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7
1. 아이들의 목소리에 대해 생각한다.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창비, 2016)을 읽다 동생과 함께 자살한 엄마 얘기를 하는 다운이 꼭지에서 눈물을 한 됫박 쏟고 말았다. 슬픈 얘기였지만 소설보다 훨씬 참혹한 현실을 일상에서 보고 있기에 급작스러운 눈물이 이해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다운이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살해된 아이의 진술을 듣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호출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문학의 위대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의 얼굴들> 박주영
2. 아이가 어느 정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개월 수가 되어 매일 어떤 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 듣게 된다. 하지만 두서없는 전개로 이어지는 문장과 수시로 바뀌는 감정에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어 자주 무시하게 된다. 조금만 멈춰 서 앞 뒤 상황과 문맥을 공들여 파악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쉽지 않다. 이런 현상은 아이가 꽤 클 때까지도 지속되리라는 걸 알고 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많은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알기까지는 많은 추측과 상상이 필요하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느끼긴 하지만 그것을 언어로 정제해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는 충분한 연습이 없으면 어른이 되어도 어렵다. 아이들과 매일 만나는 어른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마음속의 감정을 어떤 단어와 어울리는지 연결해 언어로 꺼낼 수 있도록 연습시키고, 알아봐 주는 일 일텐데 업무와 진도와 생활지도에 치여 진짜 목소리를 듣는 감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3. 운전하며 들었던 팟캐스트에서 청소년을 화자로 소설을 쓴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책읽아웃, 최진영 편)
황정은이 묻는다. "청소년 화자로 소설을 쓰신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최진영의 긴 대답 중 인상 깊었던 것을 요약하자면 "10대들은 발언권이 없어요.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당해요. 그들의 말을 그대로 들어주는 어른이 생각보다 별로 없더라고요. 너무 많은 의무만 있고 권리는 그다지 없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소설 화자로 내세우는 것 같아요."
4. 10대들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자주 듣는 사람의 자리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무엇일까. 문학의 위대한 힘을 빌린 청소년 화자의 이야기를 읽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는 감도를 높이는 게 아닐까. 박주영 판사의 말대로 문학이 가진 위대한 힘을 빌리는 일이 아닌가 싶다. 점심을 먹고 최진영 작가의 <일주일>을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