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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Aug 06. 2019

몰입의 즐거움


브런치 작가로 승인 후 2주 만에 글 10개를 올렸다. 급하게 10개를 써서 올린 것은 누군가가 내 글에 들어왔을 때 읽을 것이 없으면 민망할 것 같아서였다.


거의 하루에 하나씩 쓰려니 하루 종일 글만 생각하게 된다. 머릿속이 온통 글 생각뿐이다. 새벽에 눈뜨자마자 어제 올린 글의 반응이 어떨까?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쓸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많이 한다. 출근하면서 폰을 놓고 오기도 하고 운전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기도 한다. 


식사 중에도 회의 중에도 딴생각을 하다가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실수하기도 한다. 잠자리에 들어도 글 생각이며 자다가 깨어도 글 생각이다. 아내는 내가 브런치 폐인이 돼버렸다고 놀린다. 헛웃음이 난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그러나 이 상황이 싫지 않다.


뭔가에 빠져 몰입하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이왕이면 건전하고 발전적에 것에 몰입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몰입 그자체가 큰 행복감을 준다. 지금 나는 글쓰기에 몰입하느라  다른일에 소홀하지만 즐겁고 행복하다


살아오면서 이런 기억이 몇 번 있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온종일 한 생각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몇 번 있었다. 사랑에 빠졌을 때, 당구, 카드(트럼프), 바둑, 마작, 골프 배울 때 그랬다. 하루 종일 그녀의 얼굴이, 당구공이, 카드가, 바둑알이, 마작패가, 골프공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 당구공이 바둑알이 마착패가 골프공이 굴러다녔다. 그리고는 실력이 쑥쑥 늘었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고 실재로도 많이 했다. 당구, 카드, 바둑은 짜장면 시켜 먹으면서 밤새워했다. 마작은 2박 3일간 잠도 안 자고 하다가 흘러나오는 코피를 틀어막으면서 한적도 있다. 골프는 손에 물건만 잡히면 흔들며 스윙 연습했다. 우산, 구둣주걱, 빗자루 심지어 사우나에서 홀딱 벗고 수건을 휘두르며 스윙 연습하기도 했다. 몰입을 넘어 미친 정도까지도 갔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즐겁고 행복한 시기였다.


내가 그동안 뭔가에 빠진 것은 빠질만한 나이였다. 사랑, 당구, 카드, 바둑은 20대 때, 마작, 골프는 30대 때 빠졌다. 그때는 나처럼 빠져있는 내  또래가 주변에 많아서 그들과 어울리고 경쟁하면서 실력을 향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늦은 나이에 글쓰기에 빠져서 내 또래가 드물다. 


수백 명(?)의 브런치 작가 중 60대 초보자는 몇 명 없는 것 같다. 같이할 또래 초보가 많으면 서로 격려하면서 라이킷도 꽉꽉 눌러주고 좋은데 좀 아쉽다. 늦은 나이에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5년 전인 58세 때 배드민턴에 약간 빠졌다. 58세도 배드민턴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였다. 클럽에 가보니 내 또래는 배드민턴 경력이 20~30년이고 초보는 아예 없다. 2030 초보가 몇 명 있지만 채 휘두르는 소리가 아예 나와 다르며 두어 달만 있으면 초보 코트를 졸업한다. 


나는 구석에 있는 초보 코트에서 아내를 포함한 몸치 여성 초보들과 1년가량 지냈다. 내 또래 남자는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다. 실력 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 함께 운동이 곤란하다. 부상으로 절뚝거리는 회원이나 힘 빠진 여성회원들이 가끔 선심 쓰듯 상대해줬다. 그런 회원마저도 게임이 시작되면 콕을 코트 구석구석 찔러 넣어 나를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쫄지 않고 열심히 했다.


1년쯤 지나니 부상자나 힘 빠진 여성회원들과는 겨룰만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상위권 회원들과는 아직 어렵지만 부부가 즐겁게 게임을 즐기는 수준이 되었다. 이제 배드민턴이 나의 행복의 원천이 될 정도로 내 생활의 일부가 됐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새롭게 배운 것이 우리 부부의 행복을 한층 높여줬다. 배우는 것에 늦은 것은 없다. 뭐든지 배우면 또 다른 즐거움이 따라온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배드민턴에 비교하자면 1년간은 구석에서 벽치기나 하는 초보처럼 부끄러운 글일 것이다. 그러나 쫄지 않고 열심히 쓰다 보면 1년쯤 후 부상자나 몸치 여성 수준은 될 것이고 5년쯤 지나면 제법 즐길 수 있는 실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유명 브런치 작가가 “글 쓰는 법”이라는 글에 "초보자는 열에 아홉은 쓰레기 글이 될 것이지만 창피해하지 말고 많이 쓰고 대중에게 공개하라"라고 했다. 그래야 글이 는다고 한다. 지금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 쓰레기 글 일지라도 브런치에 올리기 위해 몰입하고 있다. 몰입이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주며 생동감 넘치게 해 준다.


사랑, 당구, 카드, 바둑, 마작, 골프 그리고 뒤늦게 글쓰기에 몰입 중이다. 즐겁고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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