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9
0. 얼마 전 <법정의 얼굴들>에서 아동학대 챕터를 읽고 난 뒤, 오래전 읽은 2권의 책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황정은의 에세이 <일기> 한 부분이 계속 떠올랐고, 박혜윤 씨가 쓴 <숲 속의 자본주의자>에서 아이에게 화를 낸 이야기가 계속 밟혀 두서없이 메모를 해본다.
1. 아이의 개월 수가 더해질수록 나는 화를 자주 낸다. 예쁜 말, 좋은 말로 여러 번 말하다 보면 끝은 화를 내고 있는 경우가 잦다. 아이의 이런저런 행동에 화가 났다고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면 공감의 표시를 하며 "나는 아이를 집 밖에 쫓아낸 적도 있어."라고 말했다. 떠올려보면 나도 아이일 때 쫓겨난 적이 있었고, 그 말을 해 준 사람도 쫓겨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방식은 언젠가 내가 부모에게 당한 적이 있는 방식일 수 있다. 100%는 아니지만. 어느 날, 아이를 통제하기 힘들어지고 화를 참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너 밖에 쫓겨나고 싶어?"라고 했다. 물론 아이는 '쫓겨나다'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이성을 잃었을 때 튀어나온 말은 무의식적으로 내 안에 있었던 '무엇'일 것이다.
그런데 당시 어른들은 자식을 왜 벗겨서 내쫓곤 했을까.
멀리 가지 말라고, 라는 것이 동거인의 의견이었고 나는 그게 전권의 확인이라고 생각했다. 멀리 가지도 못하도록 벗긴 몸을 바깥에 전시하는 체벌 행위는 그 몸이 자기 것이라는 주장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부모의 매질엔 늘 그런 근거가 있다. 자식(의 몸)에 대한 권리.
황정은 <일기>
2. 황정은의 에세이집을 읽고 나서는 아이를 훈육할 때마다 잠시 멈춰 서게 된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고 싶어서 이렇게 화를 내는 걸까. 나 자신에게 지쳐서 화를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식의 몸에 대한 권리를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이는 어르고 달래고 혼이 나고 난 다음에 익힌 규칙을 습득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때 어른이 쏟아부은 감정도 같이 가져간다.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될 것이다. 부모가 나에게 이렇게 대한 것은 나쁜 것이었구나. 그걸 깨닫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기도 하고, 아예 모르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3. 화를 내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화를 내면 그 순간에 필요한 훈육법이다. 하지만 너무 쉽게도 한 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고민의 과정 없이 바로 화부터 쏟아낸다. 나쁜 건 쉽게 정착한다. 이를 뇌가소성 원리로 해석한 글을 <숲 속의 자본주의자>에서 읽었다. 책을 쓴 박혜윤 씨는 아이를 한 번 침대에 던지고 죄책감을 느꼈는데, 이것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거짓말로 여기고 뇌의 회로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화가 났을 때의 경험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뇌의 연결 회로를 끊어버리도록 한 것이다.
4. 초임 시절 학급 운영이 엉망이 되었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소리 지르고 화내는 것뿐이었다. 그럴수록 아이들과의 관계는 악화됐다. 학급의 규칙은 선생님이 화를 낸다고 지켜질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아이들과 학급경영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초보 엄마는 이런 상황으로 단련되는 게 아닌가 보다. 요즘은 초임 때의 내 모습이 자꾸 보여서 싫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렵다. 끝없는 과제가 눈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