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숨 쉴 수 있는 자유, 안데스를 내려와 산티아고로
칠레의 첫 관문인 국경 도시 아타카마에서 꿀맛 같은 1박을 보냈다. 볼리비아에서의 거친 여정을 뒤로하고, 비행장이 있는 인근 도시 칼라마(Calama)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항공기를 이용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Santiago)로 향하기 위함이었다. 국경을 넘어 나라는 바뀌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메마르고 혹독한 사막이었다. 안데스가 품은 사막의 기운은 국경이라는 인간의 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몸이 느끼는 변화는 극적이었다. 안데스산맥의 고지대를 내려와서인지 칠레 쪽은 고도가 낮아 훨씬 따뜻했고, 무엇보다 숨쉬기가 한결 편안했다. 며칠 동안 한 모금의 산소가 아쉬워 헐떡이던 고통이 사라지자, 가슴 깊숙이 들어오는 공기의 소중함이 절실히 느껴졌다. 우리가 한국의 평지에서 아무런 불편 없이 숨 쉬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문득 깨달았다. 극한의 고산 지대를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평범한 일상의 안온함이 최고의 사치였음을 실감하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산티아고행 비행기에 올랐다.
(2) 철문 너머의 도시, 산티아고의 겉과 속을 훑다
칠레 여행의 백미인 파타고니아 트레킹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수도 산티아고(Santiago)에 머물렀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려 마주한 도시의 첫인상은 '살벌함' 그 자체였다. 거리의 상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감옥 문을 연상케 하는 두꺼운 철근 이중문을 달고 있었고, 도심 한복판의 우리 숙소 역시 신원을 확인한 후에야 묵직한 철문을 열어주었다. 인근 한국 식당의 주인은 우리를 보자마자 강도를 조심하라며 잔뜩 겁을 주었다. 유럽의 수많은 도시를 섭렵하며 도시 여행의 베테랑이라 자부하는 나였지만,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골목골목을 누비고 싶지는 않았다. 치안이 검증된 중심가와 공원을 위주로 동선을 짰다.
나는 여러 해외 도시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도시의 맥을 짚는 법을 터득했다. 굳이 유명한 박물관이나 성당을 가지 않아도, 시내버스와 지하철 교통권을 사서 이리저리 차를 바꿔 타보는 것만으로도 그 도시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과 승객들의 표정, 그들의 소소한 행동 속에 현지의 진짜 문화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의 지하철 풍경은 긴장감 넘치던 지상의 거리와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지하철 안은 승객만큼이나 잡상인들로 붐볐다. 온갖 생필품과 간식을 파는 이들의 호객 소리는 활기차다 못해 정겨웠다. 심지어 달리는 열차 안에서 기타를 메고 열창을 한 뒤, 모자를 돌려 공연비를 청구하는 '지하철 가수'까지 등장했다.
지하철의 지상 구간을 주로 이용하며 나는 산티아고를 눈에 담았다. 덜컹거리는 열차에 몸을 맡긴 채, 스쳐 지나가는 건물들과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산티아고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알아채기에 충분했다. 철문으로 굳게 닫힌 경계심 뒤에 숨겨진, 치열하고도 흥겨운 사람 냄새를 맡으며 나는 이틀 뒤 마주할 파타고니아의 거대한 자연을 꿈꿨다.
