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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Nov 12. 2021

요리의 발견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제로웨이스트키친>

 도서관에서 요리책은 꼭 한 권씩 빌려온다. 휴직 중이다 보니 최소한 식구들의 끼니라도 잘 책임지자는 생각에서였다. 끼니를 잘 책임진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보다 시간, 배고픔의 간격, 그리고 장보기까지 신경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육아를 하다 보면 밥때는 왜 그리도 금방 오는지. 또 방금 장을 보고 왔는데 먹을 게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할 줄 아는 요리만 하다 보니 장 볼 때 골라오는 재료도 늘 거기서 거기다. 요리책을 빌려오고 나서는 좀 달라졌다. 그저 마음에 드는 레시피를 하나씩 따라만 해보자 했던 건데, 재료 하나를 갖고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매일 반복되는 반찬 메뉴 고민의 굴레에서 조금씩 해방되는 느낌이다.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드는 재미를 알게 되면서 계속 요리를 하게 된다는 점도 달라진 점이다.


“노동의 결과를 눈으로 직접 판단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을 해야 심리적으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교수, 기자, 선생과 같이 말과 글로 먹고 산 사람일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해야 한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김정운


김 교수 말대로라면 내가 요리책을 읽고 요리를 하게 된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나는 지난 10년 간 말로 먹고 살았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1년간 커가는 과정을 함께한다. 그러나 내 노동에 따르는 계량화된 결과가 한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분명 조금은 더 성장하고 조금은 더 배웠겠지만, 아이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성장을 눈에 보이는 수치로 짠~하고 보이기 어렵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내가 지난 1년간 꾸려왔던 교실이 다시 ‘리셋’된 것 같아 허무할 때가 있다. 그에 비하면 요리는 결과가 분명하다. 방금 장 봐온 식재료가 금방 맛있는 요리가 돼서 내 아이와 내 남편, 우리 집에 놀러온 손님 앞에 나타나지 않나. 정말 색다른 기분이다.

‘요리 라이프’에 있어 배달 음식은 적(敵)이다. 이유 없이 지친 날이나 아이를 돌보느라 바쁜 날에는 가끔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다. 그런데 배달 음식의 조미료나 간, 재료 원산지 같은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배달 음식은 다음 식사 준비도 자연스럽게 안 하고 싶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마치 늘 타던 자전거도 한 번 안 타기 시작하면 다시 자전거에 오르기 싫은 것처럼.


 냉장고를 틈틈이 열어 그 안에 재료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다음 식사에서 어떤 요리를 할지 고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제로 웨이스트 키친>에는 “식재료에 대한 이해와 보관법에 대한 정보가 차곡차곡 쌓이면 나만의 방식을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됩니다. 그 토대를 바탕으로 찾은 새로운 지식은 또 다른 지식을 낳고, 나아가 풍요롭고 건강한 식탁의 바탕이 되죠”라는 문장이 있다. 식재료 고민은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일 때부터 시작했다. 아이가 24개월이 될 때까지 요리책을 바꿔가며 옆에 두고 요리하고 있다. 어느 정도 나만의 방식이 생겼고 어떤 요리는 단 몇 분도 되지 않아 레시피북을 보지 않고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년 간 거의 부엌에 살다시피 하다 보니 요리를 하는데 드는 시간은 1년 전보다 더 짧아졌다. 어느 순간 내 손이 식재료와 요리 도구에 익숙해지면서 동작에도 속도가 붙은 느낌이다. 유병욱 작가는 <생각의 기쁨>에서 “시간을 들여 완성한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처럼 지난 1년 간 부엌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요리책만으로 식재료에 대한 이해나 요리법을 다 배울 수는 없다. 직접 식재료를 골라도 보고, 요리도 해보고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한다. 그러나 요리책에서 배운 것들은 꼭 요리뿐 아니라 다른 삶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꾸준함과 성실함,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닐지.


   <제로 웨이스트 키친>(2021) | 류지현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2019)| 김정운


사진출처: https://www.ggumim.co.kr/star/view/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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