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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Feb 18. 2022

[아이읽기] 상상놀이

22.02.16

 아이의 일과는 7시쯤 커튼을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낮잠을 놓친다. 낮잠을 놓치면 잠드는 시간도 달라진다. 오늘 하루는 괜찮겠지,도 소용없다. 매일을 같은 일과로 지낸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인생을 편하게 끌고 가는 건 좋은 루틴이라는 생각이 있다. 아이의 몸에 배인 좋은 습관이 평생의 선물처럼 느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가 햇빛과 함께 일어나고 잘 수 있게 노력한다. (아이의 낮잠은 나에게도 귀중한 시간이다.)

 일과의 끝도 당연히 같은 시간에 이루어진다. 보통은 8시 30분쯤 방으로 들어가지만, 요즘은 9시로 늦춰졌다. 아직 한참 노는 중이기도 하고, 아빠랑 막 놀기 시작한 시간이라 자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9시 전에는 방으로 들어간다. 뇌가 한참 깨어있는 터라 최근에는 방으로 들어가는 유인책을 만들었다. 책 한 권을 골라서 함께 들어가기. 나는 아이를 재울 때는 핸드폰을 두고 들어간다. 시계는 봐야하니 미밴드를 끼고 들어간다. 수신메시지는 볼 수 있지만 발신 메시지를 타이핑 할 수 없다. 어쩌면 반강제적으로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다. 아이는 자기 싫은 마음에 책을 넘기는 속도가 다르다. 아주 작은 그림 하나도 무엇인지 물어보고 한 페이지를 소중하게 넘긴다. 그림책의 분량이  적은만큼 책은 속절없이 빨리 덮인다. “한번 더 읽어볼까요?” 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기꺼이 한번 더 읽겠다고 대답한다. 한 권의 그림책을 이렇게 자세히, 꼼꼼히 읽는 기회는 이 시간이라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침대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이 우리 둘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이 된 느낌이다.

  2-3번 읽고나면 불을 끈다. 불을 끄면 아이의 컨디션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분명 날아다녔는데 소등하는 순간 이부자리에 몸을 맡기고 눕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어떤 날은 엄마가 어서 불을 꺼주었으면 하고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싶다. 오늘은 8시 30분에 침대로 갔다. 아빠랑 놀고 있어서 엄청 흥분 상태였을텐데 내 컨디션이 도저히 따라주지 않아 평소보다 일찍 들어갔다. 불을 끄고 나서도 아이는 앉아 있었다. 그러면 시작되는 놀이가 있다. 상상놀이. “엄마, 청진기 할까요?” 라고 말한다. 누워서 배를 요리조리 만져주면 “앉아서 할까요.”한다. 아직 몸도, 뇌도 잘 준비가 되어있지 않구나. 이제 막 불을 끈 순간에는 아이의 요구를 기꺼이 받아준다. 병원에서 경험한 진찰 순서를 나름대로 복기한다. “청진기 하고, 아~하고, 코 칙-, 귀 삐-, 다음은 사탕 주세요.” 내가 아이의 손에 사탕을 얹어 주는 척 하면 사탕을 까달라고 한다. 까서 입에 넣어주면, 오물오물 먹는 시늉을 한다. 불을 끄고 이루어지는 상상 속의 병원놀이이다.

 아이가  상상을 하게   언제부터일까? 아이는 말을 빨리  편이다. 말을 하지 못할 때도 자신만의 옹알이를 기가막히게 구사했다. 25개월쯤 육아종합센터에서 뽀로로 소방서를 빌려왔다.  2층으로  집과 뽀로로 피규어 4개가 있는  소방서이다. 아이는 그때부터 뽀로로와 패티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고,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역할놀이가 시작되었던  같다. 지금처럼 누구나 들으면 이해할  있는 언어 수준이 아니었지만 나름의 아는 단어들을 조합해서 말했다. 상상놀이는 생각보다 재밌다. 듣고 있으면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 평소에 엄마인 내가 하는 언행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안이의 상상을 유추할  있는 시간이 생기면서 웃지못할 이야기도 많이 듣는  하루의 아이 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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