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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Jan 15. 2021

3. 불안감에서 해방되다

글쓰기의 힘 

불안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다. 사람과 헤어질 때도, 몸이 아플 때도, 낯선 곳에서 여행을 할 때도,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순간에도 불안하다는 단어는 금기어였다. 몸은 알고 있었다. 온몸이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기에 굳이 소리 내서 말할 필요도 없었다. 

“너무 불안해.”하고 말하는 순간 나는 삶에서 패자가 될 것이라고 여겼으리라. 

그럼에도 불안한 상황은 삶을 더 살도록 만들었다. 나는 불안에 의지했다. 내가 지배당하는 것보다 선택하면 오히려 나를 살도록 해 줄 것이라는 바보 같은 믿음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법정 싸움이 길어질 때는 외줄을 타는 것 같았다. 원하는 헤어짐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봐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렸지만 위태로운 감정은 오히려 숨 막히는 상황을 더 견디게 만들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불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아 일을 더 할 수 있었다. 불안은 홀로 삶을 사는 출발에 대한 신호였다.

나는 나를 극도로 불안하게 하는 것들을 목록으로 적었다. 당신의 불안 요소는 무엇인가? 그 불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내가 홀로 삶을 지고 가야한다는 사실과 싱글맘이라는 현실이다. 실과 바늘이 되어 나를 칭칭 감을 때마다 더욱 나의 불안을 쓰려고 했다. 

먹고사는 문제는 어떠한가. 자식을 키우고 살아야 하는 물리적 환경에서 매일 불안했으나 위태로움은 나를 단련시켰다. 어떠한 일도 주저하지 않고 시도하도록 만들었다. 시도와 실패가 수십 번 교차하는 사이 예전의 나를 되찾기 시작했다.

불안에 대한 반전이다. 삶에 대한 오기와 깡을 만들어내서 앞으로 나가도록 박차를 가했다. 불안은 뒤로 한걸음 물러서지만 않아도 내게 서 있을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엄마로서 불안감을 내 아이에게 전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불안감이 나를 뒤덮으면 내가 당장 기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했다. 하늘, 나무, 집 근처 있는 저수지, 담벼락에 핀 꽃, 멀리 보이는 산자락이 내가 의지한 것이다. 유난히도, 유별나게 많이 나는 그것을 썼다. 내가 그것을 보며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담고 싶은지, 내가 저들처럼 꿈이 있는지, 자유롭게 속내를 표현했다.      

내 아들의 엄마라는 사실이 어깨를 짓누르기도 했기에 나도 의지할 것이 필요했다.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내가 불안하면 아들도 불안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니 학습시키고 싶지 않았다. 불안했지만 불안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자 하였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가지고 삶을 대하고 싶었다. 그것이 삶에 대한 책임과 의무였다. 어떠한 불안도 견뎌내면 사는 지혜가 더해졌으니 슬슬 불안을 즐기는 힘도 생겼다.     

자식은 엄마로부터 감정을 배운다는 말을 마음에 새겨두고 부정적인 감정이 학습되지 않게 하였다. 행여나 부정적 감정과 불안을 만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문제를 마주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강건함을 내게 심었다. 솔직하고 자유로운 표현을 하면서 불안감에 속박되지 않는 힘을 갖도록 매일 연습하였다.


여행지는 어떠한가, 빽빽한 건물 사이와 사람이 많은 한복판에서 정면을 직시하며 걷는 것이 불안해서

땅을 보고 걷게 하였다. 혹은 이방인으로 보이는 것도 달갑지 않아 낯선 곳의 나를 놓아두는 것은 피하는 것이 맞았다.

성격이 올가미가 되어 제 자리에서 맴맴 돌게 하는 것이 편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안전한 것이 행복함의 필수 조건이 아님을 느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쓰고 싶었고 쓰려고 했다. 글을 써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내안의 평정심이었고, 삶에 대한 격려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간절하게 얻고 싶었기에 불안과 자유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았다. 

매번 낯선 곳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나를 구하고 싶었다. 불안에 맞서야 했다.

일부러 낯선 곳을 찾아다녔고, 결국 난 하루 여행에서 일주일 여행, 국내든 국외든 혼자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새벽운전을 하여 울산 간절곳까지 달려가 일출을 보며 감동하여 글을 썼다. 외도에 혼자 들어가 꽃과 나무로 가득한 섬을 거닐며 혼자 이곳까지 떠나온 나를 썼다. 그 뒤로 수년이 흘러 나는 어디에서든 괜찮아졌다. 그 때의 글을 보면 감격이다. 그 순간의 글이 나 인 것 같아도 글 속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또 달라져 있었다. 내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글이 내게 보여주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 변화하였음을 말하고 싶다. 

첫 번째 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초반에 너무 힘든 상황이 많아서 이 책을 읽어도 될지 두려웠다는 말을 했다. 파릇파릇 했던 가장 젊은 날의 친구는 내게 정녕 이것이 네 삶이냐고 되물었고, 한 친구는 중간에 호흡이 필요해서 책을 덮었다고 했다. 그 때의 내 대답은 그랬다. 

“ 조금만 참고 봐. 그 모습이 끝까지 남아있지 않아. 그 때의 내가 아니야. 괜찮을 거야. 믿어봐.”

글이 그 사람과 동일한 것 같아도 결국 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그 때의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 해피엔딩이라고 결정지을 순 없지만 삶의 방향을 알려주기에 나는 믿는다. 행복을 내게 있음을.  

불안을 넘어서자 희열이 찾아왔다. 나를 넘어서니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트라우마와 편견에 사로잡혔던 벽을 넘어서자 기쁨이 분수처럼 솟았다.

당신의 불안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내게 불안은 안전지대에서 불안전한 지역으로 더 가도록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한다. 불편한 지역에서 불안과 마주하면 그 이상의 불안은 다가오지 않았다. 한 번만 부딪치면 입을 꾹 다물고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이를 알기 위해 내게 있는 불안을 자주 썼다. 이전과 다른 나, 이전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주는 것에 불안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것이 삶을 대하는 최고의 태도이다. 불안한가. 나는 나를 뒤흔들던 불안과 맞서기 위해 나의 불안을 꺼냈다.

어느 순간 불안이 내게 머무르지 않는다. 삶에 대한 적당한 긴장감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니,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간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은 불안만큼 좋은 게 없다. 

불안은 또한 내게 잘 견뎠노라고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살아갈 힘은 덤으로 주었다. 내가 불안을 두 팔 벌려 끌어안는 이유이다.

나는 또 생각한다. 요즘 나의 불안은 무엇인지. 사는 것에 따라 불안의 목록이 자꾸 바뀌기에 여전히 쓸 거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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