(3) 대륙의 끝, 파타고니아의 찬연한 한기 속으로
아침 첫 비행기에 몸을 싣고 드디어 파타고니아의 관문인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로 향했다. 기항하는 항공기 창밖으로 내려다본 풍경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해안선은 마치 거대한 힘에 의해 육지에서 갈기갈기 찢겨 나간 듯 파편이 되어 흩어져 있었다. 남극이 멀지 않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점점이 박힌 섬들과 산 정상마다 하얀 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트랩을 내려서는 순간, 알싸하고 차가운 한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안데스의 고산 지대에서 느꼈던 희박한 공기와는 또 다른, 투명하고도 날카로운 극지(極地)의 공기였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다시 한번 비현실적인 풍경과 마주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주변을 에워싼 산들은 내 평생 눈에 익숙했던 그것들과는 결이 달랐다. 빛의 산란이 다른 것일까, 색깔이 다르고 그 기운이 달랐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도시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나지막한 산들이었다. 대개 만년설이라 하면 해발 5,000m급 고산에서나 볼 수 있는 전유물이라 생각했는데, 이곳은 고작 해발 1,000m 남짓한 낮은 산들이 당당하게 만년설을 이고 있었다. 위도가 높아지면 고도가 낮아도 영원히 녹지 않는 눈을 가질 수 있다는 자연의 섭리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숙소에 여장을 풀자마자 참지 못하고 바로 해안가로 나섰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해안 길은 낯섦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낯섦은 여행자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기분 좋은 설렘이었고, 이내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변해갔다. 드디어 내가 파타고니아에 왔구나. 55일 여정 중 가장 기대했던 그 대자연의 심장부로 들어온 것이다.
(4) 파타고니아의 주름치마 속으로, 토레스 델 파이네 일일 투어
숙소 옆 여행사를 찾아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 일일 투어 상품을 확인했다. 우리 일행 8명이 현금으로 한꺼번에 결제하겠다는 조건으로 협상에 나섰고, 끈질긴 대화 끝에 정가의 30%를 깎는 성과를 거두었다. 세계 어디를 가나 '현금 결제'라는 협상 전략은 유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날 투어에 올랐다.
국립공원으로 향하며 문득 구글 지도로 살펴본 이 지역의 형상을 떠올려 보았다. 파타고니아의 해안선은 스코틀랜드 북부, 노르웨이의 피오르, 그리고 캐나다의 북단 해안과 닮은 꼴이다. 육지가 갈기갈기 찢긴 듯 갈라져 있고, 산줄기는 마치 여인의 주름치마처럼 겹겹이 접혀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는 보석 같은 호수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2년 전 캠핑카를 몰고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를 누비며 감탄했던 그 모습이, 이곳 파타고니아에서는 한층 더 잔잔하고도 웅장한 아름다움으로 내 눈앞에 펼쳐졌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일일 투어는 파타고니아의 미학을 단 하루 만에 압축해서 보여주었다. 산봉우리마다 이고 있는 만년설이 뜨거운 햇살에 녹아내려, 산 아래에는 거대한 옥빛(Jade) 호수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물길이 굽이쳐 흐르며 눈부신 계곡과 푸른 벌판을 일구고, 그 벌판 위로는 가축들이 평화로이 뛰놀았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 전무한 채, 오로지 자연만이 광활하게 주인이 되어 다스리는 이 풍경 앞에서 나는 종일 눈을 떼지 못했다. 비현실적인 풍경이 현실이 되어 다가올 때마다 입안에서는 끊임없이 감탄사가 맴돌았다. 파타고니아는 내가 본 세상 중 가장 정직하고도 화려한 자연의 보고였다.
(5) 선택과 집중: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과 마젤란의 숨결
드디어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어제는 버스를 타고 국립공원의 겉모습을 훑어보았다면, 이제는 그 깊숙한 '저편'을 향해 직접 발을 내딛는 시간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3일 후면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 쪽 파타고니아로 이동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었다. 산에 머물 것인가, 역사를 만날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2박 3일 동안 오롯이 산속에 머물며 트레킹의 정점을 맛볼 것인가, 아니면 1박 2일로 트레킹을 갈무리하고 남은 하루는 마젤란의 항해 흔적이 남아있는 남극의 관문 도시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를 가볼 것인가.
고민 끝에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산의 웅장함만큼이나 인류 역사의 거대한 발자취 또한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행 중에는 2박 3일 트레킹을 완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일정을 맞추는 대신, 첫날은 홀로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를 다녀온 뒤 이튿날부터 1박 2일 트레킹에 합류하기로 했다.
