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치

EP 9. 여행도 휴식이 필요해요. 태국(3) - 치앙마이 1

by 모두의 신대리
3주 간 계약한 산티탐 지역의 원룸. 금액은 6200바트


여행을 할 때의 나는 평소의 나와는 또 다른 사람입니다.


부지런한 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나. 알림 한 번에 벌떡 일어나 숙소 앞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부지런히 빽빽한 일정도 무리 없이 소화하는 나. 한적한 공원과 해변가에선 책을 꺼내 읽고, 카페에선 글을 쓰는 특별한 나 말입니다. 평소엔 기회만 생기면 드러눕고, 게으르게 늘어지는 사람이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산적이고 부지런합니다.


지금까지 다녔던 짧은 여행들에서는 평소와는 다른 에너지가 넘치는 내가 항상 우세했지만, 처음으로 떠난 장기 여행에서의 나는 또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여행이 어느새 두 달이 넘어가자 내 안에 숨어있던 게으른 내가 어느샌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방이 생기자 가장 먼저 한 건 밥해먹기. 맘껏 과일도 사먹고 삼삼한 맛의 샤브샤브를 잔뜩 끓여 먹었다.


치앙마이에 도착해 충동적으로 한 달 살기를 시작하며 초반 2주 정도는 열심히도 돌아다녔습니다. 그랩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산 꼭대기 사원에 다녀오고, 알려진 맛집들을 찾아가고, 유명한 재즈바들을 돌아다니고, 유료 수영장에 방문해 열심히 수영하고 책도 읽고, 도서관에 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박물관과 미술관에 방문해 작품들을 구경하고....어떻게 시작하게된 여행인데, 그저 시간을 녹일 수 없다는 생각에 매일매일 알차게도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 할수록,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곳을 돌아다닐수록, 감동은 줄어들고 모든 것에 심드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샌가 멋진 풍경 앞에서도 집착적으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풀방구리처럼 드나든 숙소 근처 로컬 시장. (타닌시장) 저렴한 가격으로 현지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습니다.

여행을 하면서도 지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리 예쁜 곳을 간다고, 아무리 좋은 곳을 간다고, 아무리 맛있는 걸 먹는다고 해서 그게 완전한 휴식은 아니었다는 것을요.

회사에 다닐 때의 나는 퇴근 후 운동을 가고, 또 친구들을 만나며 평균 밤 10시가 넘어서야 귀가할 만큼 나름 열심히 삶을 꾸려나갔지만, 주말에는 꼼짝 않고 누워있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만해도 아무것도 하기 싫어 꼼작없이 누워있는 스스로가 싫고, 기력 없이 누워 있던 그 모든 순간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모든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야 그것이 사실은 시간낭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충전이 필요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외향적이고 아무리 즐거운 환경 속에 있더라도, 나만의 공간에서 쉬어가며 앞으로 사용할 에너지를 재 충전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치앙마이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 수많은 마켓. 그 중 치앙마이 콩콩마켓, 선데이 마켓에서 마주친 수제 악세사리를 만들어 파는 사장님. 가격이 저렴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숏츠를 보며 시간 보내는 나

운동도 가지 않고 침대 위에서 뒹굴며 숨만 쉬는 나

배달로 음식을 시켜 먹고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방 안에서 500 보도 걷지 않는 나.


이 모든 것이 나였는데, 그동안 하나의 나에게만 집중하며 또 다른 한 편의 나를 너무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틈만나면 이곳저곳 여러 사원들을 돌아다녔다


그때부터 나는 여행을 하면서 아무리 예쁜 것을 봐도 예뻐 보이지 않고,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도 즐겁지 않다면. 모든 것을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시간을 낭비하는. 나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너그럽게 허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현재 여행 5개월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벌써 네 번째 나라, 스무 곳의 지역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자연 풍경, 책에서만 보았던 역사 유적지들,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더라도. 너무나도 지친 날이면 나는 내 안에 있는 게으른 나를 출소시킵니다.


아무리 바깥세상이 아름답고 다시 못 볼 만큼 눈이 부시더라도. 도 끝없게 늘어지며 오만 번째 의미 없는 쇼츠를 넘겨봅니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좋아한 장소. 치앙마이 대학교 앙깨우 저수지.


나는 어딜 가도 나입니다.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내가 변하진 않습니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가 슬픔이를 받아들이고 모든 것이 라일리를 이루는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이제는 가끔씩 튀어나올 게으른 자아를 인정하며,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치를 누려봅니다.


열정적인 나도 게으른 나도. 모두 나!



*** 치앙마이에 장기로 머무른다면 가보면 좋을 세 군데



1. 매 달 첫째 주 일요일 하루만 열리는 식품마켓

비교적 최근에 생긴 마켓. 품질 좋고 위생적인 베이커리와 음식들을 주로 판매한다. 가장 유명한 건 내가 방문했을 땐 마켓 이름이 아직 없었는데 현재는 생겼을지도.
가장 유명한 건 고퀄리티의 타르트. 피스당 15~20밧 정도로 아주 저렴하다.

위치 : JOKO Boutique Bakery (ในเมือง). 핀강 근처



2. 왓 프라탓 도이캄

관광객이 거의 없는 현지인 픽 불교 사원.
17m 높이의 좌불상과 다양한 부처상이 있다.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시티뷰도 매력 포인트!
복권 당첨 성지로 유명해 현지인들이 주로 방문한다. 기념품으로 태국 복권을 한번 사보는 걸 추천한다.

단 도심에서 거리가 좀 있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해서 택시가 이동 안 할 수 있다. (오토바이 택시를 추천

위치 : Mae Hia,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50100 태국
입장비 : 없음



3. 루퍼 스위밍 풀 (Looper swimming pool)

바다가 없는 치앙마이에서 제대로 된 수영을 즐기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입장비를 구매하면 무료 음료 쿠폰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느긋하게 수영하고 휴식을 취하기 좋다.

위치 : 144/49 ซ Yu Yen Rd, เมือง Chiang Mai 50300 태국 입장비 : 300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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