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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Aug 02. 2019

벌교 꼬막정식과 여수 밤바다


언제부턴가 유명 맛집에 벌교꼬막정식이 등장한다. 강릉 엄지네 꼬막정식은 전국 최고 수준의 맛집으로 한 시간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백화점 식당가 벌교꼬막정식집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며 우리 동네에도 벌교꼬막정식집이 생겼다. 


벌교 하면 이제 꼬막정식이 생각나며 낙안읍성, 조정래 문학관, 한창기 뿌리깊은나무 박물관 등 예향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두 분 모두 벌교 사람이다.


여수는 오동도로 조금 알려진 도시였는데 2012년 세계박람회와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가 히트하면서 유명해졌다. 지금은 도시의 아름다움과 맛있는 음식으로 인하여 가보고 싶은 도시 상위에 올라있다. 주말이면 조용한 도시가 외지에서 온 차로 가득 차고 밤바다에는 밤새 인파가 가득하다.


나는 벌교에서 태어났고 여수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벌교가 고향이고 여수가 제2의 고향이다. 지금은 당당하게 얘기하지만 과거에는 고향 얘기 하는 것을 조금 망설였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에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며,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소설 태백산맥의 시대적 배경인 해방 전에 이미 있었던 말이다. 


일재 때 벌교 상인들이 괴롭히는 일본 순사를 때려죽인 이후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나왔다고 하며, 여수는 주변 바다의 풍부한 어획량과 수출항 역할로 돈이 많은 도시였다고 한다.


이러한 좋은 의미가 60년대 들어서 변질되었다. 벌교에는 깡패들이 많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바뀌었고 여수는 밀수로 인해 부정한 돈이 많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게다가 여순 반란사건으로 인하여 여수는 물론이고 빨치산이 활동했던 벌교까지 빨갱이의 근거지라는 부정적 의미가 덧붙여졌다.


여수에서 학교 다닐 때는 몰랐다. 그런데 1975년 서울로 올라온 후 여러 지역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니 “야 너 쌈 잘하겠다? 벌교가 고향이라며?” “너희 집 부자야? 여수사람은 밀수해서 부자가 많다며” “지금도 거기에 빨갱이 많냐?”하며 비아냥거린다. 말하는 사람이야 장난이지만 자주 듣다 보니 내가 3등 국민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70년대 박정희 정권 때는 반공을 강조했고 지역차별로 전라도의 이미지를 나쁘게 몰아갔기 때문에 벌교가 고향이고 여수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말하는 게 뭔가 불편했다. 그래서 고향을 물어보면 광주라고 얼버무렸다.


여수는 실제로 60년대부터 밀수가 성행했다. 75년 대대적인 단속으로 밀수조직과 비호세력이 완전히 제거됐으나 밀수 도시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상당기간 지속됐다.


벌교는 주먹질의 나쁜 이미지에 더하여 욕 잘하는 이미지가 더해졌다. 여배우 중 최고의 욕쟁이인 김수미 씨는 영화마다 욕을 해대면서 “내가 벌교 여상 출신이여” 하면서 벌교 출신임을 강조한다.


2003년 개봉한 박중훈 주연의 “황산벌”에는 백재가 신라병사의 껄쭉한 욕솜씨를 당하지 못하고 밀리자 계백장군이 비장의 무기로 벌교 병사들을 내보내어 이 글에서 도저히 언급할 수 없는 상상 이상의 쌍욕으로 신라군을 물리친다.


코미디 역사물이지만 왜 욕 잘하는 병사가 벌교 출신이었는지 열 받는다. 그리고 김수미 씨는 껄쭉하게 욕을 해 댄 후 왜 벌교 여상 출신임을 강조하는지 불쾌하다. 지금도 조폭 영화 보면 욕 잘하는 벌교 깡패 한 명은 꼭 양념으로 낀다. 영화 황산벌과 김수미 씨 덕분에 벌교 사람은 주먹질 잘하는 이미지에 더하여 욕을 허벌나게 해대는 사람의 이미지가 덧 데어 졌다.


2007년 여수가 엑스포 유치에 성공하고 엑스포를 위한 준비가 시작 되면서 여수의 이미지가 서서히 개선되었다. 2009년에는 순천만 정원박람회가 유치되고 주변 인프라가 발전하면서 벌교로의 접근성이 좋아졌다. 특히 벌교에는 2008년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이 개관하였고 2011년 한창기의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이 개관하는 등 문화적인 이미지로 개선되었다.


급기야 벌교꼬막정식이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 퍼지면서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맛있는 벌교 꼬막정식 한번 먹어보려고 서울에서 강릉까지 가서 몇 시간 줄 서서 30분 먹고 돌아오는 우스꽝 스러운 일까지 생겼다.


이미지가 개선될 일이 한 가지 더 남았다. 그리고 진행 중이다. "여순반란 사건"이 "여순 민중항쟁"으로 바뀌고 있다. 반란의 부정적 이미지가 이승만 독재에 대항한 민중항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도올 선생께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우리의 잘못된 근대사를 바로잡으려 노력하고있다. 도올 선생의 “우리는 너무 몰랐다”라는 책을 읽고 부모세대가 겪은 시대의 아픔을 모르고 살았다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제 나는 고향 얘기를 자랑스럽게 한다. 친일파들의 독재에 분연히 항거한 벌교, 여수가 제1, 제2의 고향입니다. 벌교는 꼬막정식의 원조이고 한창기, 조정래를 배출한 문화의 고장입니다. 여수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며 서대회, 장어탕, 개장 정식의 원조인 맛의 도시입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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