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노숙하기는 또 처음인데요.

EP 6. 아 물론 제 잘못이긴 합니다! 싱가포르 - 창이 공항

by 모두의 신대리



나는 원래 모든 것을 계획하는 계획형 인간이지만 이번 여행에선 늘 나를 도와주고, 또 괴롭혔던 그 무수한 계획들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였습니다. 사람은 원래 자신의 반대를 동경하기 마련이라는데, 나도 항상 무계획 속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을 동경해 왔거든요.


그동안은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 시도도 해보지 못했지만 이번 장기 여행은 약간의 실패와 실수도 낭만이 되어줄 좋은 기회입니다. 그래서 나는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편도 티켓만 끊고 출국하기”를 실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평소처럼 너무 많은 정보를 알아보는 건 금물! 내가 준비한 것은 오직 한 장뿐인 편도 비행기표와 초반 4일간의 숙소뿐입니다. 계획을 많이 짜지 않는 친구들이 수없이 이야기해 주었던, 우연히 만나는 행운에 대한 기쁨을 나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요.


그리고 호기롭게 실천한 첫 무계획은 어찌 보면 기대보다 더.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방금 무슨일이 있었지.. 당황이 묻어나는 뒷 모습. 그래도 일단 사진은 남겨봅니다.



설렘과 기대와 걱정으로 가득 찼던 3월 19일 출국 날. 떨리는 마음으로 섰던 체크인 카운터에서 나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태국을 제때 떠날 것이라는 증명서, [아웃 티켓]이 없다면 인천 공항에서 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허걱. 계획이 없는 여행에 수많은 변수가 생길 것이라는 건 충분히 각오했지만 여행 시작도 전에 생기는 건 반칙 아닌가? 파노라마처럼 1초 만에 수많은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쳤지만 뇌보다 빠른 손이 빠져나가버린 정신을 내버려 둔 채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체크인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어렴풋이 다음 나라로 태국을 고민하고 있던 걸 떠올리고 급하게 스카이 스캐너를 켜 방콕행 편도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발리와 태국은 직항으로 약 네 시간 반 거리로 그렇게 멀지 않기 때문에 표 가격도 저렴한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랄까요? 정신없는 나를 향해 직원분이 혹시 모르니 24시간 내에 취소가 가능한 표를 사라며 조언을 주었지만,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상황에 나는 나도 모르게 최 상단에 떠있던 표로 결제를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뭐가 문제인지 결제도 여러 번 실패한 터라 평소처럼 꼼꼼히 더블 체크를 할 정신도 없었거든요. 겨우겨우 출발지와 도착지, 가격만을 체크한 채 저는 결제 완료 버튼을 누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신없는 아웃 티켓 증명과, 빠른 짐 수속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내게 손을 흔들어주는 동생에게 아련한 인사를 마친다음에서야 방금 결제한 표의 상세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여행지가 생겼습니다.


아뿔싸... 경유 표입니다.

내가 구매한 경유표 바로 밑에 떠있던 직항표를 구매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비행기로 고작 네 시간 반이면 이동할 수 있는 같은 동남 아시아권 나라를 약 13시간 25분에 걸쳐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누구를 탓할 상황도 아닙니다. 온전한 나의 잘못입니다!


잠시 머리가 띵~ 울리긴 했지만 나의 기념비적인 첫 여행이 시작되는 이 시점, 작은 속상함으로 여행을 망치기엔 나의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찜찜한 마음을 가슴 한편에 미뤄두고 일단 시작된 나의 여행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후회로 시작하기엔, 이 곳은 너무 아름다운걸요


그리고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표를 취소하거나 나라를 바꾸거나 도착지를 바꾸려는 무의미한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표 변경 실패라는 운명을 받아들인 나는 약 3주 간의 발리 여행을 마무리하고 두 번째 여행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부주의로 시작하게 된 나의 작은 이벤트는 발리 공항에서 2시간 반정도를 이동해 밤 10시 25분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한 다음 약 8시간을 대기하고, 오전 6시에 약 2시간 반을 날아 방콕으로 출발하는 여정입니다.


물론 살면서 여러 번 경유를 해본 적도 있고, 필요에 따라 공항에서 노숙을 해본 적도 있지만, 그 모든 걸 한 번에. 그것도 혼자 하는 건 또 처음 해보는 경험입니다.


나는 발리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이미 싱가포르 공항에서 어디가 노숙에 좋은 포인트인 지, 또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도 미리 찾아 놓았습니다. (결국 계획형 인간은 계획을 해야 마음이 편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 준비 부족으로 인한 두 번의 실패는 없습니다!



