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도, 제기도 없는 건 만들면 그뿐

by 수연

어렸을 때 막내인 내 동생은 항상 맨밥 한 숟가락을 입에 물고, 오물오물거리며 잠이 들었었다.

그때야 알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발달 행동이라고 한다.

성장과정에서의 심리적 안정감, 감각 자극, 습관적 행동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하지만, 그땐 가족들 모두 그저 신기하게만 바라봤던 일이었다.


「자 좀 봐라, 입에 또 물고 자네.」

「아 더러워. 자는 왜 저러노.」


매번 엄마는 한참 잠든 동생의 입에 강제로 손을 넣어 뺏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도 애써 고치려 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습관은 없어졌으니까…


그에 반해 나는 울음 끝이 길었다.

즉, 한 번 울면 몇 시간이고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울었다는 얘기다.

자존심이었을까? 고집이 세서일까? 어렸을 때 생각으로는 창피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동생이나 언니와 싸워 혼이 날 때면 아버지는 자주 엎드려 버티거나 손을 들고 있게 하셨는데, 억울함에 언제나 울음이 마지막이었던 기억이 있다.


울다가 밥상이 들어오면 벌은 끝났지만, 내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밥이나 먹어.」

「싫어, 안 먹어.」

「안 먹으면 말아라.」


그렇게 밥상 뒤편에서 난 혼자 계속해서 울고 있지만, 식구들 약속이나 한 듯 신경도 쓰지 않는다.


한참 그렇게 울다 보면, 눈물은 마르고 입에서 흉내에 가까운 울음소리만 들리게 되는데, 이때부터 아부지의 놀림이 시작된다.


「어어어어, 자 좀 봐라.」

「웃겨 죽겠데이.」


그렇지만 이때도 식구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저녁식사를 즐긴다.

그래도 관심을 가져주는 건 아부지뿐이다 싶다.

이쯤 되면 이제 왜 울고 있는지 이유도 알 수 없다. 그저 적당한 때를 봐서 울음을 그칠 뿐.


이렇게 동생과 나의 기억은 선명한데 반해 큰언니와 작은언니 기억은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차이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두 언니 모두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 함께 살았던 기억이 많지 않아서였다.


고등학교부터 외지에서 생활해 명절이나 주말을 이용해 집에 내려오곤 했다.

그럴 때면 밥상 위 반찬도 달라졌다.


어린 나는 언니들이 사 오는 과자선물세트가 기다려졌던 것 같기도 하고, 집안 분위기도 달라지니 언제나 반겼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노트북만 한 박스의 과자선물세트에는 내가 먹어보지 않았던 종류의 과자들이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명절 때면 학용품도, 옷도 한 번씩 선물 받은 터라 언니들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었다.


오빠와 셋째 언니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같이 놀지 않으니 그만큼 또 기억이 선명하진 않다.


가을, 이제 곧 추석이다.

다음 주면 집 떠났던 언니들도 고향을 방문하고, 논 밭에 수확도 앞두고 있었다.

한창 물오른 사과를 수확하기 위해 가족 모두 밭으로 불려 와 있었다.

오빠는 가고에 가득 담긴 사과를 경운기에 옮기기 바빴고, 언니와 우리는 나무 아래 키가 닿는 곳에서 엄마가 말씀하신 크기의 사과만 골라 따고 있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사다리를 타시거나 사과나무를 타고 올라가 높은 곳의 사과를 가고에 담기 바쁘셨다. 그러다 가고에 가득 찬 사과는 밑에 있는 우리가 받아 주고, 또다시 빈 가고를 받아 계속해서 사과를 따는 작업이었다.


「쪼만한거나 색 없는 건 따면 안된데이.」

「엄마, 야가 사과 떨어뜨렸어.」


언니가 그대로 일러 버린다.


「조심 안 하나.」

「여와, 가고 받아라.」

「연숙아, 빈 가고 가져온네이.」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나무아래 모여 가져온 찬거리(간식)를 먹으며 한숨 돌리고 있다.


「언니들 언제 온데.」

「다음 주 토요일에나 온단다.」

「모과 딸 거 있나 가봐.」


사과나무에 밀려난 모과나무가 밭 맨 아래에서 조용히 익어 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기만 해도 달콤한 향이 모과임을 증명하듯 한다. 이내 열매 그 자체에서 피어오르는 모과 향이 은근하게 코끝을 스쳤다.


잘 익은 모과는 셋 노랗게 물들어 겉은 번들거리며 유분을 가득 품고 있었다.

