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나무, 간다! 간다! 굴러간다

by 수연

늦가을, 마당 한켠에는 사과 상자를 짜던 공간이 이제 베지 않은 통나무로 가득 쌓여 있다. 겨울 준비의 하나인 장작을 패기 위해서다.

올겨울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미 몇 년치 마른 땔감이 마당 한켠에 충분히 쌓여 있었지만, 매년 반복해서 계속되는 작업이었다.


겨울이면 안방, 오빠 방, 부엌 이렇게 세 군데에 군불을 지폈다.

하루 한두 번, 겨울에는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다. 자주는 아니었어도 나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군불 지피는 건 기술을 요하는 일이기도 했다.

우선 마른 사과나무가지나 마른 콩깍지를 조금 쌓아 올린 후, 언니들 교과서를 몇 장 찢어 성냥으로 불을 붙여 땔감 아래 넣어 호호 불어넣어준다. 이 포인트가 중요한데 마른나무에 불이 붙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줘야 한다.

땔감에 불이 붙으면 장작을 작은 것부터 큰 순서대로 천천히 쌓아 올려주면 되는데, 요령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군불 지필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것이 괜스레 뿌듯해지기도 한다. 시골생활에서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수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될 즈음, 틈틈이 이어지는 아버지의 소일거리 중 하나였다. 나는 도끼질도 아버지에게 배운 샘이었다.

뭐든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이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장작을 재미 삼아 바라보고 있다.


「나도 해볼꺼야.」

「해볼끼야, 한번 해봐라.」


도끼 드는 것부터 문제였다. 아부지는 옆에 있는 작은 도끼를 건냈다.

통나무 위에 팰 작은 나무를 올려주셨다.


「그냥 내리치면 안 되고, 쪼매 갈라진 틈으로 살살 내리쳐봐.」


당연히 한 번에 될 리가 없었다. 냅다 그대로 날아가 버린다. 금이나 갔을까?

아부지가 옆에서 보시고 웃으신다.

동생도 시도해 보고, 다시 아버지가 패는 모습을 유심히 구경만 할 때쯤 지나가던 오빠가 보고 시도해 본다.


「봤나.」


그렇게 장작은 가족 모두의 재미있는 놀이였지만, 처음 시작 때뿐이었다. 결국 쌓여 있는 모든 통나무의 마무리는 아버지 몫이었다. 한참 진전이 없을 때면 엄마의 한마디가 또 아버지를 움직이게 하셨다.


「이보소, 저거 안 치우니껴. 언제까지 저래 놔둘끼니껴.」


그렇게 장작 옆에는 톱으로 썰린 톱밥과 나무 향이 가득했다.

이미 필요한 장비가 다 갖춰진 장작더미 한쪽에서, 오빠가 이른 겨울썰매를 만들고 있었다.


오빠는 손재주가 좋은 편이었다. 쓸데없는 것까지 손대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전기제품이 고장 나기만 하면 분해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고쳐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기저기 분해된 채 굴러다니던 물건들을 자주 봤던 기억이 있다.


수리점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자전거나 라디오가 고장이 나면 직접 고쳐 쓸 수밖에 없었다.

바람 빠진 자전거 바퀴를 손볼 때면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 펌프질을 몇 번 하다 보면, 구멍 난 곳에서 뽀글거리며 기포가 올라왔다.

그러면 본드와 고무 패치를 붙여 땜질을 하고, 다시 바람을 채워 넣어 타고 다녔다.

그렇게 직접 고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우선 시도부터 하고 성공하면 다행이다 싶었다.


「오빠 뭐 해.」

「야, 절로가.」

「우리 거도 만들어줘.」


재료는 집에 다 있으니, 뚝딱뚝딱 만들 수 있었다.

오빠는 사과 궤짝을 만들 때 쓰던 못과 망치, 나무판자까지 모두 꺼내 장작더미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나는 옆에 앉아 한참을 구경했다.

오빠는 나무판자에 못을 박아 앉을자리 받침과 각목을 잘라 받침대 아래 다리를 만들어 줬다.

그리고 굵은 철사를 이용해 얼음과 닿아 미끄러질 수 있도록 각목 다리에 못으로 고정해 주면 끝이었다.

이 과정에는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다. 철사가 바르게 잘 고정되어야 미끄러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썰매를 밀어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손잡이는 둥근 긴 막대를 이용했다.

뾰족한 못의 끝부분이 얼음과 맞닿을 수 있게 박아주는 것이 관건이다.

이렇게 두 개의 손잡이로 썰매는 얼음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만들어진 썰매에는 양반다리나 무릎을 꿇고 앉아 양손으로 막대를 힘껏 저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 속도는 두 팔의 힘에 달려 있었다.


썰매도 종류별로 두 가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종일 옆에 붙어 있으니, 옛다 하는 거였을까?


「가져가 놀아.」

「우와, 좋다. 내 꺼나?」


썰매 두 개와 생각지도 못한 장난감이 생겼다.

오빠는 자투리 나무를 이용해 나무 자동차를 만들어 줬다.

내 신발 크기의 직사각형 나무토막에 둥근 네 개의 바퀴가 달려 있었다.

앞부분에는 못을 박아 구부린 뒤, 끈을 달 수 있게 해 놨다.

나는 얼른 창고 들어가 긴 빨간색 노끈을 찾아, 자동차 앞부분에 묶었다.

웬일인가, 둥근 나무바퀴가 움직이며 자동차가 앞으로 굴러갔다!


「니꺼도 움직이나?」

「응 이거 봐, 신기하다.」


돌만 무성한 우리 집 마당도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지만, 뒤집히지 않고 잘 굴러다녔다.

