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풍경이 평범해지는 신비한 나라
국경에서 마주한 후진국의 민낯
예기치 않은 국경 폐쇄로 푸노에서 하루를 더 머문 후, 다음 날 아침 버스로 볼리비아 국경으로 향했다.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볼리비아 출입국 관리소에 갔는데, 담당자가 여러 가지 서류를 요청했다. 우리는 이미 한국에서 어렵게 비자를 받아온 상태였다. 사실 주한 볼리비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을 때부터 고생이 심했다. 얼마나 까다롭게 굴고 갑질을 하는지, 비자를 받으면서 정말 화가 많이 났지만 꾹 참고 받아낸 비자였다.
그런데 국경 출입국 직원은 모든 서류를 다시 제출하라고 고집을 피웠다. 심지어 한국 통장의 잔고 증명서까지 요청하는 게 아닌가. 이는 명백히 뇌물을 달라는 신호였다. 후진국의 전형적인 부패였다. 결국 실랑이 끝에 개인당 몇십 불씩을 쥐여주고서야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볼리비아에 대한 첫인상은 나빴지만, '우유니 사막' 같은 남미의 정수를 보기 위해서는 참아야만 했다. 볼리비아 입국을 위해 그 고생을 하고 귀국했는데, 귀국직후인 12월 2일 볼리비아 비자가 면제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1) 폭동을 뚫고 태양의 섬으로
어렵게 국경을 통과한 후 첫 목적지인 '태양의 섬'으로 가기 위해 관문인 코파카바나로 향했다. 그런데 한국 외교부로부터 긴급 문자가 날아왔다. 볼리비아 대통령 선거 불복으로 시민들이 주요 도시에서 폭동을 일으켰으니 여행을 자제하라는 내용이다. 특히 우리가 가려는 태양의 섬이 위험하니 절대 가지 말라는 경고가 포함되어 있었다.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지만, 우리 일행은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했다. 오히려 도시가 폭동으로 혼란스럽다면, 외딴섬인 그곳이 대피처로서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는 외교부의 경고를 뒤로하고, 렌트한 작은 배에 몸을 싣고 태양의 섬을 향해 푸른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2) 하늘과 맞닿은 호수, 태양의 섬을 걷다
태양의 섬으로 들어가는 뱃길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호수의 물빛, 수면 위로 점처럼 흩어진 작은 섬들, 그리고 아득히 보이는 육지의 실루엣까지 모든 것이 낯설고도 신비로웠다. 물은 속이 비칠 듯 투명하면서도 짙은 파란색이었고, 하늘 역시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맑고 시린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구름의 생김새조차 우리 것 과는 달랐다. 아마 해발 4,000미터라는 압도적인 고도가 공기의 밀도를 바꾸고, 그 투명한 공기가 이토록 정갈한 빛깔들을 빚어냈을 것이다.
섬 북쪽 선착장에 내려 숙소가 있는 남쪽까지 종단 트레킹을 시작했다. 나는 평소 한국에서도 섬 트레킹을 즐겼다. 여수 금오도의 비렁길, 거제도의 해안길, 그리고 다도해의 수많은 섬을 걸으며 바다와 하늘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충분히 경험했다. 하지만 태양의 섬을 걷는 경험은 그 모든 기억을 압도할 만큼 강렬했다. 능선을 따라 걸으며 내려다보는 호수와 해변은 지금까지 내가 봐온 그 어떤 바다보다도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섬 곳곳에는 잉카 제국의 숨결이 서린 유적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외교부의 경보와 폭동의 소문이 무색할 만큼, 태양의 섬은 고요하고도 찬란한 평화를 품고 있었다.
(3) 안데스의 기묘한 분지, 라파스에서 마주한 세상
태양의 섬을 떠나 볼리비아의 수도인 라파스(La Paz)로 향했다. 안데스의 거대한 평원을 달리는 길, 잡풀만이 듬성듬성 돋아난 황량한 대지를 바라보며 앞으로 이어질 10일간의 안데스 여행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마침내 마주한 라파스는 그야말로 기이한 풍경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 중간이 마치 무언가에 눌린 듯 푹 꺼져 있고, 그 거대한 구덩이 안에 도시가 들어앉아 있는 모습은 생경하다 못해 괴이하기까지 했다.
