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주차와 행정 무관심 사이, 위태로운 등굣길 풍경
"방법이 없습니다."
교육청과 구청 담당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내뱉는 이 한마디에 내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학기 초, 구청장과 실무 과장들을 직접 만나 학교의 사정을 간곡히 전했다. 최소한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등굣길만이라도 불법 주차 단속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차가웠다. '주차단속 유예구역'이라 불가하다는 행정의 논리뿐이었다. 변화가 없어 골목 모퉁이만이라도 단속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메아리는 없었다.
60년 된 산중턱 학교, 벼랑 끝에 선 아이들
우리 학교는 60여 년 전 산중턱에 지어졌다. 과거의 학교들이 대개 그러했듯 풍경은 좋을지 모르나, 아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등굣길은 가혹하다. 학생들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급경사로를 올라 정문에 들어선다. 가파른 경사보다 무서운 것은 길목마다 무질서하게 들어선 차량들이다. 아이들은 주차된 차들 사이를 곡예하듯 비집고 등교한다.
이곳은 이미 비극의 기억을 품고 있는 곳이다. 과거 두 차례의 대형 사고가 있었고, 2018년에는 경사로를 내려가던 차량이 주택을 들이받아 귀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급브레이크를 밟아도 제동거리가 확보되지 않는 공포의 경사로. 그 아래 골목은 상시 주차된 차량들로 숨이 막힌다.
출근하는 교사들의 차량과 골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주민들의 차량, 그리고 그 사이를 걷는 아이들. 매일 아침 학교 앞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럼에도 구청은 말한다. "주차 유예구역이라 단속이 어렵다." 심지어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인데 강제적으로 하긴 어렵다"는 말까지 보태질 때면 내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중학생의 생명은 행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도 된다는 말인가.
베테랑 지킴이와 교사들의 '사투'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건 사람이다. 수년째 학교 앞을 지켜온 베테랑 안전 지킴이 선생님은 노란 조끼를 입고 사방팔방을 살피며 교통정리를 하신다. 마치 머리 뒤에도 눈이 달린 듯 능숙하게 아이들을 보호하신다.
경사로 위 정문에서는 교사들이 등교 지도를 한다. 복장 점검이나 지각 체크보다 중요한 임무는 '길 확보'다. 급경사를 치고 올라오는 차량과 등교하는 학생이 엉키지 않도록 사력을 다해 통로를 만든다. 다른 학교 교장들도 그렇겠지만, 나는 매일 아침 머리카락이 바짝 서는 긴장감 속에 하루를 시작한다.
"방법이 없다면 폐교시켜 주십시오"
답답한 마음에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해결책을 묻지만 대답은 늘 '불가'였다. "우회도로 신설은 어렵습니다." "주차 유예구역이라 단속 못 합니다." "공영주차장은 예산이 없습니다." "경사로 때문에 리모델링도, 개축도 안 됩니다."
심지어 화재가 나도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렵다는 말에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교육청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뼈아픈 진심을 내던졌다. "개축도, 증축도, 안전 확보도 모두 불가하다면 차라리 빨리 폐교시켜 주십시오!"
'높으신 분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말을 내뱉는 교장은 처음 본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교장으로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기다림이 아닌 행동으로
나는 출근길마다 직접 만든 주차 금지 협조문을 골목 코너 주차 차량에 꽂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와이퍼에 끼워진 안내장은 조금씩 효과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며칠 전 보았던 1톤 트럭이 오늘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구청 담당자는 그제야 먼지 쌓인 공문을 찾아내며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왜 답신조차 없었느냐는 물음에는 침묵이 흘렀다. 나는 단호하게 요구했다. "지금 당장 이 차량을 단속해 주십시오. 우리가 직접 안내장을 돌리며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담당자는 현장 조치를 약속했다. 아침마다 경고장을 발부하겠다는 임시방편을 내놓기에 나는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경고장은 찢어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제대로 된 '불법주정차 단속구역' 표지판을 설치해 주십시오."
명절 연휴가 지나면 꼭 설치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내고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도 입을 싹 닦을지, 아니면 정말 아이들의 안전에 귀를 기울일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아이들의 등굣길은 '유예'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협할 수 없는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