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선생님, 책상 위 모니터는 큰 걸로 바꾸셨나요?”
교감 연수 동기인 여고의 모 교감 선생님께서 저녁 무렵 전화를 주셨다. 내가 목디스크로 병원을 전전한다는 소식을 들으셨는지, 수화기가 터질 듯한 기세로 잔소리 폭격을 퍼부으신다.
“저번에 노트북 놓고 쓰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면 안 됩니다. 당장 큰 모니터 설치해달라 하세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업무 보셔야 한다니까요!”
사실 지난 학기, 행정실에서 나를 위해 큰 모니터를 마련해 준 적이 있었다. 더 고생하는 선생님들께 먼저 드리라 사양했지만, 행정실에서는 “나이 들어 눈 침침한 교감님부터 쓰셔야 한다”며 기어코 설치해 주었다.
그러다 일과 시간표를 짜느라 눈이 빠질 듯 고생하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곤, 얼른 내 모니터를 떼어 드렸다. 동기 선생님은 그 사소한 곡절까지 기억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전화를 끊고 3분이나 지났을까, 다시 벨이 울린다. “매일 오는 공문, 설마 일일이 다 읽으시는 건 아니죠? 부장님들이 다 살피고 계시니 그거 다 직접 처리하려고 하면 병납니다.
아프면 누가 알아주나요? 남편도 싫어해요. 이 자리 오려고 우리가 얼마나 용쓰며 버텼는데, 절대 아프시면 안 됩니다!”
걱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으로 변할 기세다. 살면서 누가 나에게 이토록 살뜰하고 절절한 잔소리를 해준 적이 있었던가. 언니도, 여동생도 없는 나에게 이 짜랑짜랑한 꾸짖음은 사무치게 그리웠던 온기였다.
목 주변에 주사를 여덟 대나 맞고 온 터라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괴로웠지만,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분의 걱정에 서러운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다.
비단 이번 일뿐만이 아니다. 산더미처럼 밀려드는 업무 속에서 내가 허우적거릴 때마다, 그분은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 업무를 더블 체크해 주시는 '우렁각시' 같은 묘기를 발휘하곤 하셨다.
내가 큰 과오 없이 직무를 수행해 온 데는 이분의 보이지 않는 조력이 절대적이었다.
옛글에 이런 말이 있다.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사귀어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낯선 사이가 있는가 하면(백두여신, 白頭如新), 길에서 우연히 만나 양산을 기울이고 잠시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평생 본 사람처럼 깊은 사이가 있다(경개여고, 傾蓋如故).
평생을 알고 지내도 마음 한 조각 나누기 힘든 인연이 있는 반면, 알게 된 지 고작 몇 년 만에 부모 형제보다 내 마음을 더 깊이 읽어주는 분이 있다.
같은 자리에 앉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성토할 대상마저 비슷하니 억장이 무너질 때면 함께 핏대를 올리며 위로받는 사이. 나보다 두 살 아래의 아담한 체구지만, 그분에게서 풍기는 강인함은 거인과 같고 단호한 태도는 태산처럼 믿음직하다.
지치고 고달픈 날엔 그분의 든든한 등 뒤에 살짝 숨어 잠시 쉬어가고 싶어진다.
삭막한 일터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건 어쩌면 세련된 위로보다, "제발 자기 몸 좀 돌보라"는 그분의 투박하고도 뜨거운 잔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교감으로 근무할 때 적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