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02
어젯밤 침대에서 <힘 빼기의 기술>을 다시 읽었다. 김하나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읽었던 글이라 내용은 새롭지 않은데 글이 새롭게 읽혔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읽기의 방식이 변했다는 걸 느낀다. 잘 쓴 글(나도 저렇게 쓰고 싶은 글)은 꼼꼼히 읽어보며 질문을 던져본다.
“이런 소재를 어떻게 발견했을까? 여러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잇는 걸까? 전환은 어떻게 했을까? 마무리는 어떻게 했을까?”
두 번째 읽으면서는 좋은 문장보다 스스로 던진 질문들의 실마리에 밑줄을 긋는다. 이번에 읽으면서 2개의 글에 서 오래 머물러 있었다. 하나는 <내가 나사 좀 조여봐서 아는데>와 <라면과 개똥과 기품>이다. 두 꼭지를 읽으며 ‘관찰’에 대해 배웠다. '나사' 에피소드는 이사를 하고 조립을 자주 하며 조여댄 나사를 관찰하며 쓴 글이다. 이사는 누구나 한 번쯤 하는 일인데, 모두가 조립을 하며 나사를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될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평생 교체했던 건전지 개수의 대략 10배 넘는 장난감의 건전지를 갈아줬다. (10배는 너무 적나?) 그럴 때마다 “아이고, 이것 참! 왜 이렇게 수명이 짧냐” 탄식하며 얼른 갈아주기 바빴지, 공구나 나사를 들여다볼 생각조차 안 했다. 내가 밑줄을 그어둔 부분은 여기다.
“그런데 드릴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점점 나사들의 차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각각의 차이를 느끼며 수백 개의 나사를 조여나가는 동안 나는 신년 벽두에 걸맞은 깨달음을 얻었다.”
<힘 빼기의 기술> 김하나
<라면과 개똥과 기품>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라면 코너에 서서 멍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가, 할아버지로 추정되는 조리사의 라면 끓이는 동작을 관찰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다음으로 발레 무용수의 동작과 애견 카페의 직원의 동작을 눈여겨본 이야기를 잇는다. 이 이야기가 쓰일 수 있었던 건 김하나 작가가 평소에 사람들을 잘 관찰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리사나 애견카페 직원의 행동을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냥 지나치고 넘어가거나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을 텐데. 관찰하는 힘을 가진 사람은 무엇을 봐도 재밌는 해석을 할 수 있구나, 감탄한다. 사실 사람을 관찰하는 일은 재밌다. 나도 핸드폰이 생기기 전에는 사람들을 많이 관찰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는 핸드폰이 손에 쥐어져 있으면 사람보다는 핸드폰을 보게 된다. 관찰하는 촉이 사라진 느낌이다.
오늘은 인테리어 상담을 하러 서울을 다녀왔다. 약속 시간이 촉박해서 서울역에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님이 말을 건네셨다. 사실 이미 너무 피곤해서 듣고 싶지 않았는데 어제 읽었던 <힘 빼기의 기술>이 나를 고쳐 앉게 했다. 기사님의 이야기 시작은 카카오 네비의 음성인식이었다. 운전 중에 핸드폰으로 타자를 치는 게 어렵다며 “음성인식 참 편해요. 내가 이 놈을 많이 훈련시켰거든.”이라 하셨다. 핸드폰을 덮고 기사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걸까. 음성인식을 지독하게 훈련시킨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많이 묻어났다. 음성인식 이야기는 이미 노래를 잘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완벽을 위해 더 열심히 연습하는 나훈아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가 이렇게 이어질 수 있을까 신기했지만 맥락은 이어지는 듯했다. 아마도 택시 기사님은 최고여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 골몰해 있으리라. 본인이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기에 '열심히 하는 사람'에 자신도 이어져 있길 바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기사님 이야기를 듣길 잘했다 생각했다. 고쳐 앉아 메모를 했다. 딱히 좋은 글을 쓰지는 못했지만 어제 읽은 책 한 권으로 핸드폰을 덮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놨다고 쓸 수는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