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열차는 낭만과 함께 달린다

EP 8. 12시간의 침대 기차를 타고. 태국(2) - 야간 기차

by 모두의 신대리


여행을 할 때 어떤 교통수단을 선호하시나요?


우리나라의 몇 배나 커다란 나라들 안에서 지역 이동을 할 때면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게 됩니다. 매번 빠르고 편한 비행기를 선택한다면 정말 좋겠지만 돈이 없는 여행자에게 비행기는 사치품 아니겠어요. 그러므로 나도 이번 장기 여행에서 조그만 미니버스, 그냥 버스, 슬리핑 버스, 기차에 페리까지. 아주 다양한 탈것을 타고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내가 선호하는 건 바로 침대 기차입니다.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잠자리. 멀미가 잘 나지 않는 구조에 (슬프게도 나는 멀미를 심하게 합니다) 언제든 갈 수 있는 화장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뜨거운 물에 어떤 기차는 전기까지 사용이 가능하니, 이만큼 안심되는 탈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기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은 또 덤이지요.

철컹철컹 흔들리는 철도 소리.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예쁜 풍경.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사람들. 일행들과 나누어 먹는 음식까지. 괜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해 주는 모든 요소들이 기차 여행을 즐기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방콕과 가까운 아유타야에서 치앙마이까지 가는 교통수단으로 침대 기차를 선택했습니다. 밤 9시에 출발해 다음 날 9시쯤 도착하는. 장장 12시간이 걸리는 여정입니다.


내가 왜 기차 여행을 좋아하게 됐을까를 생각해 보니 중국에서 교환 학생을 하던 시절. 방학 동안 친구들과 떠났던 기차 여행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내가 공부를 하던 심양에서 출발해 상하이, 항저우, 텐진을 통과해 북경까지 도착하는 루트였는데, 한번 지역을 이동할 때마다 짧게는 12시간부터 길게는 이틀이 넘게 기차에 머무르면서 약 2주간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회피형인 나는 안 좋은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만 남기는 경우가 많은데요. 아마 그때의 여행도 이런 경우였던 것 같습니다.

분명 불편한 것도 많았을 텐데 뭐가 그리 좋았는지. 제대로 씻지 못해 꼬질꼬질한 상태로 친구들과 기차에서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카드를 치고, 컵라면을 끓여 먹고, 잠시 정차한동안 뛰어나가 음식을 사고. 좁디좁은 3층 기차 침대에 구겨져 자다 일어나 책을 읽고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던 그 기억이 내 기억 속에 진한 향기를 남겨 놓았단 말이지요.


그래서 이번에 아유타야에서 치앙마이로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나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습니다.


우연히도 내가 치앙마이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날이 세계 3대 축제라는 태국의 송크란과 겹친 터라 기차표가 없어 일정이 약간 밀리고 2층 침대를 이용하게 되긴 했지만요. 정해진 스케줄이 없는 장기 여행자에게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아니겠어요.


덕분에 내 인생의 첫 송크란은 아유타야에서 보내게 됐습니다.


숙소에서 알게 된 아일랜드 친구와 함께한 특별한 경험.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친구와 송크란을 즐기고 나서 깨끗하게 샤워까지 마치고 난 뒤, 짐을 챙겨 기차역으로 출발했습니다. 크지 않은 규모의 기차역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 나와 같이 백팩을 메고 여행하는 여행자들과 아주 어린아이와 함께하는 외국인 가족들까지.


기차역에수 마주친 어린이들.


기차의 침대는 내가 찾아본 것보다 약간 좁고 작은 형태였습니다. 키가 157cm 밖에 되지 않는 나에게 길이가 딱 맞는데, 나보다 키 큰 사람들이 불편하진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이럴 때 보면 여행할 때 키가 작다는 건 어쩔 땐 좋은 이점이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여차하면 자다가 굴러 떨어질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다행이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차에 타 짐을 정리하길 잠시,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을 실은 기차가 치앙마이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리 이북 리더기에 담아 온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자정. 아니 시간이 언제 이렇게 빠르게 흘렀나요? 버스를 탈 땐 흐르지 않는 시간을 저주하며 괜스레 시계를 뚫어지게 쳐다보곤 했는데 누워서 이동할 수 있다는 것 하나로 이렇게나 삶의 질이 개선되다니요.


