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20
1. "싸움은 나쁜 것이다.", "싸움은 하면 안 된다."
2. 교실에서 나를 가장 피곤하게 하는 것은 싸움이다. 어릴 때는 오빠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일기장이든 작은 노트든 오빠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첫 번째 남자 친구와는 자주 다퉜고 크게 싸운 뒤 헤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누군가와 싸우는 것이 싫어 피하는 쪽을 택한다.
3. 김혼비 작가의 <다정소감>을 읽다 '세상과 자신을 갉아먹는 부정 말고, 모든 것에는 언제나 새로운 방향이 존재한다는 생산적인 부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작은따옴표 안 문구는 <헌책방 기담 수집가>에서 인용)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서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건 역시나 책의 영향이 크다. 그래서 싸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새로운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여성들도 소리 지르고 때리고 맞는 훈련을 해야 한다. 미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원초적 싸움의 세계'를 경험을 통해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손발을 결박하는 공포와 억압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다정소감> 김혼비
싸움이라는 단어는 여성을 만나면 굴레가 씌워진다. 잘 싸우는 여성은 드세다고 손가락질하는 반면 남성에게는 용감하고 듬직하게 보는 경향이 예가 될 수 있겠다. 나에게 싸움이 갉아먹는 부정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김 혼비 작가가 말한 싸움에 대한 짧은 글을 읽고는 머리를 쾅 얻어맞은 것 같았다.
5. 교실에서도 싸움은 안 된다, 평화롭게 지내자고 말해왔는데 그게 과연 맞는 말이었는가 의심하게 되었다. 싸움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아이들에게 싸움 자체가 최악의 부정 상태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싸움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할 수 있다.
아이는 최근에 어린이집에서 자기가 놀고 있는 장난감을 자주 뺏기는 상황이 되니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처음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자꾸 뺏겨서 상처받으면 어쩌나, 싸움이 나서 가기 싫다고 하면 어쩌나. 그런데 최근에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집에 왜 가기 싫어?"
"친구들이 방해해요."
"지안이가 노는데 장난감을 뺏는다는 거야?"
"네."
"그러면 지안이가 방해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해.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해."
"하지 마. 방해하지 마."
"그래, 그렇게 말해."
6. 직접 부딪쳐봐야 아는 것이 있다. 그 상황에 놓여봐야 소리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나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에게 작은 싸움은 막을 것이 아니라 '잘' 싸울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교실에서도 싸움은 무조건 안 된다고 가르칠 게 아니라 갈등이 생겼을 때의 규칙을 정해주고 마음껏 부딪쳐보며 자신과 타인을 탐구할 기회를 줘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