 포효했다. 학교가 겪은 고초를 뻔히 아는 교육청이 왜 그의 손을 들어주는지 원망이 치밀었지만, 행정처분의 효력 정지가 지니는 법적 생리를 처음으로 통감한 뼈아픈 순간이었다.


하지만 악인은 스스로 판 무덤에 빠지는 법이다. 승리에 도취해 복귀한 그는 행사장에서 교무부장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쏟아냈다. 이번에는 참다못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집단 탄원서를 제출하며 그의 퇴출을 촉구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두 번째 징계를 내렸다. 결국 그는 졸업식 날 학생회장이 누려야 할 영예로운 표창장은 고사하고, 졸업식장 근처에도 얼씬하지 못한 채 불명예스럽게 교문을 떠났다.


주변에서는 교장 발령을 앞둔 늙은 여교감이 조용히 떠나지 왜 굳이 험로를 자처하느냐는 우려 섞인 비난도 있었다. 자칫 내 인사 기록에 오점이 생길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쥐꼬리만 한 감투를 권력 삼아 성스러운 교육 현장을 유린하는 인간을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학교가 이토록 망가져 있는데, 무사안일하게 얻어낸 교장 승진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가 떠나자 그를 추종하던 무리도 신기루처럼 기세가 꺾였다. 이번 징계는 단지 한 개인에 대한 처벌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처받은 교사들에게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치유의 과정이었고, 방통고 학생들에게는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가장 살아있는 교육이었다. 늦깎이 학생들에게 다시 평온한 교실을 되찾아준 것만으로도 나는 소임을 다했다고 믿는다.


이 일을 겪으며 나는 관리자의 자리가 지니는 무게를 다시금 절감한다. 관리자란 때때로 비난의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고독한 결단의 사막을 건너야 하는 존재다. 만약 내가 비겁하게 고개를 숙였더라면 몸은 편했을지 몰라도, 무너진 교권을 외면했다는 부채감은 평생 나를 따라다녔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진정한 권위는 완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려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재결서에 적힌 "청구를 기각한다"는 그 짧은 문장은, 나에게 교장으로서 당당히 걸어갈 수 있는 첫 번째 자격증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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