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항공기 결항과 페루 비상사태
인천을 출발한 항공기는 LA에서 환승 후 페루의 리마로 가게 된다. LA 공항에 도착하니 항공기가 결항되었단다. 여행 첫날부터 뭐가 꼬인다. 다행히 항공사에서 호텔과 식사 쿠폰을 줘서 하루를 LA에서 묵게 되었다. 페루에서의 하루 일정이 LA의 하루로 바뀐 것이다. 급히 LA에 사는 여동생에게 연락해서 좋은 시간을 가졌다. 전화위복이었다. 항공사에서는 한 끼 40불의 식사 쿠폰을 줬다. 40불이면 58,000원이다. 매끼 스테이크를 먹을 줄 알고 좋아했는데 햄버거와 콜라, 그리고 팁을 합치니 40불이다. 미국의 미친 물가에 깜짝 놀랐다. 내년 미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걱정이 앞선다.
다음 날 새벽 리마에 도착하여 도시 구경을 하는데 대통령궁 앞 광장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총 든 경찰들의 경비가 삼엄하다. 남미는 역시 치안이 불안한가 보다 생각했는데 다음 날 저녁 TV를 보니 시민들이 화염병을 던지고 경찰이 곤봉과 방패로 시민들과 대치한다. 80년대 한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 날이 되니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리마 시내 이동이 금지되어 버렸다. 한국 외교부에서는 페루 여행 자제 문자가 들어온다. 다행히 새벽 버스로 모래사막의 도시 이카로 탈출할 수 있어서 여행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하루만 늦었더라도 발이 묶일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2. 이카의 사막과 오아시스
리마에서 이카 가는 버스는 해안 길로 5시간 정도 달린다. 전쟁터로 변한 리마를 벗어나니, 이제는 차가운 사막이 이어진다. 창밖은 온통 잿빛과 황토색이 뒤섞인 죽음의 땅이다. 바다를 곁에 두고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이 혹독한 사막은 안데스에서 흐르는 지하수맥이 닿는 곳에만 겨우 초록빛을 띤다. 버스가 사막 속으로 깊숙이 들어갈 때쯤, 창밖으로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진다. 메마른 모래 산 아래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초록의 물결, 바로 포도밭이었다. 신은 이 땅에 비 대신 강렬한 태양을 주었고, 인간은 안데스의 지하수를 끌어올려 사막에 생명을 심었다. 그 척박함을 견디고 맺힌 포도 알들은 어떤 감미로운 술이 되어 누군가의 갈증을 달래줄 것이다.
이카의 와카치나 오아시스는 기대와 달랐다. 예전에 보았던 중국 둔황의 월아천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성소였다면, 이곳은 관광객들의 활기로 북적이는 시장통에 가까웠다. 사막의 고요를 기대한 나에게 그 소란함은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사막차를 타는 순간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거대한 모래 파도를 가르며 수직에 가까운 언덕을 질주할 때, 나는 애들처럼 비명을 지르며 남미의 야생이 주는 즐거움에 몸을 맡겼다.
나스카의 지상화를 보고 싶었으나, 페루 해안 특유의 짙은 안개는 끝내 하늘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외계인이 그렸다는 거대한 수수께끼를 눈에 담지 못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으나, 금세 마음을 비워냈다. 누군가는 경이로움을 말하고 누군가는 지독한 멀미만을 기억하는 그곳. 어쩌면 나스카의 신비는 직접 보는 것보다 보지 못한 채 상상 속에 남겨두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3. 신의 도시 쿠스코
이카의 사막을 뒤로하고 날아오른 비행기는 밤의 장막을 뚫고 '신의 도시' 쿠스코에 닿았다. 활주로에 내려앉기 직전, 창밖 풍경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비행기 날개가 당장이라도 다닥다닥 붙은 민가 지붕을 칠 것처럼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해치 문이 열리고 공항 밖으로 첫발을 내디딘 순간,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공기의 질감이 달랐다. 서늘하고 건조하며, 무언가 텅 빈 듯한 가벼운 공기. 해발 3,300미터. 이제부터 마추픽추를 지나 레인보우 마운틴, 볼리비아로 이어지는 2주간의 '산소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있었다.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은 아침부터 들썩였다. 제복을 갖춰 입은 군인들과 형형색색의 전통 의상을 입은 시민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해방자 볼리바르를 기리는 퍼레이드라고 했다. 엄숙한 군악대의 연주 사이로 시민들의 웃음소리와 춤사위가 섞여 드는 광경은, 이 도시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뜨겁게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임을 보여 주었다.
