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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Jul 27. 2019

자서전이 내게 준 뜻밖의 선물

은퇴자들이 하는 일 중 자서전 쓰기가 유행이다. 많은 6070세대가 자서전을 쓴다. 자서전 쓰는 법에 대한 책도 많고 가르치는 곳도 많다. 심지어 구청 문화센터에서도 노인들을 대상으로 자서전 쓰는 법을 가리키고 있다.


나도 작년에 자서전을 썼다. 61세 되던 해에 60세까지의 삶을 뒤돌아 보고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계획을 썼다. 


자서전을 쓰기 전 책 몇 권을 사서 읽었다. 어떻게 써야 한다는 특별한 형식이 없다. 자신이 살아온 것에 대해 어떻게 글을 쓰던 상관이 없다. 나도 부담 없이 써보기로 했다. 


먼저 자서전 쓰는 목적을 정해야 했다. 내 자서전을 누구에게 까지 공개할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일기처럼 나 혼자 볼 것인지, 책을 발간하여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중간 어느 범위로 한정할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나만 볼 것이라면 모든 것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으나 공개할 사람이 늘어날수록 읽을 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자서전의 목적을 ‘60년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후의 삶을 계획하며, 자식들이 아버지의 삶의 흔적을 보면서 본인들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한정했다. 그리고 자서전은 10부만 만들어 내 4남매와 자녀에게만 주기로 했다. 


자서전을 혈육에게만 공개하기로 결정한 후 글을 쓰니 비교적 자유스러웠다. 첫사랑, 첫 키스, 첫 경험 얘기도 가감 없이 쓸 수 있었고 남이 알면 손해 볼 얘기도 기꺼이 썼다. 형제와 자녀에게는 나의 비밀스러운 얘기조차도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좋은 정보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특히 두 자녀는 DNA를 물려준 아빠의 생애를 통해 자신의 미래 예측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자서전 구성은 1부에 60년간의 삶을 연대기로 작성하고 2부에 에세이 형식으로 내가 생각하는 얘기를 적었다. 나의 가치관, 행복관, 종교관, 정치관 등 예민한 사항도 솔직하게 적었다. 두 자녀를 키울 때의 에피소드와 4남매와 홀로 계신 어머니에 대한 얘기도 썼다. 우리 4남매는 모든 사람이 놀라워할 정도로 좋은 우애를 유지하고 있으며 4남매가 모두 효자로서 혼자이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있다고 썼다. 사실이다.


자서전 쓰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꼬박 6개월간 퇴근 후 자판을 두드렸고 휴가를 내어 2주간 하루 종일 글을 쓰기도 했다. 2018년 여름 100년 만의 더위라는 유독 더운 여름날에도 두문불출 글만 썼다.


평소 카톡이나 댓글 수준의 짧은 글만 쓰다가 300페이지가 넘는 긴 글을 쓰니 글이 엉망이다. 문법, 맞춤법도 안 맞고 글 자체가 이상했다. 내 생각이 글로 정확히 표현되지 않았고 써놓고 다시 보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쓰기를 중단하고 글쓰기 관련한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면서 공부한 후 다시 글을 썼다.


글을 쓰다 보니 사실 확인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이를 위해 인터넷을 뒤지면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들을 확실히 할 수 있었고 독서도 많이 하게 되었다. 자서전을 쓰는 동안 20여 권의 책을 읽었다.


시간이 갈수록 글이 좋아졌다. 처음, 중간, 마지막 페이지의 글이 완전히 달랐다. 후반부에 오니 글이 제법 볼만했다.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썼더니 자가발전이 되어 뒤로 갈수록 글이 좋아졌다. 퇴고할 때 앞부분이 유치해 보여서 대폭 수정했다.




자서전을 쓰고 10개월쯤 지난 지금 자서전 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내가 생애 가장 잘한 일중의 하나가 바로 자서전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첫째, 내 글이 좋아졌다. 글이 좋아짐으로써 여행작가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서전을 쓰면서 글 연습이 되지 않았다면 여행작가를 하겠다거나 브런치 작가에 지원하는 만용을 부리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 평생 할 수 있는 좋은 취미가 하나 생겼다. 글 쓰는 게 즐거웠다. 재미있는 책이나 티브이 프로그램도 한두 시간 보고 나면 졸리는데 글쓰기는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졸리지 않는다. 게임을 하거나 고스톱을 치면 밤이 새도록 졸리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나에게 글쓰기는 최상의 즐거움을 주는 평생 취미가 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셋째,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 글을 쓰다 보면 책을 읽게 된다. 글 쓰면서 지식과 정보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되는 동인이 된다. 책을 읽는다고 글이 써지지는 않지만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책을 읽게 된다. 글쓰기와 독서는 내적 성숙을 가져다주어 나이가 들어도 정신적인 젊음을 유지해 줄 것이다. 


넷째, 부부간의 신뢰가 깊어졌다. 아내는 내가 글 쓰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남편과 다른 진지하고 지적인 모습을 봤다고 한다. 과거 글 쓰던 일을 했던 아내는 내가 작업하는 동안 옆에서 책을 읽으며 공부했다. 서재에서 부부가 함께 글 쓰고 책 읽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으며 부부 여행작가 지망생이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과거에 부족했던 지적인 대화를 많이 하게 되면서 서로 간에 신뢰와 사랑이 깊어졌다.


다섯째, 혈육들과 관계가 좋아졌다. 나는 자서전에서 애들을 위해서 했던 숨은 노력들을 표현했으며 4 남매간 우애의 깊음과 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자랑스러워한다고 적었다. 그 내용을 읽은 후 아들, 딸은 아빠에 대한 신뢰감이 더 커졌고 4남매는 우애가 더 돈독해졌다. 또한 4남매가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더욱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여섯째, 내 절친 3명과 더욱 친해지게 되었다. 자서전에 나의 절친 3명을 언급하며 그들과 친구가 된 배경과 친구로 지내온 과정을 썼으며 앞으로도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친구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친구 3명에게 보냈다. 일종의 사랑 고백인 것이다. 친구들은 내 고백에 감동받았는지 전보다 훨씬 더 나에 대한 애정을 표시한다. 한 친구는 콘도를 예약해놓고 놀러 가자고 바로 연락이 왔다. 전화도 더 자주 온다.


일곱째, 내 미래계획을 구체화하고 실천의지를 공고히 했다. 자서전에 내 미래계획을 썼으며 이를 처자식, 4남매에 공개함으로써 내적 의지를 다졌다. 계획 실천의 일환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작가로 경력 전환을 결정했으며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나는 지난 수십 년간 해마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노트에 기록한 계획과 책으로 발간한 계획과는 그 무게감이 다르다. 가끔 자서전을 펴놓고 내가 세운 계획을 보면서 와신상담하듯이 실천의지를 불태운다.


작년 6개월간 자서전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고교 때 입시 준비하듯이 매달렸다. 남에게는 보잘것없는 결과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 어떤 것 보다도 값지고 자랑스럽다. 그때 투입한 시간과 노력을 다른 어떤 것에 투입하더라도 이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나는 자서전 말미에 인생의 황금기인 60~75세를 열심히 산 다음 75세가 되는 해에 자서전을 다시 쓰겠다고 다짐했다. 나와의 약속이며 두 자녀와 4남매에게 약속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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