손끝으로 스치기만 해도 기름을 바른 듯 미끄러워 조금은 불쾌했지만,

곧이어 손에 스며드는 모과 향 덕분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망설임 없이 한 가지에 열매 세 개가 달린 그대로, 가지째 꺾어 버렸다.

경운기에 실어 둔 모과는 집으로 돌아가 못 박힌 벽 한 곳에 자리 잡아, 담배 냄새로 가득한 방 안에 방향제 역할을 해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경운기 한가득 가을 수확의 열매를 싣고 집으로 향했다.

사과에 흠집이 날까, 경운기는 내 걸음걸이보다 느렸다.

그때 엄마가 경운기에서 뛰어내리시더니, 내 친구 동현이네 밤나무 아래 떨어진 밤을 주워 가고에 담으신다.


그 모습에 동생과 나도 이내 뛰어내려 엄마와 함께 밤을 주웠다.

떨어진 밤송이는 두 발을 이용해 밤을 꺼낸다. 바로 옆 호두나무 아래도 마찬가지로, 호두를 발로 밟아 알갱이만 주워 담았다.

밤송이는 찔리면 빼면 그만이지만, 호두물은 손에 물들면 며칠간 잘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다.


내려오는 길에 밭주인인 동현이네 집에 들러, 주워 온 밤과 호두를 보여 드렸다. 주운 것이라 해도 주인의 허락을 받기 위한 셈이었다.

이렇게 수확철이 되면 걸어오는 길마다 먹을 것이 가득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동네 마실을 나갔던 엄마가 돌아오시더니 비장하신 표정으로 호미를 챙기신다.


「어디가?」

「저 너머, 어제 인삼 캤단다. 오늘 한나절은 주서도 된다고 하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인삼은 한 번 심으면 4~5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하는데, 수확 소식을 들은 엄마는 우리 호미까지 미리 챙기신다.


「나도 갈꺼야?」

「그래 가자.」


이미 엄마는 우리 둘의 비닐봉지와 호미까지 챙기시고 계셨다.

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계절마다 닭과 인삼, 여러 약제를 넣어 백숙을 끓여주실 때 필요한 재료이기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신다.

우리 지역은 풍기인삼으로도 유명했지만, 엄마는 돈을 주고 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가끔 산에서 작은 산삼을 캐셔도 파시지 않고 가족들 입으로 넣어 주셨다.


이미 수확한 밭이긴 해도 함부로 들어갈 순 없었다.

그러기에 엄마는 아침 일찍 인삼밭 주인에게 한나절의 허락을 받고 온 터였다.


수확 후라도 잔뿌리를 줍거나 땅속 깊이 숨어 있는 인삼을 캘 수도 있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신다.


「당신도 가시더.」

「거 뭐 하러 가노, 갔다와라.」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오늘은 사과밭이 아닌 인삼 밭으로 발길을 돌린다.


「잔뿌리건 뭐건 보이는 거 다 주워래이.」

「응 알았어.」


밭 입구에는 자동차가 지나다닌 흔적과 그 무게가 그대로 느껴졌다. 눌린 자동차 바뀌 자국 아래에도 인삼 잔뿌리가 밟혀 있었다.

주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길 가다 돈을 주웠을 때도 이런 기분일까? 생각 없이 땅을 파다 보면 온전한 모양을 갖춘 인삼을 찾을 때 그 희열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엄마, 이거 봐.」

「아이고 굵다, 어디서 찾았노.」

「나는 이쪽 꼬래이 볼께, 니는 저쪽보래이.」


이내 칭찬에 힘입어 더 열심히 땅을 파 본다.

인삼밭의 토양은 사과밭과 또 다르다.

발로 밟으면 푹푹 꺼지면서도 물기 하나 없이 보슬보슬했다. 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몇 년간 볕에 바랜 듯한 연한 갈색 흙은 차가우면서도 촉촉한 흙의 기운이 손가락 끝의 그대로 전해졌다.

땅에 구멍이 날 듯, 호미와 손을 이용해 파고 또 파 본다. 힘에 겨워 주저앉은 탓에 엉덩이는 어느새 흙투성이가 되었다.


운이 좋으면 인삼밭을 따라 걷다가도, 굵은 뿌리를 주울 때도 있었다.

우리 셋은 말없이 한참을 그렇게 인삼밭을 떠돌아다녔다.

내일이면 밭주인이 다시 갈아엎는다고 하니 오늘밖에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야들아, 가자. 마이 주웠나?」

「엄마 이거 봐, 나 이만큼 주었어.」


동생과 나는 경쟁이나 하듯, 엄마에게 비닐봉지를 보여주며 수확의 결과를 보고해 본다.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맘 같아서는 밭을 통째로 갈아엎어 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는 바로 흐르는 물에 흙을 제거하고, 마당 한켠의 두고 햇볕에 잘 마르길 기다려본다.