(6) 두 종류의 광활함: 푼타 아레나스로 향하는 길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푼타 아레나스까지는 버스로 세 시간 거리. 비록 짧지 않은 이동이지만, 차창 밖으로 흐르는 파타고니아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지루할 틈 없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푼타 아레나스로 향하는 길은 '광활함' 그 자체였다. 문득 며칠 전 지나온 볼리비아 고산 사막의 광활함이 떠올랐다. 볼리비아의 그것이 메마른 대지와 희박한 공기가 주는 삭막하고 살벌한 광활함이었다면, 이곳 파타고니아의 평원은 양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는 온화하고 넉넉한 광활함이었다. 같은 '넓음'이라도 땅이 품은 생명력에 따라 이토록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계절은 이제 막 겨울의 막바지를 지나고 있었다. 아직 새싹이 돋지 않아 벌판은 온통 노란 빛깔이었지만, 머지않아 대지를 뚫고 올라올 푸르른 생명력을 예감할 수 있었다. 곧 온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일 그 싱그러운 풍경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 아쉬움 덕분에 나는 이 노란 벌판 위에서 더 깊은 상상력을 발휘하며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향했다.
(7) 세계의 끝에서 올리는 기도: 푼타 아레나스의 영광과 마젤란의 발가락
푼타 아레나스는 마젤란 해협을 품고 남극 대륙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도시다.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전 세계의 모든 배는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했다. 당시 양모 산업과 항만업으로 일군 엄청난 부는 도시 곳곳에 유럽풍의 화려한 저택들로 남아,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을 증언하고 있었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마젤란이 세계 일주 중 이곳을 지나갔음을 기념하는 조각들이 시대를 건너온 인사를 건넨다.
도시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도시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지붕들이 저 멀리 맞닿은 푸른 하늘, 그리고 그보다 더 짙고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눈부신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차가운 남극의 바람조차 잊게 할 만큼 평온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도시 중앙 광장에는 탐험가 마젤란의 동상이 위엄 있게 서 있다. 동상의 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속설 때문인지, 사람들은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역시 한참을 기다린 끝에 그 반들반들해진 발가락을 꼭 부여잡고 행운을 빌며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나는 여행지에 종교 시설이 있으면 늘 그 안으로 들어가 기도를 올린다. 이번 장기 여행의 위험 요소들을 무사히 넘겨 건강하게 귀국할 수 있기를, 그리고 멀리 있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간절히 빌어준다. 올 한 해만 해도 수많은 신(神) 앞에 섰다.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절에서, 발리의 힌두 사원에서, 이스탄불의 모스크에서, 부다페스트와 헝가리의 성당에서, 차마고도의 티베트 사원과 조지아의 정교회까지. 나의 안전과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을 위해 수없이 머리를 숙였다.
이제는 마젤란 동상의 발가락을 잡고 남은 여정의 안녕을 빌었다. 내 기도를 누군가 초월적인 존재가 들어줄 것이라 굳게 믿어서가 아니다. 기도를 올리고 나면 요동치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내 기도 덕분에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힘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트레킹을 하루 줄인 아쉬움은 어느새 사라졌다. 남극에 가장 가까운 유서 깊은 도시, 푼타 아레나스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확신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8) 길 위의 고수들 앞에서 겸허해진 토레스 델 파이네의 아침
1박 2일간의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시간을 알뜰하게 쓰기 위해 첫날 첫차와 둘째 날 마지막 차를 예매하며 꽉 찬 이틀을 보낼 작정을 했다. 1박은 ‘삼봉(Las Torres)’ 아래에 위치한 산장을 예약했는데, 침낭 하나 겨우 들어가는 조그마한 2인용 텐트 하룻밤 값이 웬만한 호텔비보다 비싸니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하지만 이 비현실적인 땅에서는 그조차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른 아침, 트레킹 복장을 한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에 올랐다. 내 옆자리에는 스위스에서 혼자 왔다는 40대 여성이 앉았다. 그녀는 8박 9일 동안 토레스 델 파이네의 모든 코스를 완주할 계획이라고 했다. 우유니 소금 호텔에서 자전거를 끌고 온 여성 라이더들을 보고 경탄했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또 한 번 ‘엄청난’ 여행자를 마주한 것이다. 혼자 남미를 3개월째 누비며 8박 9일의 험난한 트레킹을 홀로 감당하겠다는 그녀의 결기를 보며, 세상에는 정말 ‘날고 기는’ 여행자가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문득 8년 전 히말라야에서의 기억이 스쳤다. 지뢰를 밟아 다리 하나를 잃었다는 보스니아 청년이 목발을 짚은 채 그 험한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었다. 그 장엄한 의지 앞에서, 멀쩡한 두 다리를 가지고도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던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작년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앞에서 만난 시각장애인 부부의 모습은 지금도 나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들이 왜 아야소피아를 보겠다고 지팡이를 두드리며 그 먼 길을 왔을까? 트램길에서 당황해하던 그들의 손을 잡아 인도하면서도 궁금증은 가시지 않았다.
