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분석보다 중요한 자기 분석

중년 창업을 고민하는 벗들에게 1.

by 고굽남

선택의 길 위를 걷는다.

나는 그 길에서 신중함이나 철저한 준비가 없었다. 직장에서 늘 작성했던 조사와 연구 보고서가 내 삶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수없이 작성했던 예측 모델링과 리스크 관리가 내 삶에는 없었다. '영감'이라고 표현되는 '끌림'. 신뢰 있는 지인의 추천과 소개. 우연한 계기 등이 내 삶의 선택을 결정했다. 그래서 선택은 늘 가벼웠다. 지나고 나면 경솔했다는 후회도 밀려오고 좌절과 실패가 있었어도, 선택하는 그 순간에는 흥분과 설렘이 가득했다.


어쩌면 모든 '선택'은 원래부터 '후회'를 한편에 껴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나 보면 객관적 통계들과 비교분석의 정보들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통계도 정보도 아니다. 그저 지금 현재의 상태이다. 제한된 시공간과 지식과 정보,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 선택을 이끈다. 그래서 완벽한 후회 없는 선택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모든 선택은 항상 옳을 수도 있다. 다만 삶은 그 선택을 책임질 뿐이다. 고통이 요구되면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다. 버겁고 힘들면 인내하며 버티는 것이다. 모든 내적 에너지와 힘을 쥐어짜듯 총동원해서라도 견뎌내고 살아내는 것이다. 때로는 달콤한 열매를 삼키기도 하고, 명예로운 성취로 내 삶의 숭고한 가치를 빛내기도 한다. 다만 서글픈 것은 50대 이후의 선택은 재도전하고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삶에서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처럼 서글픔이 있을까?


새로운 가능성이 줄어드는 50대 인생에서 '선택'은 쉽지 않다. 신중해야 하고 반드시 체크리스트를 챙겨야 한다. 지나 보니 명확해진다. 특히 50대에 새로운 영역에서 사업을 시작하거나, 자영업을 하겠다면은 더더욱 체크리스트를 챙겨야 한다.


"객관분석보다 중요한 주관측정"


우리는 흔히 새로운 사업이나 도전을 할 때, 객관적 상황을 분석하고 파악하려 한다. 시장조사를 하고, 상권분석을 하고, 입지를 알아보고, 경기흐름과 동향을 살피려 하고, 최근 트렌드도 알아본다. SWAP분석이나 각종 비교지표를 동원한다. 필수적이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너 자신을 알라'이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지. 돈을 벌기 위함이라는 단순한 목적, 이면에 숨어 있는 내면의 상태를 객관화하고 측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돈도 돈이지만, 불안했다. 나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 될 거 같은 불안. 아이들에게 무능력한 아빠의 모습으로 비칠 거 같은 불안. 인생의 실패자 낙오자로 낙인찍힐 거 같은 불안. 수도 없이 많은 불안의 항목들을 끄집어내서 활짝 펼쳐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하나 펼쳐서 빤히 살펴보아야 한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해석인지.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허상인지. 무엇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약점으로 작용하는지. 나의 불안과 걱정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지혜가 요구된다.


불안과 걱정이 많으면, 휩싸인다. 그래서 객관적 지표와 시장분석의 통계보다 나의 주관을 앞세우게 된다. 창업시기를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하게 되는 실수를 범한다. 불안함, 나아가 두려움은 추진력과 부지런함, 성실함의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약점과 오류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조급함 때문에 더 좋은 상권의 매장을 기다리지 못했다. 지금 당장 매물만 보고 그 안에서 선택했다. 더 좋은 매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없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임대계약에서 좀 더 낮은 가격으로 협상하지 않았다. 잘 보이고 싶은 욕망에, 오픈 2개월 전부터 직원을 고용해서 인건비 지출을 과도하게 지급했다. 있어 보이고 싶어서 근로계약을 할 때도 업계 평균에 비해 1.5배나 높은 임금을 책정했다. 이로 인해 난 목돈을 모을 기회를 놓쳤다. 22년 말 오픈시기에는 코로나 이후 보복소비로 내수경기가 좋았다. 매일 만석이었다. 최고 매출을 기록하고서도 손에 쥐는 것은 내 인건비 수준밖에 안 됐다. 오픈 시기에 지금처럼 불황의 시기였다면, 난 6개월도 안 돼서 파산했을 것이다. 나의 불안, 걱정, 그리고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들, 인정받고 싶은 것들. 이런 주관적 요소들이 결국에는 객관적 분석보다 성공과 실패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관적인 내면을 끄집어내고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창업준비에 가장 중요하고 1차적인 요건이다.


