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멀어져 가는 택시, 아찔했던 그 순간
2026년 2월 18일, 카사블랑카에서 2주를 보내고 다음 목적지인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하는 날이었다. 카림(Careem) 택시를 불러 공항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는데, 잠시 후 등 뒤가 허전했다. 백팩을 택시에 두고 내린 것을 깨달았으나 택시는 이미 출발해 버린 뒤였다. 그때부터 그 백팩을 다시 내 품에 안기까지, 딱 10일간 발생했던 어처구니없고 숨 막히는 일들을 적어보려 한다.
저 멀리 멀어져 가는 택시를 보며 급히 택시 앱을 열어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수차례의 통화 시도에도 응답이 없어 공항 안내데스크로 달려가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전화를 걸어보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경찰서로 가보라는 안내에 공항 경찰서까지 찾아갔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앱에 등록된 기사의 번호는 집 전화였고, 집에 아무도 없는지 수십 번을 걸어도 신호음만 울릴 뿐이었다.
결국 택시 앱 본사에 이메일로 현재 상황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냈다.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으나 가방을 당장 찾을 길은 요원했다. 기사와 연락만 닿는다면 리스본행 비행기를 하루 미뤄서라도 가방을 찾고 싶었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 때문에 무작정 체류를 연장할 수는 없었다. 결국 카사블랑카 에어비엔비 숙소 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나중에 기사와 연락이 닿으면 가방을 대신 받아서 우편으로 좀 보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남긴 채 계획된 비행기에 올랐다.
2. 여행 작가에게 '노트북'이 가진 의미
나는 여행할 때 세 개의 가방을 챙긴다. 캐리어, 백팩, 그리고 조그마한 어깨걸이 가방이다. 어깨걸이 가방에는 여권, 현금, 스마트폰 등 가장 중요한 것을 넣고 가슴 앞으로 맨다. 내 몸의 일부처럼 늘 소지하기에 분실이나 소매치기 위험이 거의 없다. 이것을 잃어버린다는 건 곧바로 여행을 중단하고 귀국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비상사태다.
캐리어에는 옷가지 등 부피가 큰 짐들이 들어있지만, 잃어버려도 현지에서 조달하면 되니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 문제는 백팩이다. 백팩에는 현지에서 바로 사용할 물건들과 무엇보다 '노트북'이 들어있다. 해외에서 글을 쓰고 브런치에 발행하는 나에게 노트북이 없다는 것은 해외살이의 의미가 절반으로 깎여나가는 것과 같다.
4년째, 1000일가량 전 세계를 유랑 중이지만 이 세 가지를 분실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국으로 바로 귀국할 예정이었다면 노트북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한 달 이상 리스본과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며 글을 써야 했기에, 노트북이 든 백팩은 내게 단순한 수화물 이상의 가치였다.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3. 리스본에서 모로코로 돈을 보내는 완벽한 생고생
다음 날, 본사에 보낸 메일에 대한 답장이 왔다. 다행히 기사가 백팩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사블랑카 숙소 주인을 통해 기사와 무사히 연락이 닿았고, 백팩은 주인의 손에 무사히 넘어갔다. 나는 안도하며 리스본 숙소 주소와 수취인 관련 사항을 넘겼다. 여기까지는 전화와 왓츠앱을 넘나들며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카사블랑카 주인은 가방을 DHL로 보내주기로 했고, 배송비 200유로에 수고비 40유로를 더해 총 240유로를 본인의 계좌로 입금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모로코로 돈을 보내고 리스본에서 가방을 인수하는 과정이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주인이 알려준 계좌는 유럽에서 흔히 쓰는 WISE 은행이었다. 앱만 깔면 송금이 쉽다기에 낑낑대며 앱을 설치했지만, 한국 카드를 사용하는 나로서는 결제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4개의 카드를 번갈아 시도하고, 결제창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마트폰을 붙잡고 몇 시간을 씨름했다. 결국 한국은행들과는 카드 인출 협약이 안 된 곳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되지도 않는 일에 반나절을 허비한 것이다.
다음 날은 직접 발로 뛰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 여행객 신분으로 모로코 은행에 돈을 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포르투갈 현지 통장이나 거소증이 있어야 한단다. 그 사실을 모른 채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여러 은행을 뺑뺑이 돌았다. 창구에서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렸다가 "우리는 안 되니 다른 은행으로 가보라"는 허무한 통보를 듣고 돌아서기를 여러 번. 가방을 빨리 받아야 한다는 조급함에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15도 정도의 쌀쌀한 날씨였지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대신 리스본 시내 구석구석 구경은 참 잘했네'라며 실없는 위로를 삼킬 뿐이었다.