잔뿌리는 잔뿌리대로, 온전한 모양의 인삼은 따로 분리해 손질해 두셨다.


집으로 돌아와 이제 엄마는 엄마 일을, 우리는 또다시 다른 놀잇거리를 찾아 나섰다.


어제 잘 접어 둔 검은 비닐봉지 몇 개를 가져다 펴 본다.

그리고 가위와 미리 주워다 놓은 병뚜껑, 동전 하나. 바로 제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제기”, 발로 차는 공 모양의 놀이기구다.


우선 비닐봉지를 몇 개 겹쳐 손잡이 부분과 양옆을 잘라 준다. 밑부분만 남기고 사각형의 비닐을 잘 펴 준다.

그리고 다시 펴 준 후, 가운데 동전이 들어갈 자리를 남겨 두고 양쪽을 가로 방향으로 1cm 정도 간격으로 조심스럽게 자른다.

병뚜껑에 10원짜리 동전을 넣고, 돌멩이로 동전이 빠지지 않게 잘 눌러 준다.

잘라 놓은 비닐의 가운데에 병뚜껑을 대고, 비닐 끝부분부터 병뚜껑을 감싸듯 말아 주면 끝이다.

이제 실을 돌돌 말아 고정해 주면 제기가 완성된다.


혹시 모르니 몇 개 더 만든 후, 늦은 점심을 먹고 배신데이로 향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나, 제기 만들어 왔는데.」

「하자, 하자.」


문제는 이렇게 만든 제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비닐이 약해 찢어지기도 하고, 잘 말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일회용 놀이기구인 셈이지만, 그런들 어떠랴. 여기저기 깔린 게 검은 비닐봉지인 것을.


「잡기 있기, 없기?」

「없는 거로 하자.」


여기저기 흩어져 편을 만들고, 우리는 제각각의 규칙을 정해 제기놀이에 빠져든다.

뭐 제기야 당연히 많이 차는 쪽이 이기는 거지만, 제기를 차는 모습이 가지각색이다.


「니는 왜 팔을 흔들고 날리노, 웃겨 죽겠데이.」

「어쨌든 많이 차면 되잖아.」

「양발 가능하나.」

「안돼, 안돼.」

「하나, 둘, 셋..어어..」

「니 죽었데이.」


안쪽으로 차는 게 정석이지만, 바깥쪽으로 차는 것도 제맛이었다. 마음 같지 않았지만...


벌칙은 따로 없었지만 아이들 모두 승부욕에 차 있었다. 오랜만에 하는 놀이여서 그런지, 안 쓰던 허벅지 근육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낫으로 윷을 만들고 계셨다.

박달나무가 좋긴 하지만, 여기저기 널린 곧게 뻗은 참나무를 잘라 만드셨다.


「아부지 뭐 해?」

「윷 만든다. 작게 만들어 줄까? 크게?」

「아부지 맘대로.」


그렇게 궤짝 짜던 마당 한켠에서 낮으로 두 동강 난 윷 4개가 만들어졌다.

추석을 대비한 가족 놀이의 하나가 될 것이다.

엄마를 제외한 가족은 화투를 즐겨하지 않았다. 언니들이 명절에 오면 민화투나 윷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윷도 명절이 끝나면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었기에 매년 새로 만들어야 했다.


내일 아침 일찍 아부지를 따라 해터 위 할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하려고 한다.

낫을 손보시는 김에 바로 옆 곧은 참나무 토막을 이용해 윷을 만드시는 거였다.

벌초는 매번 엄마도 함께 하셨지만, 일이 있으시다며 아버지께 맡기셨다.


아침부터 어수선하다. 엄마는 간단하게 벌초 때 올릴 음식과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시기 바쁘셨고, 아버지는 낫과 신발, 장화를 따로 준비하시고 양발까지 단단히 동여매셨다. 깊은 산이라 뱀이 나오는 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는 유난히 험난한 곳이어서 오빠를 제외한 딸들은 잘 데려가지 않는 곳이었다.

해터 위 산을 올라 올라 가장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어, 위치 또한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매년 산을 오를 때마다 나무에 꼭 표시까지 해 두시고 오실 만큼 험난한 곳이었다.


「나두 갈 거야.」

「거가 어딘 줄 알고 따라가.」


오빠는 남자라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지만, 우리는 혹이나 다름없으니 허락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밑에서 놀고 있으면 되잖아.」


아부지는 바로 허락하시지만, 엄마는 쉽게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다.