두시간 반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 하자마자 깔끔한 상태로 잠을 청하기 위해 일단 식사와 샤워가 가능한 라운지를 찾았습니다. 라운지에서 하루를 보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출국 전 발급받아 온 신용카드의 더 라운지의 혜택으로는 라운지를 3시간 밖에 사용하지 못하거든요.

그래도 야무지게 신용카드의 혜택까지 챙기고 공짜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샤워와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마음이 한껏 든든해졌습니다.


세상 많이 좋아졌습니다. 공항에서 보송보송한 새 수건과 따뜻한 물로 샤워가 가능하다니!


그리고 나선 미리 찾아본 노숙 포인트로 이동했습니다.

누워서 쉴 수 있는 의자가 있고, 충전공간과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자판기까지. 밤을 지새우는 사람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지만 이미 그곳은 새벽 비행기를 기다리는 단기 노숙인(?)들로 이미 만실이었습니다.

나는 결국 이곳저곳을 배회하다 의자를 포기하고 좀 더 공항 깊숙한 곳,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외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사실 운이 좋게 와식 의자도 잠시 차지 했지만 자세를 바꿀 수 없는게 오히려 불편해 한시간정도 잠들었다 금방 깨어 났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사모은 나의 화려한 옷가지들. 괜히 노숙하고 있는 이 상황과 어울리는 것 같아 혼자 좀 웃었습니다.


이미 잠이 든 사람들이 여럿 모여있는 곳에 슬쩍 끼어들어 발리에서 고심해서 골라 구매한 사롱을 깔고, 백팩까지 베고 누우니 나름 훌륭한 나만의 잠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나와 같은 상태인 사람들 사이에서 뒹굴뒹굴 편안하게 드러누워 핸드폰을 보다가 괜히 스스로가 웃겨 사진을 몇 개 찍은 다음, 진짜 잠들 수 있으려나를 고민하길 잠시. 문득 정신을 차려 핸드폰을 보니 이미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스울 정도로 푸욱 잠에 들었습니다.


여행을 시작한 후 여러 숙소들을 거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강화되고 있었나 봅니다. 여행을 시작한 첫날, 약간 더러운 숙소와 밖에서 들리는 소음에 무서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까탈을 부렸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성장이었습니다.


한달사이 나를 호되게 단련시켜준 호스텔들


다시 비행기를 타기까지 채 몇 시간도 남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나의 보금자리를 다시 주섬 주섬 정리하고 방콕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 달 만에 벌써 세번째 비행기 입니다. 복잡했던 나의 여정과는 다르게 찬란하고 맑기만 한 햇살이 비행기 창문으로 비춰오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다이나믹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나의 첫 무계획 여행으로 시작한 짧은 싱가포르 여행은 몇 가지 행복 포인트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첫 번째는 어디서든 잠을 잘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

두 번째는 이번 여행에서 여행을 한 나라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친구들에게 자랑할 한 가지가 늘었다는 것.


너 혼자 노숙해봤어? 나는 해봤다! 대단하지!



다음 여행지는 태국 아유타야. 찬란한 문화가 숨쉬는 그 곳.



*** 장기 여행자가 비행기 표를 구매할 때 항상 신경 쓰는 것 세 가지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가격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


1. 너무 많이 확인하지 않는다.

같은 비행기표를 너무 여러 번 검색하면 가격이 달라진 다는 건 이미 많은 분들이 아는 사실.

초반 한 두 번 가격을 위해 검색하고 결론을 낸 다음, 이후 결제를 할 때에만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사이트가 불안정해 결제가 힘들더라도 가능한 공식 사이트를 이용한다
2. 항공사 공식 사이트에서 구매를 진행한다.

프로모션을 이용해 중개 사이트에서 구매하는 것이 더욱 저렴하지만, 금액을 좀 더 지불하더라도 피치 못한 상황 표를 취소, 혹은 변경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비교적 빠른 대응이 가능한 공식 사이트를 사용한다.

중개 사이트와 항공사와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사진은 예시입니다
3. 다음 지역이 정해지지 않았을 땐 공항에 도착해 24시간 이내 취소가 가능한 국적기 표를 구매한다.

몇몇 지역은 아웃티켓이 없다면 아예 출국이 불가능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해 24시간 이내 취소가 가능한 국적기 표를 구매한다.

비즈니스 등 기간에 상관없이 취소가 가능한 표를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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