라파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도시 곳곳을 연결하는 곤돌라였다. 관광용이 아닌 현지인들의 대중교통인 곤돌라를 타고 몇 번이나 도시를 가로질러 다녔다. 곤돌라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라파스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도시 동쪽의 경치는 단연 압권이었다. 도시 외곽을 둘러싼 산들은 수만 년의 침식작용이 빚어낸 작은 그랜드캐년 같았고,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색깔과 기괴한 형태들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분지 가득 빽빽하게 들어선 붉은색 지붕의 집들은 그 척박한 땅 위에서 피어난 꽃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나는 몇 번이고 곤돌라를 갈아타며 라파스의 이 특이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켰다.
라파스 곳곳의 재래시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세상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장은 활기차지만, 이곳의 시장은 안데스의 색채가 섞여서인지 묘한 이질감이 섞인 매력이 있었다. 그러다 정말 신기한 일을 겪었다. 물을 사러 들어간 아주 작은 구멍가게에서 익숙한 한국어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의아해서 둘러보니 가게를 지키던 아가씨가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는 TV를 넋 놓고 보고 있었다. 이 머나먼 볼리비아의 산골 구멍가게까지 한국의 K-컬처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니, 우리 문화의 힘을 새삼 실감하며 가슴 한구석이 뿌듯해졌다.
(4) 안데스의 숨결을 따라, 5,000m 빙하와 기암괴석의 미로
라파스에 머무는 5일 동안 나는 총 세 번의 트레킹에 나섰다. 내가 참여한 여행 카페는 단순한 관광보다 트레킹에 집중하는 곳이었기에 가능한 일정이었다. 첫날은 챠르키니(Charquini) 빙하, 셋째 날은 콘도리리(Condoriri) 빙하를 향했다. 두 곳 모두 해발 5,000m에 달하는 험준한 고산이다. 차를 타고 산 아래까지 접근한 뒤 실제 걷는 고차(高差)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희박한 공기 탓에 완만한 경사조차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와 차마고도 등 4,000m 이상의 고지를 여러 번 경험했음에도, 안데스의 저산소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매번 새로운 도전이었다. 마침내 도착한 빙하의 끝자락. 차디찬 빙하에 입을 맞추고, 얼음 한 조각을 떼어 입에 물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태고의 시원함으로 고된 트레킹의 완주를 자축했다.
둘째 날 향한 아니마스(Animas) 계곡과 '달의 계곡'은 전혀 다른 풍경을 선사했다. 마치 티베트 불교의 백탑사원들이 끝없이 줄지어 서 있는 듯한 장관이었다. 수만 년의 세월 동안 비바람이 깎아낸 수천 개의 뾰족한 탑들을 바라보며 메마른 모래 길을 걷는 것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부드러운 사암으로 이루어진 이 탑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풍화와 침식작용을 거치며 형태를 바꾸고 있었다.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뾰족탑들 사이, 미로처럼 뚫린 길을 걸으며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예술품을 온몸으로 음미했다. 아니마스 계곡이 웅장한 거대 사원이었다면, 달의 계곡은 앙증맞은 탑들이 모여 있는 정원이었다.
(5) 지공거사의 동심을 깨우다, 하얀 마법의 땅 우유니
라파스에서의 강렬한 기억을 뒤로하고 우리는 야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밤새 달려 새벽에 목적지에 닿는 야간 버스는 시간과 숙박비를 동시에 아낄 수 있어 배낭여행자들에겐 1석 2조의 유용한 수단이다. 달콤한 잠 끝에 눈을 뜨니 어느덧 버스는 새벽안개를 뚫고 우유니 시내에 닿아 있다. 우리는 오프로드 차량 두 대를 렌트해 서둘러 우유니 소금 평원으로 향했다. 수많은 여행객을 상대해 온 베테랑 운전사들은 우리 일행에게 온갖 기발한 포즈를 요구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지공거사에게는 자못 민망한 포즈들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이를 잊고 동심으로 돌아갔다. 하얀 소금벌판 위에서 아이들 재롱잔치를 하듯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사실 우유니는 사진으로 너무나 많이 봐왔기에 익숙한 곳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마주한 실체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눈부신 하얀 소금밭, 그리고 얇게 고인 물 위로 데칼코마니처럼 비치는 하늘. 그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운 모습은 나를 들뜨게 했다.
(6) 소금의 성소와 기둥 선인장의 섬
다음 날, 우리 일행은 지프차에 몸을 싣고 3박 4일간의 우유니를 비롯한 고산 평원 여정을 시작했다. 차 지붕 위에 휘발유통과 식재료를 잔뜩 실은 모습이 마치 오지 탐험대를 연상케 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 포터와 요리사가 동행했던 것처럼, 이곳에선 운전사들이 가이드이자 요리사 역할을 겸했다.