뒤꽁무니를 한참 따라다니니 어쩔 수 없이 허락하신다.

그제야 나도 장비를 챙겨 나설 채비를 한다.


「그건 뭐할라고?」

「밑에서 기다리면서 잡을라고.」


내 키만 한 반도(족대,반두)를 챙기고 운동화 끈도 단단히 동여맨 후 비장하게 아부지 뒤를 따라나선다.

올라갈 수 있을 만큼은 탈탈이로 이동하고, 그 후엔 걸어 이동해야 한다.

반도는 어느새 아부지 손에 쥐어졌고, 마을에서는 보지 못했던 머루가 내 키보다 높은 곳에 열매를 맺고 있었다.

아부지는 머루를 손이 닿는 곳까지 모두 따서 가고에 담아 주셨다.

해터는 공기부터 달랐다. 그만큼 외진 곳이었다.

산딸기도 먹음직스럽게 익었지만,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그대로 열매를 우리에게 내어준다.

그 외 나도 본 적 없는 열매를 아부지는 가오 가득 담아 주셨다.


「니들은 여서 기다려, 더 못 올라간데이.」

「응, 빨리 내려와요.」


그렇게 우리 둘은 산 아래서, 아부지와 오빠는 배낭과 운동화를 단단히 동여매고 낫을 챙기신 후 산을 오르셨다.


사실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이렇게 깊은 산까지 오를 일도 없었다. 외진 곳이라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야, 이거 봐 고기 엄청 커, 별개 다 있데이.」


수심이 낮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버들치며 피래미며 가재며 미꾸라지까지 눈에 그대로 들어왔다. 크기도 마을 아래 물고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내가 먼저 올라가서 몰께, 니 잘 잡고 있어.」


바위틈에 반도(족대,반두)를 X자로 고정시키고 동생에게 건넸다. 그리고 나는 조심히 위로 위로 올라가 고기몰 준비를 하는데, 특별한 건 없다.

두발을 휘휘 저으며 반도 근처로 발길을 옮기면 그만이다.

물고기가 숨어 있을 듯한 작은 돌들을 발로 차며 동생 쪽으로 몰고 간다.


「들어갔나?」

「몰라, 안 보여.」


흙탕물과 함께 조심스럽게 반도를 들어 올려본다.

없을 리가 없었다. 썩은 나뭇잎을 골라내자 팔딱팔딱 거리는 물고기가 그대로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는 얼른 웅덩이를 만들어 물고기를 한데 모아 두었다. 오늘은 집으로 가져가지는 못하니, 잡는 자체로 만족한다.

「야 이봐, 이거 무슨 물고기노.」

「청소 물고기네.」

「미꾸라지 문데이, 조심해래이.」


물속에 발을 담그고 가재도 잡았다.

뒷걸음질 치는 가재는 물리지 않게 등껍질을 잡아 낚아채야 한다.

그렇게 시간 가는지 모르고 놀고 있으니, 저 멀리 아부지와 오빠가 지친 듯 내려오고 있었다.

가끔 벌초하다 다치거나, 산소의 봉분을 멧돼지가 파헤쳐 놓는 일도 다반사였다. 수풀에 숨어 있는 뱀과 말벌은 벌초하는 이들에게 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올해도 무사히 벌초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일루 와, 밥 먹자.」


아부지는 우리가 잡아 놓은 물고기 웅덩이 근처, 아침에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개울 옆 바위틈 사이에서 발을 물에 담근 채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꿀맛도 이런 꿀맛이 없었다.

점심을 다 먹고도 우리는 한참 그 자리에 머물며 풍경을 즐겼다.

시골에 살면서도 또 다른 그 이상의 날것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그렇게 우리의 추석이 시작되었다.


떠났던 언니들이 돌아오고, 제사를 지내는 건 아니었지만, 언제나 엄마는 튀김과 명절 음식을 푸짐히 준비하셨다.

명절에는 밖에서 놀기보다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리고 이때는 정규 방송 외 종일 방송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오전 6시경에 시작해 밤 12시가 되면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끝이었다.

하지만 명절에는 온종일 텔레비전 시청이 가능했다. 정규 방송 외에 특별히 상영되던 영화와 만화가 명절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매년 반복해서 틀어주는 영화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마저도 새로웠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어떤 프로그램이든 볼 수 있지만,

그땐 텔레비전마저 명절의 일부였던 때였다.

늘어지게 먹고 온종일 텔레비전도 시청하고 학교도 가지 않으니, 그 어떤 놀이보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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