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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Mar 27. 2022

내가 없어도 세상은 무탈하게 잘 돌아간다.

코로나 격리 기간. 22.03.26

 D 도서관에 가면  하는 일이 있다. 도서관 서가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순간 끌리는 책을 빌려 온다.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윽고 슬픈 외국어> 우연히 도서관에서 대출해왔다. 며칠  코로나 19 확진을 받았다. 정신없었던 아이와 나의 건강을 살펴야  위기의 시간이 지나고,  안에서 격리 기간을 거치는 동안  책을 틈틈이 읽어 내려갔다.

 <이윽고 슬픈 외국어> 무라카미 하루키가    반에 걸쳐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에 살았던 시절 동안의 이야기를  에세이집이다. 외국에 살면서 느꼈던 감정을 담은 짧은  꼭지의 이야기가 지금 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절묘하게 대입되었다. 책은 읽는 사람의 상황에 대입해 해석된다고 하더니,  감정이 묘사된 문장을 발견하고는 책이 저절로 나에게 찾아온 건가 싶었다.


유럽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오랫동안 일본에서 떨어져 지내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내가 없어도 세상은 아무 탈없이 잘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나라고 하는 한 인간이, 혹은 한 사람의 작가가 갑자기 일본에서 사라져도 누구 하나 특별히 곤란해하거나 특별히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결코 심사가 뒤틀려서 하는 말이 아니라, “결국 나 같은 건 있으나 없으나 아무래도 마찬가지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자명한 이치이고, 인간이 한 명 늘거나 줄어든 정도로 세상이 혼란해진다면 세상은 몇 개가 있어도 모자란다. 하지만 일본에 살면서 자신의 역할 같은 것에 매일 바쁘게 쫓기다 보면, 그런 자신의 무용성 같은 것에 대해 찬찬히 깊게 생각할 만한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윽고 슬픈 외국어> 무라카미 하루키

 격리 기간 동안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요리, 청소, 빨래만 했다. 매일 조금씩 다르게 나오는 증상을 관찰하고 꾸준히 약을 챙겨 먹는 것에 온 집중을 다했다. 아이와 24시간 같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나의 시간 동안 해오던 일을 하며 지낼 수가 없었다. 바쁘게 쫓겨온 일상을 내려놓고 아이 곁에 앉아 가만히 시간을 응시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에 떨어져 살면서 자신의 무용성을 깊게 생각했다면, 나는 전염병으로 인해 사회적 격리 기간 동안 멈춰진 일상에서 찬찬히 생활을 들여다봤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아무 탈없이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꽤 허무해진다. 우리는 그럼 왜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왜 그렇게 바쁘게 쫓겨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이렇게 일주일 동안 사회적으로 격리되어도 아무 문제없이 세상은 돌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멍하게 앉아 아이가 노는 것을 지켜봤다.

 집안일도 미뤄둔 채 늘 비슷한 자리에 비스듬히 앉아 소파에 기대어 아이를 지켜봤다. 이렇게 아이만 보고 있었던 게 언제인가 싶다. 늘 분주하게 집안일을 속속 해내고, 저녁밥을 짓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런 일상을 멈추고 아이를 관찰했다. 아이의 발바닥에 짙은 색 물감을 칠해둔다면 집안 전체가 물감으로 뒤덮이겠구나, 생각했다. 아이는 우리 집의 공간을 한 평도 빠짐없이 사용했다. 구석에 들어가 보고, 의자를 가져와 부엌 상판에 올라가고, 미끄럼틀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심지어 티비장 위에 모로 누워 있기도 했다. 발자국을 따라 아이를 지켜보다 서둘러 몰스킨 노트를 들고 연필로 메모를 시작했다. 32개월의 내 아이는 이런 장난감을 좋아하고, 어떻게 놀고 있는지. 무슨 말을 자주 하는지, 본 대로 썼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글을 쓰려하고 아이의 작은 행동을 메모하는 이유가 존재의 무용함을 이겨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변화를 기록하는 일, 변하는 감정을 메모하는 일이 쌓여 글이 된다면 흘러가버린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지진 않을 테니 말이다. 책 앞으로 돌아가 작가가 쓴 서문을 다시 읽었다. 2년 반의 프린스턴 생활 동안 '사회적 소멸'을 느낀 하루키가 그 마음을 붙잡아두려 쓴 글이었구나.


이 시기의 자신의 심정과 주위에서 일어난 일(아무래도 상관없을 일도 많이 있지만)을 이런 형태로 착실히 기록해두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분의 흐름 같은 것은 시간이 지나버리면 꽤 자세히는 생각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변화라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것이 쌓인 것에서 의외로 뚜렷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내게 심정의 기념사진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윽고 슬픈 외국어> 무라카미 하루키


 격리가 끝나면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또 나름의 일상을 살아가느라 바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여러 증상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던 육체적인 고통도 있었다. 전염병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격리를 거치며 여러 생각에 불만이 많았지만 육체적인 아픔이 수그러들자, 멈춰진 시간에 평소에 하지 않았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생각의 방향을 일러준 건 언제나 책이다. 기록의 의미를 찾았으니,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잊지 말고 메모를 해야지. 또 잘 잊어버리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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