숙소를 출발한 차는 황량한 사막 속 ‘기차 무덤’을 지나 다시 광활한 우유니 소금 평원으로 들어섰다. 30분쯤 달렸을까, 만국기가 펄럭이는 소금 휴게소가 나타났다. 우리는 그곳에서 소금으로 만든 식탁과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는 기이한 체험을 했다. 문득 밖을 보니 소금 평원 위에 화려하게 텐트를 치고 식사를 즐기는 무리가 보인다. 뜻밖에도 한국 여행객들이었다. 한국 여행사들이 연출한 특별한 식사 이벤트인 듯했다. 머나먼 이곳 우유니에도 동남아 못지않게 많은 한국인이 안데스의 낭만을 즐기고 있다.
소금 평원 깊숙한 곳에 ‘선인장 섬(Isla Incahuasi)’이 있다. 이곳은 다시 한번 비현실적인 감각을 일깨우는 신비로운 장소였다. 끝없는 하얀 소금 바다 한가운데 섬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섬 전체가 거대한 선인장 기둥으로 빽빽하게 뒤덮인 모습은 경이로움을 넘어 기괴하기까지 했다. 섬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그야말로 압도적인 고립감이 느껴진다. 사방은 끝이 보이지 않는 소금밭인데, 이 외딴섬에만 수천 개의 선인장이 기둥처럼 서 있다니. 얼마 전 다큐멘터리에서 본 ‘구게 왕국’의 유적이 겹쳐 보였다. 모래사막 언덕 위 수많은 나무 기둥 아래 공동묘지가 있었다는 그곳처럼, 이곳의 선인장 기둥 아래에도 무언가 으스스한 비밀이 묻혀 있을 것만 같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위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따개비와 산호의 흔적이다. 수백만 년 전 이곳이 바다였음을 증명하듯, 융기한 바위 위에는 여전히 바다의 잔재가 화석처럼 남아 있다. 아득한 세월의 흐름을 품은 채 소금 바다 위에 떠 있는 선인장의 섬. 그곳에서 나는 인간의 시간을 초월한 대자연의 거대한 역사를 목격했다.
(7) 소금 벽돌집에서의 하룻밤, 불편함이 주는 희열
선인장 섬을 뒤로하고 다시 북쪽으로 한 시간여를 달려 휴화산 앞자락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의 숙소는 이름 그대로 ‘소금 호스텔’이다. 실내로 들어서니 벽면은 물론 침대, 식탁, 의자까지 모든 가구가 소금 덩어리를 블록처럼 다듬어 만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사방에 널린 것이 소금이니, 이곳 사람들에게는 소금을 나무처럼 잘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고 손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소금을 블록처럼 잘라 벽돌처럼 쌓아 올리면 내구성도 제법 훌륭해 보였다. 자연이 준 가장 흔한 재료가 삶의 터전이 되는 현지인들의 지혜이다.
시설은 열악했다. 하지만 이곳의 3박 4일은 오지 배낭여행이라 마음먹었기에, 안데스의 매서운 칼바람을 막아줄 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마구간보다 조금 나은 형편일지라도, 그곳은 탐험가들에게는 아늑한 요새나 다름없다. 한국의 일반 패키지여행팀은 결코 이런 경로로 오지 않는다고 한다. 60대 이상 점잖은 분들을 이런 열악한 숙소에 재웠다가는 난리가 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불편함을 오히려 여행의 '희열'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장소이다. 차디찬 소금 침대 위에서 몸을 뉘었지만, 가슴속에는 안데스의 야생을 온전히 겪어내고 있다는 뿌듯함이 차올랐다.
(8) 소금밭의 여전사들 앞에서 작아진 지공거사
소금 호스텔에서의 하룻밤을 준비하던 중, 나의 기를 단번에 꺾어놓는 여행자들을 만났다. 서늘한 안데스의 바람을 뚫고 30대 독일 여성과 20대 미국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숙소 마당으로 들어선 것이다. 놀라움에 말을 걸어보니 그녀들의 여정은 더욱 기가 막혔다. 독일 여성은 무려 3년째 자전거 한 대에 의지해 전 세계를 돌고 있었고, 미국 여성은 6개월 전 독일여성을 만나 의기투합하여 남미까지 흘러왔다고 한다. 두 사람은 벌써 3개월째 남미의 거친 대지를 페달을 밟아 누비는 중이었다.