아마 그들은 눈이 아닌 가슴으로, 혹은 공기의 흐름과 역사의 숨결로 그곳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이토록 여행에 진심인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내가 어디 가서 여행 좀 많이 해봤다는 소리를 섣불리 꺼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겸허한 마음으로 무장한 채, 나는 다시 한번 배낭의 끈을 조여 매며 산의 품으로 들어갔다.
(9) 파이어부쉬의 유혹과 얼어붙은 파타고니아의 밤
공원 입구에서 전용 버스로 환승해 트레킹 기점에 닿았다. 세계적인 코스라는 명성답게 발을 내딛는 곳마다 산과 호수가 빚어내는 절경이 이어졌다. 특히 산기슭마다 불이라도 붙은 듯 강렬한 붉은빛을 뿜어내는 '파이어부쉬(Firebush)'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모습은 장관이었다. 산장까지 이어지는 길은 다행히 북한산 둘레길을 걷듯 완만하고 평안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친김에 '삼봉(Las Torres)'까지 치고 올라가고 싶었지만, 앞으로 한 달이나 더 남은 여정을 생각하며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장기 여행자에게는 자신의 몸을 아끼고 에너지를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장은 이미 전 세계에서 모여든 트레커들로 활기가 넘쳤다. 비좁고 답답한 텐트를 피해 모두가 산장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우리 일행도 그 틈에 끼어 앉아 파타고니아의 정수(精髓)를 안주 삼아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자연의 품 안에서 마시는 맥주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여행의 낭만 그 자체였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낭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온은 0도 근처까지 곤두박질쳤고, 산장 전체가 시퍼런 한기에 짓눌렸다. 느지막이 기어 들어간 텐트는 기이한 구조였다. 마치 시골의 원두막처럼 공중에 붕 떠 있어 위태로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사고를 걱정하며 겨우 들어선 텐트 안, 산장에서 빌려준 침낭을 펼쳐보니 얇디얇은 봄가을용이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에 몸을 덜덜 떨며 잠을 청해봤지만, 이번에는 저녁에 마신 맥주가 문제였다. 낮 동안 탐닉했던 맥주의 대가는 혹독했다. 요동치는 방광은 영하의 기온보다 더한 인내심을 요구했고, 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차가운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벗어놓은 등산화를 더듬어 찾아야 했다. 지공거사의 자존심으로 노상방뇨의 유혹을 물리치고 화장실까지 먼 길을 다녀와야 했다. 추위와 방광의 요동침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파타고니아의 밤은 악몽이 되었다.
