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기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eenish Jan 11. 2022

고무줄은 내 거야

22.01.11

1. 아이가 29개월일 때 도서관에서 보이는 요시타케 신스케 책을 전부 빌려왔다. 여러 권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책은 <고무줄은 내 거야>였다. 기본 대출에 1주 연장해 두 번을 빌려다 봤으니 40일 정도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아이는 꾸준히 고무줄 책을 읽어달라 하며 매우 좋아했다. 특히 좋아했던 페이지는 서랍장을 열어 보는 장면이다. "뒤적뒤적"이란 의성어를 매우 좋아했다. 여자 아이가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여러 번 물어봤다. 



2. 오랜 기간 같은 책을 읽어주는데도 지겨워하지 않는 것을 보면 "왜 이 책을 좋아할까?" 생각하게 된다. 요시타케 신스케 책은 사소함을 기발함으로 바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고 느꼈다. 최근에는 '기발함'이 아니라 '사소함을 공감해주는 힘'이 굉장히 크다고 느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는 주로 장난감을 뺏기는 아이라고 한다. 같은 반 아이들에 비해 5개월 늦기도 하고 타고난 성향 자체가 진취적이지 못하다.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장난감이 아닌 나만의 것을 찾아 "내 거야!"라고 외치는 책의 내용이 아이의 마음을 관통했을지도 모른다. (외동이라 집에서는 다 자기껀데... 왜...) 


3. <고무줄은 내 거야>를 읽은 시기와 비슷하게 맞물려 아이는 작은 구슬 자석을 애착으로 삼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사진들을 붙여두는 장식 구슬이었는데 어느 날 발견하고 구슬을 달라고 졸랐다. 너무 작아서 위험하다 느꼈지만, 위험함보다는 뭐든 만져보게 하는 터라 고민 없이 건네주었다. 그 이후로 집에서 내내 구슬을 쥐고 다녔고, 잘 때도 같이 잤다. 자석이라 쇠로 만들어진 모든 것에 붙여보기도 했다. 놀잇감으로 재밌게 활용하기도 했다.

너무 작아 어쩌다 놓치기라도 하면 찾아내라고 울었다. 왜 작은 구슬을 들고 다니다가 놓쳐서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는지. 새벽에 얼핏 잠에서 깨어나 스르륵 흘러버린 구슬을 찾아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찾아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여러 번 아이를 타박했다.


4. 29개월의 아이와 한 달 남짓 구슬과 실랑이를 보내던 어느 날, <고무줄은 내 거야>를 읽어주다 고무줄은 구슬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뺏기지 않을 만큼 작은 구슬. 나눠갖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장난감. 요시타케 신스케가 정확히 읽어준 아이의 마음을 나는 이제야 겨우 읽어냈다.


<고무줄은 내 거야> (2020) | 요시타케 신스케

매거진의 이전글 씨앗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