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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Sep 18. 2021

리듬을 잃지 않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외

 '완벽한 하루'란 어떤 하루일까? 나는 제시간에 맞춰 일과가 무탈하게 지나가는 하루를 완벽하다고 느낀다. 가장 평범하고 아무런 에피소드가 없는 날, 그래서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날. 타인에게는 이야기할 거리가 없는 재미없는 날이지만 이런 날이 나에겐 완벽한 하루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날은 생각보다 잘 없다. 사소한 것들이 흘러가는 일과에 어깃장을 놓기도 하고, 아예 흐름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 동안에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아이가 아파 어린이집에 가지 못한 날,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빨래를 해두고 화장실 타일 바닥을 청소하는 날, 집이 잘 굴러갈 수 있게  톱니바퀴에 기름칠을 해야 하는 날은 책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갖기 어렵다. 하고 싶은 일과 꼭 해야 하는 일을 병행해야 하는 날들이 많다. 그럴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을 떠올린다. 깜깜한 밤이 돼서야 눈을 비비고 리듬을 찾기 위해 탁자 앞에 앉는다.


 육아를 하면서 내게 절실했던 건 나만의 시간이다. 계획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 일과 중 적은 퍼센트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계획이 중요하다. 계획 없이 찾아온 자유 시간에는 분단위로 끊어할 수 있는 일들을 주로 했다. 넷플릭스를 보거나 인스타그램을 했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드라마를 섭렵하면서 잊고 있던 문학에 대한 감수성을 되찾곤 했다. 또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어떤 신간이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검색했다. 빈둥거리는 시간에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니 나는 '읽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계획된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자는 마음은 강했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다. 모로 누워 드라마를 보거나 엄지손만 쓰면 볼 수 있는 핸드폰 속 많은 이야기들은 '읽는 삶'으로 가는 길을 막아섰다. 엉덩이를 붙이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건 참으로 어렵다. 앉아 있다가도 입금해야 할 돈, 장을 봐야 할 식재료 목록, 오늘의 저녁 메뉴, 자르지 못한 손톱, 널브러져 있는 장난감 치우기 등을 당장 처리해야 할 것만 같았다.


 보고 싶은 책이 있어서 펼쳤는데 시시콜콜한 친구와의 카톡, 이따금씩 밀려오는 집안일 등으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 내가 꺼내 든 것은 시간 관리와 관련된 책들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시간", "습관"라고 쓰여 있는 책들을 빌려와 읽었다. <엄마의 3시간>, <타이탄의 도구들>, <메이크 타임>, <아침 5시의 기적>,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와 같은 책을 빌려와 읽었다. 육아와 가사처럼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독서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두 가지를 다 하려다 보니, 정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는 하지 못했다.

이 책들은 한꺼번에 읽지 않고 의지가 약해질 때마다 조금씩 찾아 읽었다. 시간을 관리하고 습관을 정착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세부적인 방법들과 조언은 책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내 시간을 소중하게 다루고 싶은 목적은 같기 때문이다. 책마다 다른 방법을 보고 기존의 내가 해 온 습관들을 수정해가면서 '나만의 시간'을 잘 다루려고 노력했다.


진정한 행동 변화는 정체성 변화에 있다. 우리는 무언가가 되고 싶어 그와 관련된 습관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습관을 꾸준히 해 나가는 건 오직 그것이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될 때뿐이다. 목표는 '마라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제임스 클리어



 나는 아침 시간을 좋아한다. 아침 귀가 밝아 알람 소리에도 금방 일어나고 해가 밝으면 잠에서 깨는 일이 찌뿌둥하지도 않다. 최근 많이들 한다 하는 '미라클 모닝'은 내 몸의 리듬으로 적합한 일과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였다. 아이도 나를 닮아서인지 아침 귀가 밝고, 잘 일어나서 새벽에 내가 일어나면 덩달아 일어난다. 몇 달간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을 시도했으나 아이도 덩달아 깨서 엄마를 찾고, 나도 지쳤다. 결국 미라클 모닝은 포기하고 저녁 시간을 내 시간으로 확보하기로 했다.


 물론 모든 저녁 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종종 아이를 재우다가 잠들기도 한다. 신랑과 대화하는 날도 있고, 미처 하지 못한 집안일을 하다 쓰러져 잔다. 하지만 알고 있다. 리듬을 단절하지 않도록 하루에 몇 분이라도 애써 보는 것, 잊지 않으려고 기록하고 시간을 들이는 자체가 리듬을 몸에 새기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꾸준함을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평소에 종이 앞에, 혼자, 오래 앉아 있어 보는 겁니다. 순간적인 요령에 기대지 않고, 일상 속에서 꾸준히 자극받고, 깊게 느끼는 겁니다. 직접 발상해보고, 믿을 수 있는 이에게 피드백을 받는 겁니다. 꾸준한 운동으로 우리 몸의 근육을 키우듯, 꾸준히 시간을 내서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는 겁니다. 감탄과 단련의 반복. 이것은 요령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꾸준함의 영역이자 태도의 영역입니다. 당연히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듭니다. 하지만 작은 위안이 하나 있습니다. 시간을 들여 완성한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남들이 그것을, 쉽게 따라 할 수 없습니다.                                                                                  <생각의 기쁨> 유병욱



아기가 놀고 난 뒤 거실이 장난감으로 널브러져 있듯 내가 책을 읽고 난 뒤 우리 집 벽은 포스트잇으로 뒤덮여 있다. 나만의 시간을 위한 꾸준함과 성실함을 잊지 말자고 일깨워주는 문장들이 적혀 있다. 특히 나는 글쓴이 자신이나 소설 속 주인공의 일상 루틴을 담담하게 써둔 것들을 좋아해서, 그런 부분을 주로 포스트잇에 적어두곤 한다.


아침 5시 전에 일어나 밤 10시 전에 잔다고 하는, 간소하면서도 규칙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루를 통틀어 가장 활동하기 좋은 시간대라는 것은,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 그것은 이른 아침의 몇 시간이다. 그 시간에 에너지를 집중해서 중요한 일을 끝내버린다. 그 뒤의 시간은 운동을 하거나 잡무를 처리하거나 그다지 집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들을 처리해 나간다. 해가 지면 느긋하게 지내며 더 이상 일은 하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며 편히 쉬면서 되도록 빨리 잠자리에 든다. 대체로 이런 패턴으로 오늘날까지 매일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 덕택에 20년 정도 매우 효율성 있게 잘 지내 왔다고 생각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가로서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하루키의 일상 그 자체도 두고두고 볼만 하다. 그가 단순히 몇 시에 일어나고 언제 글을 쓰고 매일 달리기를 한다는 류의 그런 설명이 뭐가 재밌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일상을 읽어나가면서 내 일상을 돌아본다는 건 나에게 중요한 의식이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나 책 속 주인공들의 평범한 일상을 모아 두고 야금야금 꺼내 보며 리듬을 잃지 말자 다짐해본다.




                                  <생각의 기쁨>(2017) | 유병욱

         <아주 작은 습관의 힘>(2019) | 제임스 클리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009)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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