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는 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

정전 사고가 남긴 숙제, 재난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성숙한가

by 해림

"교장선생님! 학교에 정전 사고가 났습니다."

아침 출근길, 교감 선생님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학교 뒤쪽 야산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학교 전체 전기가 끊겼다는 보고였다. 전기안전 담당자와 연락해 오는 중이라지만, 서둘러 도착한 학교는 이미 폭풍 전야였다. 시설 주임의 보고를 받으니 머리가 띵했다. 이 무더위에 전기가 안 들어오면 에어컨은 물론 급식조차 불가능하다.


그런데 기가 막힌 건 한국전력에 고장 신고조차 안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학교 전기 담당자가 당연히 했을 거라니! 나는 속에 천불이 나 직접 신고 전화를 걸었다. 인근 아파트도 동시에 정전되었다는 답이 왔다. 교육지원청에 상황을 알리고, 9시 30분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귀가 조치하겠다고 보고를 마쳤다.


그 사이 비탈길을 걸어 올라온 학생들은 아수라장이었다. 전등도 에어컨도 없는 교실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벌써 가방을 메고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와 "집에 보내줘!"라며 시위를 벌였다. 일과 시작 전인데도 학교는 폭발 직전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모두가 교장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귀가시키면 수월하겠지만, 1교시 시작 전 조치도 없이 보내는 건 학부모 민원이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오늘 휴업하면 수업 일수를 채우려 방학을 하루 미뤄야 하고, 이미 조리를 시작한 급식 재료들은 모조리 쓰레기통으로 가야 한다.


나는 한전 직원들이 작업 중인 옆 아파트로 전기 담당자를 데리고 직접 달려갔다. 전화로만 확인하기엔 내 속이 너무 타들어 갔다. 곧 해결된다는 확답을 듣고서야 교사 단톡방에 공지를 띄웠다.

드디어 9시 25분, 전기가 들어왔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인터넷 네트워크까지 복구되자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나는 마이크를 들고 전체 방송을 시작했다. 상황을 개략적으로 설명하고 불편을 겪게 해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기후 변화로 폭염과 폭우 같은 재난이 빈번한 시대입니다. 오늘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좀 더 침착해져야 합니다. 앞으로 에어컨이 안 되는 일보다 더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는데, 그때마다 흥분하고 날뛰면 모두의 안전이 위협받습니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길 부탁합니다."


큰 불은 껐으나 잔불이 남았다. 집에 갈 찬스를 놓친 학생들은 "에어컨 없이 한 시간 있었더니 두통이 온다"며 담임과 보건실을 괴롭혔다. 일부는 교장실까지 쑥 들어와 의자를 젖히고 앉아 빚 독촉하는 채권자처럼 집에 보내달라 하소연했다. 나는 보건교사와 담임들께 정말 상태가 좋지 않은 학생은 부모와 연락해 귀가시키도록 조치했다.


한전 확인 결과, 원인은 조류 접촉에 의한 사고로 짐착된다고 했다. 한 달 전 150만 원을 들여 전봇대 옆 나뭇가지를 모조리 쳤는데도 이런 일이 생긴다. 그 사이 학부모들은 민첩하게도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고, 장학사까지 달려왔다. 민원 대응까지 마치고 나니 정전 사태가 비로소 종결되었다.


나는 행정실장, 교감과 회의를 열어 정밀 점검을 지시하고, 실망한 학생들을 위해 전교생 아이스크림 배달을 건의했다. 아이들이니 무조건 이해만 구하기보다 입에 시원한 걸 넣어주어야 마음도 풀릴 것 같았다. 오후 2시, 아이스크림이 도착하자 원망 섞인 눈초리들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내일도 정전돼서 아이스크림 먹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반응에 그제야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오늘 소동을 겪으며 미래가 두려워졌다. 에어컨 없는 한 시간을 견디지 못해 폭도로 변할 뻔한 아이들이, 만약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황폐해진 지구를 마주한다면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재난 대응 방식을 가르치는 일이 교장의 무거운 숙제로 남았다. 역시 36도 더위보다 아이들이 훨씬, 훨씬 무섭다!


[선생님들께 보낸 전체 메시지]

교감 선생님께서 출장 중이시라 제가 메신저 보냅니다. 아침 정전 사고로 학생들 관리하시느라 선생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종적으로 한전에서는 원인 불명 혹은 조류에 의한 피해로 짐작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대비를 해도 이런 상황은 다시 발생할 수 있을 겁니다.

극한의 기후가 잦아지는 환경에서 재난 대응 교육이 절실해 보입니다. 제가 방송으로 짧게 언급했지만, 선생님들께서도 기회 있을 때 좋은 말씀으로 지도 부탁드립니다. 물론 시설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도록 항시 점검하겠습니다.

오늘 상황을 잘 넘긴 덕분에 수업 일수 조정을 위해 방학을 연기하지 않게 된 점은 다행입니다. 학생들이 어려운 시간을 잘 참아주어 고마운 마음으로 아이스크림을 준비했습니다. 선생님들도 학생들과 함께 하나씩 드시고 조금이라도 더위를 잊으시면 좋겠습니다.

교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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