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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Nov 01. 2020

11월의 의미

길 위의 사람과 행복

가을의 화려하고 공허하다. 가을의 끝은 무엇일까. 아니 가을은 무엇을 전하고 싶을까.

9월과 10월은 맺음과 넉넉함이 논과 밭, 들판에 가득 차서 하늘은 더 높았고 산등성이는 더 낮아져 모든 것을 다 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틈을 내서 가을의 풍경을 가슴에 담기 위해 일상의 틈새를 자주 사용하던 두 달이었다.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스산하게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에 나무에서 춤을 추던 노랑, 빨강, 주황 나뭇잎들이 자꾸만 눈앞을 스쳤다. 좌불안석이다.

덧없음 같은 느낌이 불현듯 스쳤다. 밖으로 나갔다.  예상이 너무 딱 맞아떨어지니 씁쓸하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은 꽤 묵직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떨어져 있는 낙엽은 꼭 제 할 일을 다하고

나뒹구는 듯하여 마음이 서글퍼졌다.


곡식이 영그는 맺음의 계절이라 했건만 11월은 허허벌판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으며 여름날 짙게 푸르렀던 나무는 이제 앙상한 가지만을 내놓을 차례이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나는 우울해지는 것일까. 우울해도 괜찮고, 아니어도 괜찮다.

물론 굳이 괜찮다고 힘주어 말 하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숨기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쓸데없는 자존심의 작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휴일도 하나도 없으니 즐길 핑곗거리도 없다.

노벰버 답게 빼빼로데이와 농민의 날을 기념하는 가래떡 데이로 충만한 11월 11일이 있긴 했지만 마음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마음은 연말 즈음하여 혼자 이틀, 삼일이라도 시간을 보내고 싶기에 그저 그 시간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렇다고 그 날이 올 때까지 이 11월을 의미 없이 보내긴 너무 하지 않는가.

물론 내 할 일은 그런대로 잘하고 있고, 밥도 잘 먹고 있지만 이건 똑딱똑딱 돌아가는 일상일 뿐이다.

이 일상이 감사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많이 감사하다.


그럼에도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던 나머지 너의 이름도 NO벰버인 11월의 의미를 어찌 찾아야 할까.

가톨릭에서 11월은 위령 성월이다.  

11월은 죽은 이를 위로하는 거룩한 달이기에 삶과 죽음의 생각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달이라고 말씀하시는 신부님의 어느 칼럼의 한 문장이 나를 휘감았다. 차갑던 가슴에 갑자기 라이터에 불이 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10월 31일 핼러윈 데이도 죽음과 유령을 기꺼이 축복(!)하며 축제를 벌이는데 죽음을 대면하는 것임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망각하지 않았다. 내게 11월엔 아픈 달이다. 먼저 먼지가 된 흔적은 가슴에만 있어 오랫동안 마음을 할퀴었다.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이었고 마음은 비뚤어지기도 하여 바람과 함께 다가오는 낙엽이 하나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보통 사람의 마음을 가지기까지, 여기서 보통 사람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슬프고 기쁘고, 희망을 가지고,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잡는 마음의 딱 그 정도 수준의 정답 같은 감정의 소유를 말한다.


보통 사람으로 돌아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 감사의 연습을 간간히 했다.

꽃이 펴도 아름답지 않고, 꽃이 져도 슬프지 않던 마음에 감정이 살아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살기 위한 노력을 억겁으로 하였다.

깊은 새벽, 아마 2시가 넘었던 듯하다. 잠이 들지 않는다. 눈을 감은 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 년 열두 달 중에 하필 11월이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죽은 이를 많이 기억하라는 11월에 망자가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고 했다.


아파하지 말고, 현재 내게 놓인 이 삶을 굳건히 지키며 살아가려는 이 마을 지켜내고 이겨내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살다가 죽을 것이고, 죽을 것 같아도 살아지는 것이 삶이었다.


그 순간 삶의 의미는 덧없지 않다.

지난날 불행하다 생각했던 과거에서 벗어나기까지 고통스러웠지만, 불행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음을 다시 생각한다. 잊지 않아야 한다.  순간순간 내게 살아야 한다고 끝없이 주문을 걸었던 내 아이의 웃음으로 홀로 삶을 굳건하게 지켜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였으며, 자식을 잃고 난 뒤 마음에 구멍이 난 엄마의 곁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이었다.


오늘 내가 맞는 이 하루가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또 깨닫는다. 행복은 철저하게 일상에서 찾아야 했다.

불행과 행복은 교차한다.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살면서 배운다.

조용하면서도 아무것도 없는 달인 듯 하지만 어쩌면 그 속에서 다시 살아갈 의미를 찾고 또 다른 삶의 시작을 경건하게 알려주는 날들로 차 있는 달은 11월이었다.


꼭 새해 1월에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삶의 시작은 11월이기에 지금 시작하면 더 좋겠다.

마지막 잎새가 매달려 있는 그 날까지 이 시간을 즐겨야겠다.

나와 당신에게 축복이 넘치길 바라는 마음이다. 기꺼이 오늘을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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