우리가 사륜구동 지프차로 먼지를 날리며 달려온 이 거친 소금밭과 사막을, 그녀들은 오직 두 다리의 힘으로 건너온 것이다. 문득 그녀들의 허벅지를 보니, 웬만한 장정보다 굵고 탄탄한 근육이 마치 단단한 돌기둥처럼 보였다. 그 건강한 에너지와 거침없는 용기 앞에서 '오지 배낭여행자'라고 자부하던 나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건만, 세상은 넓고 그 위를 걷는(아니, 달리는) 고수들은 끝이 없다. 그녀들의 자전거 바퀴에 묻은 하얀 소금 가루를 보며, 나는 내가 누리는 지프차의 안락함이 새삼 미안해질 정도로 깊은 경의를 표했다. 진짜 '불편함의 희열'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그들이야말로 이 황량한 안데스의 진정한 주인처럼 보였다.
(9) 뒤집힌 세상, 산 위에서 바라본 소금 바다
다음 날 아침, 마을 뒤편에 솟아 있는 화산(Volcano)에 올랐다. 산 정상에는 제주도 백록담처럼 거대한 분화구가 있었는데, 한쪽 면이 반쯤 무너져 내려 있어 화산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 내부의 단면은 비니쿤카(무지개산)에서 보았던 것처럼 형형색색의 띠를 두르고 있었다. 안데스의 지질 자체가 태초부터 이토록 화려한 빛깔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 신비로운 분화구를 향해 숨을 몰아쉬며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마침내 정상에 서자, 발아래로 우유니의 전 지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그 아래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소금밭. 그것은 내 평생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해석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본래 자연의 이치란 눈이 오면 산이 하얗게 변하고, 바닥은 눈이 녹아 제 빛깔을 드러내야 마땅한 법이다. 그런데 이곳은 정반대였다. 산은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한 본래의 흙빛을 띠고 있는데, 발바닥이 닿는 저 아래 세상은 온통 눈에 덮인 듯 하얀 소금 바다를 이루고 있다. 4,000미터가 넘는 고도 탓에 산에는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았고, 머리 위의 구름 역시 지상에서 보던 것과는 질감과 형태가 완전히 다른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뒤집힌 세상의 풍경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잊었다. 나는 바위 위에 앉아 한참 동안 넋을 잃고 그 풍경을 응시했다. 그것은 여행자가 맛볼 수 있는 가장 고요하고도 강렬한 경외감이었다.
(10) 지옥의 호수에서 만난 붉은 천사, 플라밍고
화산 트레킹을 마친 우리 일행은 다시 소금 평원을 가로질러 플라밍고가 서식한다는 소금 호수를 향했다. 워낙 먼 길이라 중간 지점에서 하루를 묵어가야 한다. 숙소로 향하는 길 역시 우유니만큼은 아니지만, 대지의 대부분이 하얀 소금을 뒤집어쓰고 있다. 이 광대한 지역이 농사 한 번 지을 수 없는 불모지라는 사실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몇 시간을 달리자 사막 속에 기적처럼 오아시스가 나타난다. 푸른 풀과 나무가 자라고, 황량한 벌판 위에 작고 소박한 마을이 있다. 거센 바람에 흙먼지가 뿌옇게 날리는 이곳의 호스텔 역시 시설은 ‘도긴개긴’이었으나, 안데스의 추위를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며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흙먼지를 일으키며 척박한 안데스 고원을 달렸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산들 사이로 흙과 소금이 뒤섞인 사막이 끝없이 이어진다. 한참을 가다 보니 칠레에서 볼리비아로 이어지는 철도가 불쑥 나타난다. 생명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사막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철길의 모습이 사뭇 생뚱맞으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준다. 몇 시간을 더 달렸을까, 드디어 이곳저곳에 소금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호수 위에는 거짓말처럼 플라밍고 무리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소금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이 지독한 염도의 호수에서 저리도 아름다운 생명이 살고 있다니, 참으로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동물원에서 보았던 플라밍고는 작고 연약해 보였으나, 이곳 안데스의 플라밍고는 달랐다. 더 붉고, 더 크고, 훨씬 힘찼으며 살집도 통통했다. 주변의 산세는 살벌한 지옥을 연상케 할 만큼 황량하고 호수는 짜디짠데, 그 한가운데에 저토록 우아하고 붉은 생명이 무리 지어 있다니. 자연의 조화란 참으로 신비롭다. 우리는 호수가 나타날 때마다 차를 멈추고 플라밍고의 고고한 자태를 감상했다. 그중에서도 전망대가 있는 커다란 호수가 압권이었다. 전망대 식당의 통창 너머로 수천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플라밍고들의 화려한 군무가 펼쳐진다. 우리는 그 경이로운 광경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다. 며칠째 사막 길을 달리며 먼지를 뒤집어쓴 초라한 행색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연미복을 입고 근사한 공연장에서 식사하는 귀빈들처럼 우아하고 풍요로운 마음이었다.
