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색종이 접기를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어릴 적 누구나 접던 종이비행기 만드는 법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런 내가 어제는 유튜브를 뒤져가며 하트와 튤립 접기를 독학했다. 오늘 손녀를 만나면 함께 색종이를 접으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손녀는 나만 보면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장난을 친다. 큰딸은 아이가 집에서는 차분하게 책도 읽는데, 할머니만 만나면 지나치게 흥분한다며 은근슬쩍 내게 누명을 씌운다.
손녀를 위해 등골이 빠지도록 놀아주는 나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참다못해 비장의 무기로 꺼낸 것이 바로 색종이 접기였다. 나를 그저 덩치 크고 힘없는 장난감으로 여기는 손녀의 관심을 돌릴 ‘잔머리’였다.
손녀와 마주 앉아 하트도 접고 튤립 꽃다발도 만들었다. 아이는 제법 색상 대비를 이해하며 어울리는 종이를 골라왔고, 가위와 풀도 척척 대령하며 열중했다.
그 와중에 열 개월 된 작은 손녀는 우리 주변을 맴돌며 색종이를 물어뜯고 크레파스를 씹어 먹었다. 급기야 테이프 뭉치를 입에 넣는 바람에 그걸 빼내려다 내 손가락을 물리기도 했다. 귀여워도 너무 심하게 귀여운 방해꾼이다.
우여곡절 끝에 튤립 꽃다발이 완성되었다. 아이는 대만족 하며 꽃다발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사위가 차려준 파스타와 묵사발을 맛보며 나는 딸 식구들의 풍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퇴근한 큰딸은 종일 일하느라 말할 곳이 없었는지, 학창 시절 친구 이야기를 남편에게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사위는 묵묵히 밥을 먹으면서도 아내의 수다를 성실하게 받아주었다. 옆에서 듣는 내가 봐도 딸이 지나치게 말이 많다 싶던 찰나, 밥을 떠먹던 손녀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엄마,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았다. 평소 입에 지퍼라도 채워야 할 정도로 조잘대던 손녀의 그 입담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범인은 바로 엄마인 내 딸이었다.
무섭기도 해라. 자식은 부모를 그대로 찍어내는 레이저 복사기다. 요즘 손녀가 사용하는 말투는 여지없이 내 딸의 그것과 똑 닮아 있다.
두 모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과거 내가 두 딸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이 스멀스멀 떠오르려 했다. 하지만 나는 얼른 그 기억의 뚜껑을 꽉 눌러 닫아버렸다.
이제 와서 끄집어내 봐야 무엇하겠나. 나는 당시의 기준에서 최선을 다했고, 180도 달라진 지금의 잣대로 부족했던 과거의 나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어른이 된 두 딸의 모습이 곧 나의 자화상일 테니까. 기특한 모습이든 꼴 보기 싫은 모습이든 모두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니, 그저 유구무언(有口無言) 할 뿐이다.
오늘도 나는 거실에 나란히 앉은 두 모녀를 보며 다시 한번 되뇐다. 그래, 모전여전(Like mother, like daughter)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