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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Feb 03. 2024

나 홀로 여행 단상


나는 지금 나 홀로 여행 아니 나 홀로 해외 한달살이 중이다. 2023년 초부터 나 홀로 여행을 시작했으니 1년이 지났으며 앞으로도 가급적 나 홀로 여행할 생각이다


난 젊은 시절 나 홀로 여행을 좋아했었다. 1976년 대학2학년 여름 방학 때 친구와 여수를 출발하여 남해, 부산, 울릉도, 설악산을 거쳐 돌아오는 2주일간의 여행 계획을 세웠다. 배낭에 텐트, 버너, 코펠과 쌀 한말을 가져가서 2주간 숙식을 해결하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친구 사정으로 여행 약속이 깨져 버렸다. 여행에 기대가 컸던 나는 이왕 준비한 거 혼자 출발했다. 친구가 버너와 코펠을 가져오기로 했는데 나 혼자 가게 되어 텐트만 짊어지고 여행을 떠났다. 텐트가 있으니 잠은 텐트에서 자면 되는데 버너와 코펠이 없으니 밥을 해 먹을 수 없었다. 교통비만 겨우 마련했기 때문에 밥 사 먹을 돈은 없어서 여행기간 내내 걸식을 해야 했다. 

당시 바닷가와 산속에는 텐트촌이 형성되어 저녁이면 텐트마다 밥을 했다. 나는 빈 밥그릇 하나를 들고 이 텐트 저 텐트 기웃거리며 얻어먹고 다녔다. 당시는 인심이 좋아서 밥 얻어먹는데 애로는 없었다. 노하우가 생기자 여행지에 도착하면 맘 좋게 생긴 여행객을 찾아 말을 걸고 짐을 들어주고 텐트 칠 때 도와준 다음 식사가 시작되면 밥그릇과 숟가락을 들고 찾아갔다. 다행히 나를 내쫓는 사람은 없었다. 식사 중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친해지면 몇 끼 계속 얻어먹을 수도 있었다. 어떤 텐트와는 친해져서 며칠간 여행을 함께하기도 했다. 


당시 걸식은 굶주림 해결의 방법이었지만 말친구를 만드는 수단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연륜이 쌓여 혼자서도 잘 지내지만 젊은 시절 혼자 여행은 무척 외로운 일이어서 여행지에서 말친구가 필요했다. 걸식은 내가 먼저 말을 걸고, 도와주고, 호의를 보여 친구가 되는 좋은 매개체였다. 우연히 시작된 나 홀로 여행은 친구와 함께였으면 겪어보지 못했을 생각지도 못했던 즐거운 일들을 선사했다. 이후 대학시절 여행은 나 홀로 다녔다.


그리고 45년이 지난 작년부터 다시 나 홀로 여행을 시작했다. 


나 홀로 여행의 장점은 자유로움이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언제 어디던지 떠날 수 있다. 여행지에 가서도 모든 일정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완전한 자유인으로 여행할 수 있다. 그러나 나 홀로 여행은 혼자라서 외롭고, 비용이 많이 들며 여러 명에 비해 리스크가 크다. 자유로움의 중요성이 외로움, 고비용, 고 리스크의 합을 능가한다고 생각하면 나 홀로 여행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누군과와 함께 다녀야 한다. 


동행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외로움이 해결되고 리스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불화가 생겨 오히려 외로운 것만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동행인과 불화로 고통을 겪거나 마음 맞는 동행인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은 여행을  포기하거나 나 홀로 여행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자유로움을 선호하여 나 홀로 여행이 하고 싶으나 외로움, 고비용, 고 리스크가 걱정이 된다면 나 홀로 여행과 단체여행의 중간쯤 되는 여행사 패키지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여행사 패키지는 열명 이상이 함께 여행하므로 혼자 가더라도 자연스럽게 동료가 되어 외로움이 덜하다. 운이 없으면 모두 가족단위여서 혼자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있긴 하나 주변에 항상 사람이 있고 함께 다니므로 견딜만하다. 


작년 여행사 패키지로 몽고와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몽고에서는 모두 가족팀이다 보니 아들보다 어린 대학생과 5일간 방을 함께 쓰면서 여행했다. 이 친구가 방에서는 이어폰 끼고 누워만 있어서 사람 간의 대화는 재미없었지만 몽고초원을 이리저리 다니는 여행 자체가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인도 여행 중에는 혼자온 중년여성이 여럿 있어서 그들과 함께 식사하고 저녁에 술도 하면서 12일을 아주 즐겁게 보냈다. 인도의 신비한 유적들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컸지만 처음 만난 일행들과 어울리는 즐거움도 그에 못지않았다. 당시 함께 여행한 일행들과는 지금도 안부를 주고받는다. 이 역시 나 홀로 여행의 즐거움 일 것이다. 


나 홀로 여행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외로움이다. 그러나 외로움은 외롭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쉽게 극복할 수 있으며 오히려 더 큰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대학시절 나 홀로 여행하면서 편한 것보다는 힘들고 불편한 것들이 내 삶을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 얘기하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의미를 안 것이다(요즘 이 말하면 꼰대로 취급받아서 남에게는 하지 않는다). 친구와 함께 여행했다면 편하고 재미있게 여행했을 텐데 혼자 무전여행을 하게 되니 배고프고 외로웠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걸식을 해야 했고 걸식을 하려면 남에게 잘 보여야 해서 내가 먼저 말을 걸고 호의를 보이고 도와주다 보니 가는 곳마다 친구를 만들 수 있었다. 예쁜 여대생 전번도 여러 명 딸 수 있었다. 여대생 여러 명에게 밥도 얻어먹고 전번도 딴것은 나 홀로 무전여행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올해도 상당기간 나 홀로 여행이 계획되어 있다. 이제는 45년 전처럼 걸식을 해야 할 처지는 아니지만 외로움은 해결해야 한다. 좀 거창한 말이지만, 위대한 업적은 지독한 외로움 끝에 나온 것이 많다. 사마천의 “사기”는 궁형을 당하고 앉은뱅이가 되어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나온 업적이다. 정약용 선생은 18년간의 유배기간 동안 목민심서를 포함한 500여 권의 방대한 책을 집필했다. 윤선도와 송강 정철 역시 유배지에서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가택연금과 투옥생활 중 수백 권의 책을 읽어 우리나라를 업그레이드시켰다. 이외에도 수많은 학자, 예술가들이 외딴곳에 스스로를 격리시켜 외로움 속에서 위대한 업적을 만들었다. 하다못해 고시생들도 절간에 들어가 세상과 단절한 채 책과 씨름하기도 한다.


외로움은 불편한 것이지만 잘 극복하기만 하면 자기를 발전시킬 수 있다. 나는 나 홀로 여행 중 약간의 외로움을 느끼긴 하지만 극복을 해야 할 만큼 심하지는 않다. 노트북 펴놓고 검색하거나 유튜브 보고 가끔 글을 쓰기만 해도 하루가 즐겁다. 밤에 맥주 한 캔 마시며 창밖의 야경만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운이 좋으면 일본과 치앙마이에서 처럼 외로움 타는 여인을 만나 일행이 되어 여행을 함께 할 수도 있다. 내가 절박한 외로움을 느낀다면 글에 몰두하여 작품을 남길 수도 있을 텐데 천성적으로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 아니라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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