따뜻하게 데워진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꾸물꾸물 잘 준비를 하기 위해 칫솔과 치약, 간단히 얼굴과 발을 헹굴 비누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사진이 너무 자세하다면 죄송합니다



도착한 화장실은 생각보다 조금 더 좁고, 생각보다 더욱 특이했습니다. 물을 내리는 형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구멍으로 들어가 사라지는 신비한 구조. 생각해 보니 기억에서 지워버린 중국 기차의 화장실도 이런 형태였던 것 같습니다.


사람 몸에서 나온 모든 것들이 그저 철도로 떨어질 텐데, 그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좀 들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습니다. 너무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


흔들흔들 흔들리는 화장실에서 손잡이를 단단히 붙들어 메고 고양이 세수와 양치를 끝낸 다음 다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럴 때는 역시 물티슈를 챙겨가는 것도 좋습니다. 조금이라도 물이 닿는 것과 닿지 않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약간) 깨끗해진 상태로 따뜻한 모포까지 덮고 나니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흔들흔들 흔들리는 차체에 몸이 조금씩 흔들리자 나도 모르게 조금씩 눈이 감깁니다. 철컹철컹 흔들리는 철도의 소리도 잠이 오게 만들어주는 백색소음처럼 들립니다. 어릴 때 잠을 이루지 못하면 토닥토닥 나를 토닥여주던 엄마의 손짓 같기도, 흔들흔들 흔들리는 해먹 같기도 한 좁다란 침대에서.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습니다.


번쩍 눈을 뜨고 나니 이미 아침 여덟 시가 지났습니다. 이제 곧 기차는 치앙마이에 도착할 것입니다. 아니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흐르다니. 지금 보니 12시간의 기차 여행은 나에겐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주섬 주섬 가방을 정리하고 나니 직원이 찾아와 침대를 훌륭한 소파 의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창문밖을 보고 있자니 푸른 들판과 시골길 뿐이었던 바깥 풍경이 어느새 조금씩 도시의 정경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훌륭한 의자가 된 1층 침대.


다음에 또 침대 기차를 탈 기회가 된다면 꼭 컵라면을 챙겨 와야겠습니다. 중국 기차에서 먹었던 컵라면이 그리도 맛있었는데, 지금에도 먹으면 그 맛이 날지가 궁금합니다.


슬프게도 여행이 4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시점까지 기차를 탈 기회가 없긴 했지만 여행을 계속될 예정이니 또 한 번 기회가 오겠지요


지금있는 터키에선 라면을 팔지 않지만 한식당이 보일때마다 무조건 달려가 사먹고 있습니다. 여행 중 저의 최대 사치입니다.


덜컹덜컹 흔들리던 기차가 어느새 멈춰 섰습니다. 치앙마이 역입니다.


이제 또다시, 여행의 시작입니다.


안녕 치앙마이. 앞으로 잘 부탁해!


*** 여행을 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자주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 세 가지 (스카이 스캐너 제외)


가능하면 정류장에 가 직접 표를 사는 걸 선호하지만, 역이 멀다면 어플을 활용하는 게 훨씬 편합니다


1. 12 go asia.

아시아권에서 사용하기 좋은 12go 아시아. (유럽까지 커버)
택시부터 기차, 버스, 페리, 비행기까지 다양하게 예약가능.
2. obilet

터키와 일부 유럽 국가까지 커버하는 오블렛
주로 버스를 예약할 때 사용하지만 페리와 호텔, 렌터카, 비행기까지 커버 가능.
3. omio

유럽과 북미권에선 12go 보다 약간 넓은 단위까지 커버하는 omio. 한글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그리스에서 페리를 볼 때 주로 사용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8화누구에게나 찬란한 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