(11) 비현실이 일상이 되는 곳, 안데스의 붉은 심장
식사 후, 우리는 또 다른 신비로움을 찾아 길을 재촉했다. 가는 곳마다 우리가 상상해 온 현실의 범위를 넘어서는 풍경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척박한 바위 언덕 앞에 차들이 멈춰 서 있기에 내려보니, 놀랍게도 토끼(비스카차)들이 먹이를 줄까 싶어 사람들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 메마른 사막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그들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다시 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돌의 공원'이었다. 황량한 사막 한복판에 바위들이 뜬금없이 서 있는데, 그중 나무처럼 위는 거대하고 아래는 가느다란 기둥처럼 남은 바위 하나가 위태롭게 서 있다. 오랜 세월 바람과 모래가 씻어낸 자연의 조각품 앞에 서니, 그 위대함과 오묘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여정은 국립 자연보호 구역으로 이어졌다. 이미 소금 호수와 플라밍고를 질리도록 본 터라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가는 것이 내심 찝찝했으나, 호수를 마주한 순간 그 의심은 경탄으로 바뀌었다. 그곳은 바로 '붉은 호수(Laguna Colorada)'였다. 물빛은 투명한 물이 아니라 짙은 자줏빛을 띠고 있었고, 태양의 각도와 시간에 따라 그 색깔이 시시각각 변한다. 호수 위로는 수많은 플라밍고가 날아오르고, 보호구역답게 야생 라마들이 곳곳에서 평화롭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제는 이 비현실적인 광경들이 오히려 보통의 일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눈을 뜨면 마주하는 모든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곳. 왜 사람들이 남미 여행을 '여행의 끝판왕'이라 부르는지, 그 이유를 온몸으로 실감했다.
(12) 불편함의 정점, 마구간에서의 하룻밤과 노천온천
붉은 호수의 강렬한 자줏빛 여운을 뒤로하고 오늘 밤을 의탁할 숙소로 향했다. 길은 여전히 소금 호수들의 잔잔한 물결과 안데스 특유의 황량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도착한 숙소는 그야말로 '불편함의 끝판왕'이었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둡고 찬 방, 흡사 마구간을 연상케 하는 그곳에서 나는 이번 여행이 약속한 '불편함'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안데스의 냉기를 견디며, 문명과 완벽히 단절된 채 하룻밤을 보내는 일은 오지 배낭여행자가 치러야 할 마지막 통과의례였다.
숙소 근처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노천온천이 있었다. 젊은 여행자들이 탕 속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차가운 몸을 녹이는 모습이 꽤 활기차 보인다. 나도 잠시 그 틈에 끼어볼까 고민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동안 세계 곳곳의 이름난 노천온천들을 두루 경험해 본 터라, 굳이 준비도 없이 저 열악한 환경에서 쭈그리고 앉아 고생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젊은이들의 열기도 좋지만, 때로는 보지 않아도 이미 아는 즐거움을 위해 무리하지 않는 것 또한 여행이 주는 지혜다. 나는 뜨거운 온천물 대신 차가운 안데스의 밤공기를 택하며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13) 국경을 넘으며 떠올린 52년 전의 기억
다음 날 이른 아침, 칠레로 넘어가기 위해 국경으로 향했다. 볼리비아에 입국할 때 부패한 직원들의 횡포에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생생해 긴장했으나, 칠레 국경의 검문은 놀랄 만큼 간단했다. 마치 표를 보여주고 극장에 들어가는 것처럼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운 절차였다. 칠레행 버스에 올라 몇 분쯤 달렸을까, 창밖으로 매끄럽게 뻗은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안데스의 사막 고원의 풍경은 볼리비아나 칠레나 다를 바 없었지만, 바닥을 구르는 바퀴의 진동은 천지차이였다. 그 한 줄의 경계선을 기점으로 양국의 경제적 수준 차이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문득 52년 전의 추억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1973년, 고교 시절 수학여행으로 여수에서 합천 해인사를 가던 길이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도계를 넘어서는 순간, 눈앞의 풍경은 판이하게 갈라졌다. 전라도 쪽 길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척박한 비포장도로였는데 경상도로 들어서자 포장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그 극명한 대비를 보며 느꼈던 서글픔과 허탈함이 지금 이 남미의 국경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은 그 격차를 극복해 냈지만, 안데스의 이 길은 국가의 국력을 정직하게 웅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