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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Aug 15. 2019

코피와 담배

나는 비교적 건강한 유전적 형질을 타고났다. 통뼈여서 어린 시절부터 운동 잘하는 축에 들었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다.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전혀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멀쩡한 코와  입 내부가 몹시 부실하다. 코에서 나오는 코피로 인해 23살까지 고생했고 치아로 인해  40년 이상 고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평생 고생이 예약되어 있다. 


아버님 코를 쏙 빼닮아서 콧속의 실핏줄이 피부 가까이 노출되었고 조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코피가 났다. 23세까지 거의 매일 코피를 흘렸다. 세수하면서 콧속에 물기가 들어가면 바로 코피가 났으며 심지어 밥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콧속으로 들어가면 코피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세수할 때 미리 콧속을 솜으로 틀어막고 세수했다. 


어떤 날은 세수하다 말고 아버님과 둘이서 쌍코피를 흘리며 누워 있기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아들도 똑 같이 아침마다 코피를 쏟았다. 이 지독한 유전자의 대물림. 다행히 아들은 초등학생 때 코 수술을 해주어서 더 이상 코피를 흘리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 남들처럼 신나게 코딱지를 팔 수 없었다. 콧속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순간 코피가 나버렸다. 코도 시원하게 풀어보지 못했다. 코를 세게 풀면 코피까지 함께 나와 버렸다. 그러나 항상 좋기만 한 것도 항상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 코피가 자주 쉽게 난 것은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이었지만 오히려 득이 된 적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동네와 옆동네 경계에 공터가 있었다. 공터는 테니스 코트 크기였는데 나무도 있고 풀도 많이 자라서 편 나누어 전쟁놀이하는데 참 좋았다. 문제는 두동네 꼬마들이 공터에서 함께 놀다 보면 꼭 충돌이 생겼다. 공터의 좋은 자리를 자지 하기 위해 세력다툼을 벌였다.


6학년인 우리 동네 짱과 옆동네 짱이 공터를 차지하기 위해 기싸움을 벌이다가 두동네 대표선수 세명씩 결투를 벌여서 이긴 팀이 공터 사용권을 갖기로 했다. 양 팀이 대표선수를 선발했는데 나는 우리 팀 대표 세명중 한 명으로 선발됐다. 결투는 한 명이 항복하거나 울면 승부가 나는 방식이었다. 


결투 상대는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는데 나는 재수 없이 나보다 머리통이 하나 더 올라온 그쪽 제일 쎈놈이 걸려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마지막 조 이기 때문에 앞의 두 팀에서 승부가 나면 결투를 안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선수들이 엎치락뒤치락 개싸움을 벌이다가 1:1로 비겨버렸다. 앞팀이 비기니 나도 결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내가 놀이터 사용권을 결정하는 키멘이 되어 버렸다. 나의 결투 결과에 따라 우리 동네 꼬마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중대한 시기였다. 


나는 나보다 덩치 큰 상대팀 쎈놈에게 이미 기가 꺾여버려서 싸우기도 전에 진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는 어린 동생들의 시선 때문에 기죽지 않은 것처럼 쎈놈을 노려보며 결투를 시작했다.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쎈놈이 내 얼굴을 가격했다. 나는 무방비로 얼굴을 난타당했다. 코만 세게 풀어도 코피가 나는데 코를 가격 당했으니 어떠겠는가? 쌍코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초등학생 3학년 정도면 코피가 나는 순간 게임 끝이다. 보통의 초등학생은 자기 코에서 피가 난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하늘이 노래지며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온다. 바로 눈물이 홍수처럼 쏟아지게 되어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매일 코피를 흘리며 살았기 때문에 코피 나는 게 아무렇지 않았다. 코피에 전혀 쫄지 않았다. 오히려 흘러내리는 코피를 손바닥으로 닦으면서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내가 손바닥으로 코피를 닦으니 내 얼굴 전체가 코피로 범벅이 되고 양손은 피로 물들었다. 