축제의 열기를 뒤로하고 찾은 인근의 유적지들은 마추픽추를 접하기 전 훌륭한 예습서였다. 거대한 바위들을 종잇장처럼 맞물려 놓은 석축 앞에서 나는 말을 잃었다. 도대체 잉카인들에게 돌은 무엇이었을까. 그 정교한 돌담들은 곧 마주할 마추픽추의 신비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묵묵히 웅변하고 있었다.
리마의 거리에서 마주친 서구적인 얼굴들은 쿠스코에 닿자마자 안데스의 깊은 주름을 닮은 인디오들의 얼굴로 바뀌었다. 불과 몇 시간의 비행이었지만, 나는 현대의 유럽에서 고대 잉카의 심장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기분이었다. 시골 마을의 좁은 길목에서 마주친 여인들의 화려한 전통 복장은 박물관의 전시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년의 풍파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잉카의 자부심이자, 척박한 고산의 삶을 견뎌온 잉카제국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4. 잉카제국의 마법 마추픽추
쿠스코를 떠나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 기차는 나를 황홀경에 빠뜨렸다. 히말라야의 설산과 차마고도의 절벽, 키르기스스탄의 광활한 초원을 모두 눈에 담아 온 나였지만, 기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 앞에서는 아이처럼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마치 디즈니월드의 환상 열차를 타고 요정의 마을을 지나는 듯한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기차는 빽빽한 밀림의 심장을 뚫고 나아갔다. 마추픽추가 가까워질수록 산세는 더욱 험준해졌고,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의 산줄기 아래로 성난 듯 굽이치는 우루밤바강의 물줄기가 장관을 이뤘다. 수많은 대륙의 명산들을 다녀봤지만, 안데스의 이 원시적인 속살은 단연 압권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마추픽추라는 결과에만 열광하느라, 그곳으로 향하는 이 위대한 과정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중턱에는 잉카인들이 마추픽추로 가기 위해 실제로 걸었다는 전 세계 트래커들의 로망인 '잉카 트레일(Inca Trail)'이 보인다. 기차 안의 안락함 속에서도 창밖의 트래커들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땀 흘리며 잉카의 발자취를 직접 밟는 저 길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불편함의 희열'이 아닐까. 언젠가 다시 올 수 있다면 그땐 저 흙길을 걸으리라 다짐해 본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 입구에 들어선 순간, '짠' 하고 마추픽추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내 생애 이토록 강렬한 첫 대면이 또 있었던가. 숲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그랜드캐년을 보았을 때의 경외감이 전율이 되어 온몸을 감쌌다. 그랜드캐년의 거대함이 자연의 힘이라면, 마추픽추의 웅장함은 인간의 영혼이 빚어낸 신비다. 교과서에서, 다큐멘터리에서 수천 번은 보았을 그 모습이었지만, 내 눈앞에 실재하는 잉카의 돌들은 마법처럼 생경했다. 이토록 높은 곳에 돌의 신전을 쌓아 올린 잉카인들의 경건함과, 이 위대한 문명을 난도질한 스페인의 만행이 교차하며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마추픽추를 돌아본 후, 나는 다시 '젊은 봉우리'라는 뜻의 와이나픽추를 올랐다. 마지막 '죽음의 계단' 앞에선 베테랑 여행자의 자부심도 내려놓아야 했다. 공포에 질려 네 발로 기어오르며 인간이 신의 영역에 가려면 기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마추픽추는 또 다른 모습이다. 아래에서는 신성한 제단으로 보이던 그곳이, 위에서는 거대한 대지의 숨결처럼 느껴진다. 파르테논을 능가하는 인류의 진정한 신전이 여기 있었다.
고단한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의 밤, 예상치 못한 풍경에 웃음이 터졌다. 잉카의 깊은 산골 마을에 한국의 '한강 라면 기계'가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가. 500년 전 스페인이 총과 칼로 잉카를 침략했다면, 지금 한국의 K-푸드가 뜨끈한 라면 국물로 잉카제국에 온 전 세계 여행자의 입맛을 점령하고 있었다. 잉카의 신비를 가슴에 담고 먹는 한국 라면 한 그릇. 그 기묘한 조화가 이번 여행이 준 뜻밖의 위로이자 희열이었다.
