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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Sep 11. 2021

경계점 찾기

<고슴도치 X> 노인경

 초임 교사 시절 아이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곤란했던 기억이 몇 번 있다. 이를테면 ‘일기는 왜 써야 해요?’ ‘공부는 왜 해야 해요?’ ‘복도에서 왜 뛰면 안 되죠?’ 같은... 학교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아이에게는 아니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난 대체로 어른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자랐다. 그래서 이런 의문을 안 가졌던 걸까. 물론 아이들이 하기 싫은 마음을 질문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지만 그 질문에 답을 쉽게 할 수 없었던 건 그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단 의미다. 아이들에게 일기를 쓰라 하면서도  왜 써야 하는지 고민 없이 숙제로 내줬던 것이다. 학급 담임을 맡을 때는 교실을 꾸려나가기 위해 학기 초반에 학생이 해야 할 것들을 미리 정해두는 게 필요하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건 이 과제를 왜 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이다. 가령 일기가 중요한 이유라든가, 일주일에 몇 번을 써야 하는지, 일기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에는 뭐라고 답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경계점 찾기’였다. 학습이나 성장 과정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어디까지인지, 아이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해줘야 하는 건지, 교실의 규칙과 학생의 자유란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슴도치 X>는 사회가 요구하는 규율과 개인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고슴도치 사회 '올'에서는 가시를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 고슴도치에게 가시는 자신임을 드러내는 개성이지만, 가시를 드러내면 서로를 다치게 할 수 있으니 감추라 한다. 따라서 이 사회는 어떤 존재도 절대 튀지 않고,  가시를 세우지 않으니 위험도 없다. 그렇다면 '올'은 모든 안전이 보장된 ‘유토피아’인가.


 주인공은 아무리 부드럽게 하려 해도 튀어나온 몇 가닥 가시 때문에 도서관 청소를 하게 된다.  청소 중 도서관에서 우연히 밀봉돼 있는 책을 꺼내 읽게 된다. 그 책은 뾰족한 가시를 가진 고슴도치의 이야기다. 맑은 못이 있는 곳에 정체불명의 돌이 날아와 물줄기를 끊어 버리는데 고슴도치 한 마리가 나타나 뾰족한 가시로 돌덩이에 구멍을 내서 물줄기를 되살려준다. 뾰족한 가시를 가진 고슴도치가 영웅이 된 책을 읽은 주인공은 자라나는 가시를 부드럽게 하지 않고 가시를 위해 단련을 시작한다. 자신을 발견하고 탐험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올'이라는 사회에서 숨기고 부드럽게 다듬어야만 했던 가시를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당당히 드러낸다. <고슴도치 X>의 마지막 페이지 귀퉁이에 작가의 말이 쓰여 있다. 


아이들에게는 자기를 알아가고 찾아가고 격려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에게 스스로의 팬이 될 기회를 주세요.                                                                                                                    -노인경


 스스로의 팬이 될 기회라니! 정말 멋진 표현이다. 나는 과연 교실에서 아이들이  스스로를 살펴볼 틈을 줬던가,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교실에서 규칙이라는 명분 아래 아이들이 가진 자신만의 가시를 뾰족하게 만드는 걸 제지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린이를 둘러싼 금기의 목록은 날마다 길어지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그들을 비좁은 품 안에서 키우려고 하고요. 그러나 아무리 부드러운 털실로 아이들을 감싼다고 하더라도 은폐된 공 안에서 아이는 결코 독립된 인격으로 자라지 못합니다. 털실을 풀어 아이를 내보내고 그들이 푸르고 맑은 공기 속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편안히 손을 놓아주어야 하는 것은 어른의 몫이기도 합니다.
                                                                                                             김지은_ 아동문학평론가


 규율과 자유 사이 적절한 울타리를 설정하는 건 어디까지라고 정답이 정해질 수 없다. 해마다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은 바뀌고 저마다 뾰족해지고 싶은 개성은 다르기 때문이다. 금기 목록을 늘려가기보다는 어린이가 탐험해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틈을 주고, 모두 함께 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규칙을 같이 정해가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학교라는 작은 사회가 누군가에게는 뚫고 나가고 싶은 곳이 되지 않도록 교사의 자리에 서서 끝없이 고민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고슴도치 x>(2020) | 노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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