상대편 쎈놈이 놀라버렸다. 과거 아프리카 식인종들은 다른 부족과 전쟁하기 전 얼굴에 짐승 피를 발라서 상대에게 공포심을 주었다고 한다. 식인종도 공포를 느끼는 피범벅 얼굴을 초등학생이 봤으니 얼마나 놀랍고 무서웠겠는가? 


이놈이 어쩔 줄 몰라하더니 지가 울어버린다. 피범벅이 된 내 얼굴에서 공포를 느낀 모양이다. 나는 한 번도 못 때려보고 이겼다. 전투에 패하고 전쟁에 승리한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가 놀이터를 접수하게 되었고 나는 동네를 구한 영웅이 되었다. 그 후로 누구도 나를 건들지 않았다. 아주 독한 놈으로 소문이 나버린 것이다. 매일 코피가 난 것은 귀찮은 일이었지만 코피 덕에 두들겨 맞기만 해 놓고도 짱이 되어버렸다. 


코피는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도 계속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침 세수할 때 외에는 코에 충격만 없으면 피가 나지는 않았다. 


23세이던 어느 날 코피가 멈췄다. 세수하면서 코에 물이 들어가도 코를 세게 풀어도 코피가 나지 않았다. 왜 코피가 멈췄는지 이유를 몰랐다. 이유도 모르고 코피 멈춘 것에 행복해했다. 코피가 멈춘 후 그동안 나의 로망이었던 깊숙한 코 후비기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몇 년간 코피 흘리지 않고 살았더니 내가 과거에 코피 흘렸던 사실까지 잊을 정도였다


그런데 5년쯤 지난 어느 날 세수하는데 코피가 나온다. 몇 년간 잊고 있는 코피에 깜짝 놀랐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코피가 나온다. 이유를 몰랐다. 왜 몇 년간 코피가 멈췄고 왜 다시 코피가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병원에 갔는데 의사도 이유를 몰랐다. 또다시 솜으로 코를 틀어막고 세수를 하고 코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았다. 당연히 코 후비기도 끝이 났다. 그런데 서너 달 후 다시 코피가 멈췄다. 이게 뭐지?


아~ 이유를 알게 됐다. 담배 때문이었다. 나는 22살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처음에는 술자리에서 한두 개피 피우다가 23세부터는 하루 한 갑의 골초가 되어버렸다. 골초가 되니 니코틴이 핏속을 돌다가 콧속 실핏줄에 축적이 되면서 실핏줄을 막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23세 때 코피가 멈춘 것이다.


5년쯤 후 컨디션이 안 좋아서 담배를 몇 달 끊었더니 실핏줄 속의 니코틴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다시 코피가 난 것이다. 몇 달 후 담배를 다시 피우니 재차 콧속의 실핏줄이 막히면서 코피가 멈춘 것이었다.


남들은 담배가 몸에 해로운데 나는 담배가 몸에 유익한 코 치료제였다. 이때부터 담배는 나의 약이 되었다. 식후 약 먹듯이 식후 담배를 복용했다. 남들은 의지가 약해서 담배를 못 끊지만 나는 담배가 약이기 때문에 끊으면 안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담배 끊으라고 하면 나는 담배가 내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보약인지를 설명했으며 설명을 들은 사람은 더 이상 금연을 권하지 않았다. 


이후 30년간 약으로 하루 한 갑씩 복용했다. 그런데 5년 전 몸 컨디션이 악화되고 목이 몹시 아팠다. 35년간의 약물 복용(흡연) 후유증으로 후두암이 걱정될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할 수 없이 담배를 끊었다. 담배를 끊고 다시 코피가 나오면 어쩌나 전전긍긍했으나 다행히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코피가 안 나온다. 35년간 하루 한 갑씩 피운 담배 니코틴이 콧속 핏줄을 완전히 봉쇄해버린 모양이다. 


코피와 담배… 참 얄궂고 재미있는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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