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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Dec 08. 2020

2. 나를 깨우는 키보드 소리

글쓰기의 힘

키보드 소리가 나를 깨우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위기가 오는 시간이 모두 다르다. 문제도 다양하다. 가족의 아픔이나 죽음, 생계를 위협하는 문제, 인간관계 등 그 문제의 종류를 일일이 나열할 수 없다. 

나는 문제가 올 때마다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이 되려고 한다. 일단 작든 크든 문제가 닥치면 나는 내게 묻는다.


‘그 위기나 문제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피할 수 있는 일인가?  

그 문제가 내게 무엇을 잃게 하고 무엇을 얻게 하는가? 

나의 감정은 어떠한가? 나는 그 문제를 어떻게 느끼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처음부터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서서히 화력을 더하여 삶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 이십 대 중반부터였다. 이른 나이에  취업과 결혼의 출발이 순탄했기에 삶의 기대가 기세 등등하였다. 남부럽지 않게 살 것이라는 포부는 하늘 위를 마음껏 날아오르는 열기구 같았다. 한 걸음 한걸음을 얼마나 발끝에 힘을 주고 걸었는지 모른다. 온몸에 자유가 찾아왔다는 생각이 새파란 이십 대에 찾아들었을 때 인생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져다줄 것으로 꿈꾸었다. 

어릴 때 넉넉하지 못하여 할머니 집에서 자랐던 시간과 돈에 쪼들려 문제집 한 권 살 때마다 눈치 봤던 날들, 서울로 다시 입성하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노력하고 버틴 날들이 모두 추억으로 변질되었으니 충분히 핑크빛 꿈을 꿀만 했다.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도 채 못 되어 열기구는 더 이상 날지 못했다.

열기구도 엔진이 필요했고 날아오를 이유가 있어야 했으나 오르고자 하는 의지가 이미 꺾여 어딘가에 내동댕이쳐졌다. 

이혼과 동생의 죽음,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삶을 살아오는 동안 나는 어린아이에서 성년이, 노년이 되어가는 삶의 순서가 아닌, 적어도 몇 사람의 삶을 거쳐야만 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산에 올라가기도 하고 길을 걷기도 하며 답답한 마음을 쓸어내렸다. 끝까지 뻗은 길을 보며 내 문제가 저 길의 끝처럼 끝나는 순간이 올 것이다 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높은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모든 것이 작게 보였다. 내 문제도 시간이 지나면 작게 느껴지는 순간이 꼭 오겠지 하며 나를 달랬다. 


그러나 시간 가는 것만을 기다린다고 해서 문제를 대면하는 힘이 커지는 것은 아니었고 때때로 초조함에 가슴을 쳤다. 길을 가도 가도 제 자리 같았고, 산을 넘어도 산이었다.

좀 더 삶의 경력이 쌓였을 때 이 문제가 내게 왔다면 나는 좀 덜 힘들었을까? 하며 가장 젊은 날의 햇살 아래에서 가장 어두운 그늘로 숨어 들어갔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끝도 없이 밀려왔다.

어쩌다 내 삶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을까. 

그럼에도 아이가 태어나 한 아이의 엄마로서 또 다른 삶이 더해지고 다른 삶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살아갈 힘을 내어야 했다. 

아이의 손짓과 옹알이, 울음과 웃음소리는 땅거미 아래 묻힌 삶의 신호가 되어 나를 깨웠다. 날마다 늘어나는 것은 유연한 마음이 아닌 오기였다.

삶에 대해 이기려는 마음은 나를 더 힘겹게 하였다. 내게 온 모든 것을 저항하는 마음도 바닥에 깔렸다. ‘왜?’라는 물음 앞에서 나는 웅크리고 주저앉기를 수백 번 반복하며 내 어깨에 지워지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려고 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계가 왔다. 

길의 중간에서 숨을 고르며 힘을 주고 있을 때, 초록불과 빨간불 사이 노란불은 긴장하게 한다. 그것이 어떻게 결론이 날 것인지 모른 채 시간만 기다리고 있던 나는 그날 밤 결국 터트렸다. 체한 후 바늘로 손가락 몇 개를 따듯 뭉친 것들을 풀어낼 것을 선택했다. 어딘가에 털어놔야 내가 숨을 쉴 수 있을 듯하였다. 처음 시작은 그랬다. 현재 내 감정을 쓰는 것으로 시작했다. 속상하고 두려운 마음을 쓰니 내게 묻는다. 

“무엇이 너를 두렵게 하는가?”

늦은 밤 1시를 넘어서면서 키보드 소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아무에게도 말 못 했던 지난 시간을 나는 글자 하나하나에 옮겼다. 가만히 두면 조용할 호숫가에 돌을 던져 물의 흐름을 모두 헝클어놓고 헤집는 일이었다.  희미해지기를 그토록 바랐던 일은 바닥에서부터 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쓴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돌이켜보면 이렇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나는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였는가?

내가 잊지 못할 일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 나는 무엇이 부끄러운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지금 내가 무엇을 가장 원하는가?”      

수년간 닫힌 물꼬를 터놓듯 굳이 내가 쓰지 않으면 모를 일을 나는 쓰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환청처럼 들리던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비야냥이 방향을 튼듯했다.

밤새 내가 들은 소리는 중간중간 터지는 내 깊은 울음소리와 키보드 소리, 이 두 가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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