5. 안데스의 이모저모
마추픽추를 떠나는 기차 밖 풍경은 다시 봐도 비현실적이었다. 중간역에 내려 도착한 '오얀따이땀보'는 또 다른 돌의 미학을 보여준다. 산비탈을 따라 정교하게 쌓아 올린 요새의 석축도 놀라웠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발치에 흐르는 수로였다. 수백 년 전 안데스의 눈물이 지금도 정해진 길을 따라 쉼 없이 흐르는 모습에서 잉카인들의 정교한 기술을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깎아지른 절벽에 매달린 투명한 캡슐 몇 개가 보인다. 하루 숙박비가 백만 원이 넘는다는 절벽 호텔이란다. 세상에는 참 특이한 이들이 많다. 저 아찔한 곳에 방을 만들 생각을 한 사람이나, 비싼 돈을 내고 기꺼이 절벽에 매달려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나. 그들의 유난스러움에 헛웃음이 났지만, 그 또한 이 거친 안데스를 즐기는 누군가의 방식일 것이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고원 한구석, 믿기지 않는 풍경이 발아래 펼쳐졌다. 마라스 소금염전. 온 세상이 황토색인 산자락에 유독 그곳만 눈부시게 하얗다. 마치 봄이 와서 산등성이의 눈은 다 녹았는데, 스키장 슬로프에만 인공 눈이 겹겹이 쌓여있는 듯한 생경한 아름다움이었다. 차마고도의 소금밭과는 또 다른, 안데스가 빚어낸 정갈한 백색의 향연이었다. 세상의 여러 소금밭을 보았지만, 안데스의 마라스만큼 극적인 대비를 보여주는 곳은 드물었다.
이어진 발길은 기이한 거대 원형 계단, 모라이로 향했다. 광활한 평원을 곁에 두고 굳이 깊은 땅을 파고 축대를 쌓아 올린 잉카인들의 고집. 그것은 단순한 경작지가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꿈꿨던 그들의 실험실이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살려내려 했던 그 정성이 전해져 가슴이 뭉클했다. 돌 하나하나에 깃든 그들의 땀방울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붉은 흙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6. 숨 막히는 무지개산
해발 4,500미터.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희박한 공기가 가슴을 짓눌렀다. 서 있는 것조차 숨이 가쁜 이 낯선 고도에서 정상까지 남은 500미터는 에베레스트만큼이나 아득해 보였다. '불편함이 주는 희열'을 찾아 나선 길이었지만, 요동치는 심장에 나는 자존심 대신 5만 원을 내고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산을 올랐다.
마침내 마주한 무지개산(비니쿤카)의 정상. 수년 전 실크로드에서 만났던 중국의 칠채산이 섬세하고 화려한 여인의 미소 같았다면, 안데스의 무지개산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전사의 근육 같았다. 마침 구름 사이로 햇살이 들락날락하며 싸이키 조명처럼 산의 색깔을 시시각각 바꾸어 놓았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풍경 속에 내가 서 있었다. 내려오는 길, 산비탈을 가득 메운 알파카와 라마들의 평화로운 방목 풍경이 척박한 땅에 온기를 더해준다. 산소는 부족했지만, 풍경이 주는 감동으로 폐부를 가득 채웠던 그날. 5,000미터의 고통은 그렇게 무지갯빛 추억으로 바뀌었다.
7. 초등학교의 추억 티티카카 호수
페루의 안데스는 끝을 알 수 없이 광활했다. 남미의 여름이 지척인데도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원의 봉우리들은 여전히 백발의 눈을 머금고 있었다. 인적 없는 황량함을 한참이나 달린 끝에 푸른 바다 같은 물줄기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시절, 시험 문제의 정답으로 수없이 외웠던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 티티카카였다. 정답지로만 존재하던 그 추상적인 장소가 내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자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온 여행자의 감회는 남달랐다.
갈대로 만든 섬 우로스(Uros)는 이색적이었지만, 한편으론 씁쓸했다. 생존을 위해 갈대 위를 택했던 이들의 삶이 이제는 관광객의 주머니를 겨냥한 상품이 되어버린 풍경. 돈벌이에 익숙해진 현지인들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현대라는 파도가 잉카의 호수까지 밀려온 결과이리라.
다음 날 아침, 볼리비아행 버스에 오르려던 우리에게 날벼락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볼리비아 대통령 선거일이라 국경이 전면 폐쇄되었다는 것이다. 항공기 결항으로 하루 늦게 들어온 페루, 이제는 볼리비아 대통령 선거 때문에 하루 더 있게 되었다. 어쩌다 얻게 된 푸노에서의 덤 같은 하루, 도시 곳곳을 배회하며 원주민의 삶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