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거리> 오정희
언제부터 소설을 재미있게 읽기 시작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재수학원에서 들은 수업이 생각이 났다. 책을 원래부터 좋아하기도 했고, 언어영역은 지문을 읽는 재미가 있어 고등학교 때 수업도 꽤나 열심히 들었다. 유독 기억에 남는 수업은 재수학원에서 수능 지문을 분석하는 국어 시간이었다.
2004년 수능 기출문제 중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를 배울 때였다.
사람들은 이제 집을 훨씬 덜 지었으나 해인초 끓이는 냄새는 빠지지 않는 염색물감처럼 공기를 노랗게 착색시키고 있었다. 햇빛이 노랗게 끓은 거리에, 자주 멈춰 서서 침을 뱉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회충이 지랄을 하나 봐. 치옥이는 깡통에 파마약을 풀고 있었다.
나는 미장원 앞을 떠났다. 수천의 깃털이 날아오르듯 거리는 노란 햇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언제였지, 언제였지, 나는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 먼 꿈을 되살리려는 안타까움으로 고개를 흔들며 집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집 앞에 이르러 언덕 위의 이층 집 열린 덧창을 바라보았다. 그가 창으로 상체를 내밀어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내가 끌리듯 언덕 위를 올라가자 그는 창문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닫힌 대문을 무겁게 밀고 나왔다. 코허리가 낮고 누런 빛의 얼굴에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선생님은 노란색에 동그라미를 쳐보라고 하셨다. 이 소설은 노란색의 색채 이미지와 후각적 이미지를 통해서 당시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고 했다. 전체 소설 속에서 노란색의 이미지는 수시로 등장하는데 노란/누런/노오란으로 다양한 노랑의 이미지를 연상하도록 만들었다. 수업을 듣고 난 후 짧은 지문 속에서 맛 본 <중국인 거리>는 마음속에 노오란 빛을 남기고 잊을 수 없는 소설이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중국인 거리>에서 나온 노란색 때문에 그때부터 소설을 내가 느끼는 대로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만약 고등학교 선생님께 배웠다면 <중국인 거리>가 1950년대의 전후 시대 상황을 묘사했고,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배경지식을 외우고 이 소설을 안다, 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뒤돌아서면 나는 무엇을 읽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책 전체의 줄거리도 중요하고 역사적인 의미를 아는 것도 소설 읽는 방법 중 하나이겠지만 나에게는 짧은 한 줄이라도 소설에서 느끼는 감각을 발견하는 눈으로 읽는 것이 진정으로 재미있게 책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활자들 속에서, 많은 문장과 문장이 이어지는 글들 속에서 나의 감각을 반짝이게 하는 문장들을 발견할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잘 쓰인 소설이란 무엇일까? 정답은 없고 많은 답이 있다. 나는 그 답을 감각을 깨우는 소설로 시작을 하겠다. 그 시작으로 책을 읽는 흥미를 가지게 되자 꼭 감각을 깨우는 글이 아니어도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언어영역을 잘 풀기 위해서 알아야만 했던 배경지식도 이제는 책이 가진 매력 중 하나로 보게 되었으니까.
오늘도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잠든 감각을 흔들어 깨어나게 하는 문장들에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인다. 많은 독서가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같은 방법으로 소설의 눈이 뜨이지는 않으니 오늘은 이런 방법으로 읽어보면 어떨런지!
<중국인 거리>(1979) | 오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