결국 은행 송금을 포기하고 카사블랑카 주인에게 사정을 말하자, 이번에는 웨스턴 유니언(Western Union)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물어물어 지점을 찾아갔더니, 이번에도 해외 여행자는 주소 코드에 거소증 번호를 입력해야 해서 안 된다며 본점으로 가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다시 몇 군데를 전전한 끝에 마침내 큰 지점에서 송금을 접수할 수 있었다. "왜 안 되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직원이 이내 환하게 웃으며 송금 완료를 알렸을 때, 나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4. 산 넘어 산, 끝없는 기다림과 세관의 벽
돈을 받은 카사블랑카 주인이 마침내 가방을 DHL로 보냈다고 연락해 왔다. 그런데 내 이름으로는 발송이 안 되어, 리스본 숙소 주인의 명의로 보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또 다른 지옥이 펼쳐졌다. DHL의 모든 서류와 세관 연락이 내가 아닌 리스본 집주인에게로 향한 것이다.
리스본 집주인은 나와 함께 살지 않는다. 긴급한 사항은 전달해 주지만 내 일처럼 챙겨줄 리 만무했다. 급기야 리스본 주인은 "왜 당신 가방을 내 이름으로 보냈느냐"며 핏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세관 검사 비용이 발생했는데, 수취인이 리스본 주인으로 되어 있으서 내 카드로 지불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내가 세관에 직접 가서 돈을 내려고 해도 받아주지를 않는다. 과거에 손님 때문에 돈을 떼인 적이 있는지, 주인은 짜증을 내며 나에게 돈을 지불하라고 독촉했다.
세관비용 지불방법이 없다보니, 리스본 주인은 수취인 명의를 나로 변경할 수 있는 여러 장의 서류 파일을 보내주며 프린트해서 작성해 달라고 요구했다. 낯선 포르투갈 땅에서 프린트할 곳을 찾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물어물어 겨우 프린트를 해오니, 이번엔 서류 전체가 포르투갈어로 쓰여 있었다.
난해한 모든 절차를 마치고 세관 비용까지 지불했지만, 언제 배송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리스본 주인은 배달원이 자기에게 전화를 주기로 했다며, 전화가 오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혹시라도 외출한 사이에 가방이 올까 봐 나는 집 밖을 나설 수도 없었다. "내일 온다"는 세관의 말만 믿고 기다리기를 4일. 리스본 집주인마저 폭발해 내 앞에서 세관 직원과 통화하며 언성을 높였다. 나는 4일 동안 집 부근만 배회하는 갇힌 신세였다.
그리고 10일째 되던 날, 마침내 택배 직원이 비닐로 둘둘 감긴 내 백팩을 들고 나타났다. 가방을 보는 순간, 지난 열흘간의 생고생이 떠올라 확 집어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
5. 위기의 순간, 나를 구한 새로운 여행 동반자 'AI'
만약 6개월 전이었다면, 나는 이 복잡하고 진 빠지는 절차에 질려버려 진작에 노트북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아주 똑똑한 동반자가 있다. 바로 제미나이(Gemini) 유료 버전이다.
가방을 두고 내린 직후 카림 본사에 보낼 영문 이메일을 작성할 때부터, 웨스턴 유니언에서 송금이 막혀 쩔쩔맬 때 해결책을 제시해 준 것도 모두 AI였다. 제미나이가 알려준 해법을 포르투갈 은행 직원에게 보여주어 문제를 해결했을 정도다. 리스본 주인이 던져준 복잡한 포르투갈어 세관 서류 역시, 사진을 찍어 제미나이에게 올리고 묻는 것으로 완벽하게 해결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AI는 이제 스마트폰처럼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나처럼 낯선 환경에 수시로 던져지는 여행자에게 AI는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위기를 탈출하게 돕는 최고의 가이드다. 볼거리 넘치는 이 아름다운 리스본에서조차 노트북이 없으니 무료함을 느꼈다. 앞으로 나의 여행은 노트북, 그리고 AI라는 든든한 평생의 친구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6. 지나고 나면 모두 유쾌한 추억이 된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지금 가만히 복기해 본다. 백팩을 찾는 가장 간단하고 저렴한 방법은, 카사블랑카에서 하루를 더 체류하며 기사에게 직접 가방을 받아 리스본으로 넘어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리스본 도착 후 가방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내가 직접 비행기를 타고 카사블랑카로 날아가 가져오는 것이었다. 하루면 충분했고 비용도 40~50만 원이면 뒤집어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일로 500유로(약 75만 원) 가까운 돈을 썼고, 송금과 세관 업무로 며칠을 날렸으며, 짐을 기다리느라 4일간 외출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 기간 동안 글을 쓰지 못해 속이 탔다. EU 국가 간 배송은 한국처럼 간단하다지만, 아프리카(모로코)에서 유럽으로 들어오는 물건은 이토록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다는 값진(?) 교훈도 얻었다.
드디어 품에 돌아온 노트북을 열어 성능을 점검하고, 가장 먼저 이 글을 쓴다. 나에게 이 작은 기계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실감하며 타자를 친다.
10일간의 고생은 꽤 매웠지만, 지나고 나니 이 또한 즐거운 경험이자 얘깃거리가 되었다. 2년 전 유럽 캠핑카 여행 중 자동차 파손으로 일주일간 고생했던 사건만큼의 스펙터클은 아니어도, 카사블랑카와 리스본을 오간 이번 '노트북 구출 작전'은 두고두고 내 여행의 잊지 못할 훈장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