(10) 삼봉의 경건함과 가시나무 숲의 모험, 그리고 어느 배낭여행자의 자부심
추위와 생리적인 고통이 뒤섞인 악몽 같은 밤을 털어내려 새벽같이 길을 나섰다. 일출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어둠을 뚫고 산을 올랐다. 설악산 무박 산행을 수차례 다녀오고 북한산을 수백 번 오르내린 나에게, 토레스 델 파이네 삼봉으로 가는 길은 사실 난이도 면에서는 북한산보다 평이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명성은 난이도가 아닌 그 압도적인 풍경에서 온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어느 산이나 그렇듯 마지막 '깔딱 고개'는 숨이 가쁘고 땀방울이 맺히게 마련이다. 그 고비를 넘겨 마침내 삼봉 앞에 섰을 때,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세 개의 거대한 돌기둥과 그 발치에 고인 신비로운 호숫물은 나를 절로 숙연하게 만들었다. 나는 경건한 풍경 앞에서는 늘 마음을 모은다. 며칠 전 마젤란의 발가락을 잡고 기도했듯, 이번에는 대자연의 심장인 삼봉을 바라보며 남은 여정의 안녕과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을 빌었다.
하산을 마쳤는데도 예약한 마지막 버스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산 위에서 점찍어 두었던 먼 호수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정식 트레킹 코스는 길게 돌아가게 되어 있어, 나는 지름길이라 믿고 길이 없는 숲을 그냥 뚫고 지나가기로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맞았다. 얼마 못 가 가로막힌 철조망과 마주했다. 무단 침입을 피하려 담벼락 같은 철조망을 빙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그 길이 그야말로 '으악' 소리가 절로 나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동물이 다니는 가파른 비탈에 가시나무가 빽빽했다.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고, 나를 믿고 따라온 여성 회원 한 명은 계속 가보자며 재촉했다. "무섭다"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허세를 부리며 전진했다. 삼봉에서 올린 기도 덕분이었을까, 어찌어찌 길을 개척해 사고 없이 호수까지 도착했고 호숫물을 한모금하며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공원 입구로 돌아왔지만 버스 시간은 여전히 한참 남았다. 그때 마침 출발하려는 버스 한 대에 선명한 '한글'이 보였다. 한국 단체 관광버스였다. 혹시나 빈자리가 있을까 싶어 다가간 버스 창 안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60대 한국인 여행객 서른 명 남짓이 앉아 있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꼴이 어떨지 짐작이 갔다. 한 달 넘게 면도를 안 하고 며칠간의 강행군으로 먼지를 뒤집어쓴, 그야말로 노숙자 수준의 꾀죄죄한 모습. 반면 버스 안의 그들은 고급스러운 옷차림에 화장까지 마친 영락없는 신사숙녀들이었다.
태워 달라는 내 요청에, 길이 달라서 미안하다는 정중한 거절과 함께 나를 향한 측은한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측은함 너머에는, 거친 길을 스스로 개척하며 걷는 배낭여행자에 대한 부러움 섞인 눈빛이 분명히 서려 있었다. 말끔한 차림의 그들 눈에는 내가 초라한 노숙자처럼 보였을지 모르나, 내 낡은 등산화에는 가시나무 숲을 헤치며 개척한 길의 역사가, 그리고 내 눈빛에는 야생을 정면으로 통과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긍지가 새겨져 있었다.
(11)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품으로
가시나무 숲을 헤치고 돌아온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마음만은 가을날의 수확을 마친 농부처럼 풍성했다. 예약한 마지막 버스를 타고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로 돌아와 안락한 침대에서 깊은 숙면을 취했다. 산속 텐트에서의 악몽 같은 추위를 겪고 난 뒤라 평범한 호스텔의 온기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다시 배낭을 챙겨 메고 아르헨티나행 국경 버스에 올랐다. 이제 칠레 파타고니아와는 작별을 고하고, 세계적인 빙하의 도시 엘 칼라파테(El Calafate)가 기다리는 아르헨티나로 향할 차례였다. 창밖으로 흐르는 파타고니아의 풍경은 여전히 광활했다. 칠레의 길 위에서 마주쳤던 인연들, 삼봉의 경건했던 모습, 그리고 꾀죄죄한 내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패키지 여행자들의 눈빛까지... 그 모든 기억이 국경을 향해 달리는 버스의 진동 속에 하나둘 정리되어 갔다. 국경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또 어떤 새로운 대자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시 한번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