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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Nov 04. 2020

보통날의 감사

 일상의 사유

그저 내 자식과 내가 먹고 살고자 하는 일이고 그저 나를 위한 삶이 대부분이일 것이다.

그럼에도 매일 먹는 밥맛이 무엇인지 느껴지지 않는 순간은 내가 잘못 사는 건 아닌지 나를 의심한다.

다른 사람 입도 아닌 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밥알이 꺼끌거릴 땐 난 숟가락을 내려놓고 벽에 걸린 평화로운 그림 액자로 눈을 돌린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바라만 본다.

곡식이 영근 들판은 금빛이 감도는 짙은 노란색으로 꽉 차 있다. 하늘과 맞닿아 삶에 대한 노고를 내게 말하며, 그 들판 오른쪽엔 쭉쭉 뻗은  초록색 잎들이 가득한 키 큰 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하얀색과 푸른색이 감도는 하늘은  황금빛 들판과 맞닿아 땅을 딛고 사는 인간은 그 땅을 돌고 돌아 하늘로 갈 것이라고 얘기한다.

들판 한 중간에 사람 둘이 나란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이 작은 길이 나 있다. 저 길을 걸으면 사는 것도 느려져 곳곳의 풀과 꽃들을 더 자세히 보겠지. 나무가 뻗은 만큼의 절반만 나를 자라게 하면 하면 되지 않을까.

길의 한 중간에 자연의 색을 오롯이 담은 멋진 집이 있다.  따뜻하다. 저곳에 있으면 시끄러운 내 마음도 잠재워질 듯하다.


날마다 보는 이 풍경은 내게 날마다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마음이 불편하여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하늘, 땅, 나무 등 자연으로 꽉 차 있으면서 여유를 전하는 평온한 그림으로 마음을 달래기도 하였다. 그 옆에 걸린 또 다른 풍경은 날마다 보는 나무, 하늘, 들판이지만 날마다 다른 것임을 알려주며, 내가 맞는 이 일상을 날마다 다르게 살아내라고 잔소리한다.


고통스럽다는 한 단어로 삶을 옥죄었던 십여 년을 때때로 지긋이 눈을 감고 떠올린다.

다가오는 내일이 한없이 두려워 해가 뜨지 않기를 바라며 밤을 지새운 적도 있으며, 이 산을 넘어가면 평탄한 언덕이 나올 것을 기대하며  손 끝에서 희미한 삶에 대한 희망을 걸치고 있었다.  야속하게도 숨이 넘어갈 듯 산을 넘으려고 하면 중턱에서 어느 쪽인지 방향을 잡지도 못한 채 길을 잃기도 했고, 언덕은 곧장 자갈밭으로 이어져 앞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그저 위태롭고 휘청거렸다.


아이가 잠든 깊은 밤, 불안했던 그 밤에 벽에 웅크리고 기대앉아 바람에 꺼질 듯 말듯한 촛불이 되어 살고자 했던 작은 힘조차도 빠져나갈까 봐 스스로 내 몸을 감싸 안았던 밤들이  빠르게 넘어간다.

밥 한 술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살아보고자 했던 지난날들이 겹겹이 쌓여 또 다른 기억 속에 묻혔다.  세월이 내 젊음을 갉아먹기도 하였지만 현재 삶의 뿌리가 되었음을 감사하게 되고,  나약한 엄마를 가장 큰 사람으로 여겼던 내 아이와 어떻게든 있는 힘을 다해 살아낼 것을 수천번 다짐했던 내게 감사한다.

모래 같던 글이 쌓여 살 길을 만들어내고,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은 타인과 마주하도록 힘을 실어주었으며, 삶은 살다라는 동사와 사람이라는 명사로 이루어져 있음을 더 이상 놓치지 않는다.


삶이 힘겨운 것임은 옳았고, 그걸 거절하지 않고 티끌 하나 없이 받아들이게 되니 오늘 아침. 오늘 내가 보낸 이 보통날이 감사할 뿐이다.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는 것.


마실 물이 있고, 누울 자리가 있으며, 내가 머무를 공간이 있다는 이 삶.

그리고

조막만 한 아이 손을 잡고 뿌연 안갯속을 걸어 나왔던 나의 고단했던 삶은 이제 저어기. 멀리. 촛불을 켜야만 볼 수 있는 곳으로 보내 놓는다.


보통날이다.

타인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보통의 일상이 내게 행복한 삶의 밭이 되리라.

보통 사람으로 보통의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왜 이 삶을 살고 있는지 존재의 이유와, 내게 온 삶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것이며,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나의 자리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모든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나의 영역과 한계를 넘어 경험을 딛고 올라서는 것. 나의 경험을 편견으로 몰아세우지 않고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도록 하는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통의 행복을  더 확장시킬 것이다.   


오늘 나의 행복을 느끼며 내일 다시 오는 아침을 여한 없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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