하기 싫으면 안 해야 한다


50대 이후의 중년은 변화가 녹록지 않다. 내 생각과 주관이 강해지면 강해지지, 약화되거나 유연화되기가 쉽지 않다. 작은 '화' 조차도 누그러뜨리는 것이 쉽지 않다. 오랜 명상과 마음수련을 해도, 때론 통제불능의 '화'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년의 창업은 나의 적성, 나의 성격, 나의 몸과 심리상태에 어울려야 한다. 나에게 맞는 것을 찾는 제일 쉬운 방법은 단 1주일, 아니 단 하루라도 해당분야에서 일해 보면 된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무급으로라도 경험하게 해달라고 하던, 원하는 분야에서 꼭 먼저 경험을 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맞춤복을 입은 것처럼 맞아야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물어봐야 한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처럼 세차일을 잘하고, 잘한다고 인정받아야 한다.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야 한다. 최소한 싫지는 않아야 한다. 매일 출근할 때, 최소한 '지긋지긋하다', '또 힘든 하루'라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즐겁고 신나는 하루는 아니더라도,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하루는 아니어야 한다.


난 고기 굽고,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것이 좋았다. 또 나와 어울리다고 경험해 왔다. 어느 순간부터 집안일이 싫지 않았다. 설거지는 항상 내 몫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싱크대에 산처럼 쌓인 그릇을 보면, 곧바로 달려가서 설거지를 했다. 이상하게 설거지는 아무리 해도 지겹지 않았다. 고기 굽고 자르는 것도 재밌었다. 회사 회식에서 어린 사원들이 있어도 고기는 내가 직접 구웠다.

4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면서, 단 하루도 '지긋지긋한 일', '빨리 그만두고 싶은 일'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손님이 많으면 몸이 힘들기는 하지만, 마음은 신났다. 주방업무, 홀서빙, 고기 굽기.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어울렸다.

창업시장을 분석하고 트렌드를 살펴서, 돈을 더 많이 벌 거 같은 업종을 선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중년의 창업은 하기 싫은 업은 안 해야 한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까지 반드시 해야 할 업종은 없다. 트렌드와 시장은 늘 변화한다. 지금 돈이 돼도, 내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나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운영해야 하는 베이커리업종은 싫었다. 학부모를 상담해야 하는 사교육 업종도 싫었다. 하루 종일 영업하는 커피가게도 싫었다. 배달이 중심인 업종도 싫었다. 분석하고 전망하는 일들, 머리 써야 하는 마케팅, 홍보 등의 일도 싫었다. 컴퓨터업무는 다 싫었다. 처음부터 맨바닥에 헤딩하는 스타트업도 싫었다.

매일 매 순간 항상 즐겁고 신나는 일은 없다. 그러나 매일 싫고 매 순간 짜증 나는 일은 안 해야 한다. 돈이 되니깐, '지금이 기회이니깐', '상황과 여건상 이것이 최선' 등의 창업동기는 청년에게는 어울릴 수 있다. 중년의 창업은 다르다, 싫은 일은 안 해야 한다. 스트레스가 반복되는 일은 안 해야 한다. 마음에 상처 주고 정신적 아픔이 반복되는 일은 안 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어울리고 좋아하는 일을 찾자. 최소한 싫은 일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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