우리는 강아지처럼 온 마당을 뛰어다녔다.


이미지 삽입(장작더미 아래 쌓은 톱니들 오빠의 굴러가는 자동차,,)


요즘의 조이스틱이나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장난감 자동차 저리 가라 할 만큼, 그때는 신기해하며 한참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국민학생이나 되어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긴 좀 창피하긴 해도, 집 마당에서만큼은 동생과 나의 한동안 최애 장난감이었던 건 틀림없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엄마가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테니, 그때 사용할 솥을 미리 씻고 길들이시려는 모양이었다.

몇 개월 동안 방치했던 안방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고, 물을 부어 솥을 씻고, 다시 물을 부어 솥을 길들이고 있다.

오랜만에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부엌에서 어제부터 불려 놓은 노란 콩을 마루에 올려다 놓으시고, 어디에 숨어 있다 나온 지 모를 맷돌을 짚으로 씻으신 후 다시 철 수세미로 빡빡 닦으신 후 마루에 자리 잡으신다.

물 한 바가지를 옆에다 두시고, 맷돌 구멍에 불린 콩을 넣고 맹물 한 국자 넣어주니 콩물이 그대로 맷돌을 타고 흘러내린다.

두부를 만드시려나 보다. 일 년에 두어 번 엄마는 직접 맵돌을 돌려 두부를 만들어 주셨다.

한번 시작하시면 이른 아침부터 초저녁이 되어서야 끝나곤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손도 많이 가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니 안나갈꺼면 콩이나 좀 넣어봐.」

「얼만큼.」

「숟가락으로 조금씩만 넣어 보래이.」


주말이라 텔레비전을 볼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나는 장작냄새와 어수선한 집 분위기에 나도 밖으로 나와 엄마를 도왔다.

어느새 맵돌의 손잡이까지 내 손에 잡혀 있었다.

두 손으로 열심히 돌리다가 콩을 넣고, 국자로 물을 조금씩 부어주었다.

엄마가 하는 모습을 보며, 속도는 느리지만 나는 나름 잘 흉내 내고 있었다.

그 사이 엄마는 몇 번을 더 아궁이의 불을 넣고 가마솥에 끓는 물을 버리기를 반복한다.


「정지(부엌)에 가서 부뚜막에 박죽(주걱) 좀 가져온나.」

「이거.」

「그거 말고, 나무 주걱 긴 거 거 있다.」


엄마 옆에서 이렇게 잔심부름을 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일이었다.

잘 갈린 콩물을 다시 체에 걸러, 건더기와 콩물을 분리한다.

건더기인 콩비지는 한동안 밥상에서 자주 보일 것 같다.

직접 띄운 청국장과 김치, 돼지고기를 넣은 콩비지까지 섞어 먹을 수 있는 건 모두 섞지 않을까 싶다.


콩물을 분리하는 작업은 많은 힘이 필요한 부분이라 아부지까지 소환된다.


「잘 좀 잡으소.」

「잡고 있는 거 안 보이나, 빨리 하기나 해라.」


드디어 콩물이 가마솥으로 들어갈 차례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콩물을 부어 한참을 계속해서 저어주셨다.

젓다가 거품 제거하고 또 젓고 반복하다 보면 완성된 두부보다 더 맛있는 두유가 완성된다.


엄마는 설탕을 넣은 따뜻한 두유 한 대접을 먼저 아버지께 넘겨주신다.


「엄마, 나도.」


이때만 맛볼 수 있는 맛이기에 배가 부를 때까지 마셔본다.

나머지 식구들 양을 조금 남겨두고 엄마는 준비한 간수를 조심스럽게 넣을 준비를 하신다.


「엄마 이게 뭐나.」

「이거 너면 콩물이 뭉쳐진데이.」


엄마는 간수를 넣을 때 평소와 다르게 엄청 신중했다.

조금씩 넣고 또 넣고를 반복하신다.

나무 주걱도 정말 조심스럽게 저어 주시면서 말이다.

간수의 양에 따라 두부의 단단함과 식감이 달라진다고 하셨다.


간수를 넣고 또 기다리신다.

두유 다음에 한 번 더 맛볼 수 있는 게 순두부다.

간수로 응고시킨 순두부를 한 그릇 떠다가 간장 양념을 넣어 다시 한번 아부지 입으로 넣어 주셨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우리들도 오랜만의 넣은 군불 덕에 따뜻해진 방에서 한 대접씩 맛본다.


그렇게 늦은 오후까지 작업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솥의 순두부를 두부틀의 부어 준다. 그리고 아부지가 준비한 깨끗한 돌을 두부 틀에 올려주면 작업은 모두 끝난다. 돌의 무게로 틀에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저녁엔 반찬이 두부 요리로 가득하다.

이렇게 길들여진 입맛은 오늘날 마트의 어떤 두부를 사 먹어도 그때 그 맛을 따라오지 못했다.


어렸을 때 정말 이해되지 않았던 건, 가까운 이웃 몇에게만 나눠줘도 될 일을 엄마는 굳이 먼 이웃까지 챙기셨다는 점이었다.

한 집에 두부 한두 모를 건네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신 뒤 집으로 돌아오셨다가, 다시 먼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를 반복하셨다.


그래서였을까. 일이 없는 겨울이면 우리 집은 늘 사랑방이 되었다.

어린 나는 마냥 불만이었다. 내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매번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조심스럽게 텔레비전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마지못해 했던 인사에는, 아마도 싫은 기색이 그대로 드러났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나에게 이웃의 방문은 그저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 역시 사회라는 곳에서 사람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던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부모님은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겨울을 준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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