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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Aug 05. 2019

기억 속 "천상의 맛"


먹고살만한 세상이 되니 “맛집”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맛집 기행, 맛집 탐방, 맛집 동호회, 맛집 덕후 등 맛집 관련한 신조어가 생기고 맛집만 찾아다니는 미식가들이 많아졌다. 인터넷에는 지역별, 음식별 맛집 정보가 넘치며 심지어 외국 맛집까지도 친절히 알려준다.


나도 모임을 주선하거나 여행을 가게 되면 맛집을 검색하여 이왕이면 맛있는 식당을 고른다. 하지만 맛집을 찾아가서 정말 맛있다고 느끼는 경우는 일 년에 한두 번이다. 대부분은 그냥 괜찮은 정도이거나 가성비가 좋은 정도이다. 하긴 외식을 시작한 지 수십 년이 되었는데 이제야 처음 먹어보는 기가 막힌 음식을 만나기가 그리 쉽겠는가? 


지난봄 동해안 여행을 하면서 맛집을 찾았더니 강릉 엄지네 벌교꼬막정식이 유명했다. 나는 벌교가 고향이라서 일 년에 한두 번 벌교에 가며 갈 때마다 꼬막정식을 먹는다. 벌교꼬막정식이면 벌교 가서 먹어야지 웬 인연도 없는 강릉에서 벌교꼬막을 먹어? 하면서 무시해버렸다.


함께 간 장모님께서 친구들이 ‘거기 꼭 가보라고 했다’ 하셔서 할 수 없이 가봤다. 식당에 11시쯤 일찍 도착했다. 직원이 12시부터 오픈하니 기다리라고 하면서 50번이 적힌 대기표를 준다. 한 시간 먼저 왔는데 벌써 내 앞에 50명이 기다리고 있다. 뭔가 분위기가 싸~했다. 이거 정말 맛있는 거 아냐?


헉… 꼬막의 본고장 벌교보다도 훨씬 더 맛있다.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놀랍게 맛있는 그 맛이다. 본고장 벌교에서는 꼬막을 초무침에 버무려 비빔밥 스타일로 주는데 여기서는 간장 비슷한 소스에 버무려 꼬막을 가지런하게 맛깔스럽게 내놓는다. 


기분이 좋았다. 꼬막을 60년 동안이나 먹어왔는데 같은 꼬막으로 이런 특별한 맛을 만들어 내다니 신기하다. 아마 다른 음식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식재료를 가지고도 요리사의 창의적인 발상으로 수십 년간 먹어왔던 음식을 전혀 새로운 특별한 맛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요리사가 아주 인기 있는 전문직종이 되었다. 스타 셰프도 여럿이다. 이런 분들이 같은 식재료로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특별한 음식을 많이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


살아오면서 먹어본 새로운 음식, 특별한 음식이 여럿 있다. 어린 시절에는 처음 먹어보는 새로운 음식이 많았지만 30대 이후로는 새로운 음식은 거의 없어지고 동일한 식재료로 만든 특별한 맛을 가끔 만난다.


최근 몇 년간을 돌아본다면 , 전주 회관 콩국수, 삼청수제비, 단양 약돌한우, 광주 낚지 한마당, 여수 장어탕, 여수 서대회, 지리산 흑돼지, 벌교 꼬막정식 등이 특별한 맛으로 기억난다. 이러한 음식은 일 년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하는 놀랍도록 맛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별한 음식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기가 막한 천상의 맛은 아니다.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 만큼의 천상의 맛을 가진 음식은 내 생애 딱 한번 있었다.


1963년 겨울 초등 1학년 때 먹어본 삼양라면이다. 지금은 사용 금지된 공업용 우지로 만들어 라면에 허연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설렁탕 비슷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불량식품이며 유해식품이었다. 그러나 56년 전 그 라면 국물이 혀에 닿을 때의 황홀함을 아직 기억한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몸이 붕붕 떠다녔다. 


이후 맛있다는 음식 많이 먹어봤지만 그 황홀한 감격은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당시 보리밥에 쉰 김치만 먹던 시절에 전혀 새로운 놀라운 음식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황홀경에 빠질 정도의 천상의 맛은 음식 자체보다는 먹을 때의 상황에 기인하는 것 같다.  

다시 한번 하늘을 나는듯한 천상의 맛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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