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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Feb 28. 2021

공유 닮은 그 사람(1)

길 위의 사람과 행복 


" 늦었는데, 피곤하겠어요. 졸음운전 조심하세요. 제가 더 고맙습니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난 더 응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메시지 위에 난 그곳에서 찍은 바다 풍경 사진과, 읽고 있었던 책과 내가 마신 커피 잔이 찍힌 사진 몇장과, 네!! 고마워요!라는 나의 전함이 있었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밤 12시가 넘은 그 시간,

더 실례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휴게소에서 그와의 짧은 메시지로, 나의 마지막 여행 시간은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새벽 1시 5분.

현관문을 열자, 주황색 빛의 현관 등이 반짝, 환하게 나를 감싸고돈다.

'너의 여행은 끝났어'라고 내게 알려주는 오렌지 빛은 금세 꺼지고 만다. 짐은 그대로 한편에 둔 채 옷도 식탁 의자 위에 툭. 걸쳐놓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고단하구나. 여행도, 운전도. 대화는 이어졌다. 잘 도착했냐는 그의 메시지. 잠시 망설이다가 그곳에서 보낸 이틀이 그립다고 했다. 그리고, 난, 당신이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는 내게 따뜻한 말을 했다. 아니. 내가 따뜻하다고 느끼고 있다.

난 고민한다. 당신 결혼했나요? 아님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꿈이다. 꿈이었다. 이상하다. 그를 생각하고 잠이 든 게 아닌데, 왜 난 그와 대화를 했을까.

난 깊은 잠에 빠졌다가 늦은 아침, 창가의 강렬한 햇빛을 보며 일상의 수요일을 맞았다. 좀 더 충실하게 하루의 시작을 해야 하는데, 내 머릿속에 그 사람이 떠오르니 당황스럽다. 신기한 일이다. 오랜만에 사람이 아지랑이처럼 떠오르는 일. 부산에서 이틀을 보냈다.

48시간 중에 10시간을 한 카페 안. 유리창 없는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으며, 이어폰을 귀에 꽂고 늘 그렇듯, 혼자 그 시간 속에 날 놓아두었다.


다음 날 두 번째 갔을 때 여직원 둘은 날 기억했다.

"또 오셨네요. "

"그러게요. 여기가 가장 편하게 느꼈나 봐요. "

웃으며 라임트리-아이스커피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렸다. 카운터 안쪽으로는 까만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세네 명이 있었다. 그 틈에 셔츠 차림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묵직한 쓴 맛을 즐기는 나는 커피 향을 진하게 맡으며, 달콤한 호박 타르트 한 스푼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 입을 오물거리며 책장을 몇 장 넘기더니 곧 다시 진하고 진한 푸른 바다로 눈을 돌린다.


찰칵. 쏘셜 네트워크에 사진 하나를 걸었다. '싱그런 바람. 어느 여름'이라는 짧은 단어 몇 개와 함께.

적당히 몇 시간을 보낸 후 배가 고픔을 느낀다. 카페 근처에서 혼자 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적당한 밥집을 찾았다. 그다음 갈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되돌아간다. 그곳에.

세 번째 갔을 때, 내가 먼저 인사말을 했다.

" 하루에 두 번 오니까 이상하네요? 이거 좋은 일이죠?" 눈웃음으로 커피 주문을 해도 되는 순간이다.

내게 다양한 커피 맛을 보게 해 주었던 직원이 묻는다.

"언제 가세요?"

"오늘 저녁에 가요. 가면 생각 날 것 같아요. 고마워요."

직원은 아침에 왔을 때 잠시 눈길이 마주쳤던 셔츠 차림의 남자에게 말을 했다.

"이 분 ~ 어제오늘 계속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계속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대표인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말하며 시간이 돼서 요즘 가게에 자주 나오고 있다는 말로 커피 이야기를 한다.

"어디서 오셨어요? "

그는 짧은 시간 동안 세 번째 왔다는 나를 알고, 원두 하나를 보내주겠다며 내 전화번호를 노트에 적었다.


전화번호, 이름, (원두) 이렇게.

주문한 메뉴가 다 나온 줄도 모르고 그와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사이 주문한 커피와 티라미수 한 조각이 나왔다.


'느낌이 너무 따뜻한 거야. 묘하네. 참. 이상해.'

혼잣말을 하며 그의 잔상을 지운다. 2시간 후, 난 그 커피 가게를 나오며 인사를 했다.

그에게 명함을 받았다. 명함을 주면서 그는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내게 알려주었다.

손님과 사장으로 만난 찰나였다.

늦은 밤, 부산을 빠져나왔다. 오고 가는 셀 수 없는 불빛들 속에 섞여 쭉 뻗은 고속도로로 차를 올렸다.

운전하며 여러 생각이 갑자기 밀려온다.

"뭐야~ 카페에서 넋 놓고 있을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나더니." 이번엔 소리 내서 혼잣말이다.

볼륨을 높이며 생각을 누른다. 마음을 재정비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도 저도 아닌 삶에서 좀 더 나아지고픈 나의 바람을 실현시키고자, 나의 어느 곳에 숨어 있는 그 열정을 찾아내야만 했다. 머릿속으로 해야 할 것들을 만들어내며 내비게이션에서 남은 거리를 확인했다.


일상으로 가까워지면서 난 그가 떠올랐다. 홀가분한 상태로 돌아오고 싶었던 그 여행은 또 다른 복병을 내게 안겨주는 듯하다.

마지막 휴게소.. 운전한 지 3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제 갔던 라운지 바, 사장도 생각이 났다. 사장은 대학에서 강의하는 사진작가가 본업이었다. 참 다양한 경험이 있는 그 사람, 내게 정말 귀한 시간에 이곳을 찾아와 줘서 고맙다며 건배를 한다.


그 사장도 내게 명함을 줬다. 그는 2살 딸이 있었다. 서로 아이 얘기를 주고받으며, 그는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아이 보는 일이라고 했다. 손님과 사장은 사생활 얘기를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 늦은 밤. 새벽 2시까지 날 방황하지 않게 하였다. 또 멋진 밤을 기념하기 위해 모엣 앤 샹돈 샴페인 코르크 마개를 내게 주었다. 추억이 될 거라고.


마지막 휴게소에서 난 커피집 사장과 라운지 바 사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에 또 들르겠노라고.

그 공간을 내게 주어 좋지 않은 부산에 대한 기억을 바꿔 주어 고맙다고.

고마움을 전하며 내 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일요일 대 낮 2시 반.

일주일의 공백. 일터의 한가운데에 있다. 여행은 끝났다.

눈 앞에서 스치는 카페 안의 그 남자. 몇 분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내게 무슨 느낌을 줬던 걸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열정과, 부드러운 따뜻함이 맴돌았던 사람.


보고 싶다. 보고 싶다니. 5분도 마주하지 않은 사람을 떠올리고 있다.

하지만 파도 같은 감정을 잊고 시곗바늘 따라 움직이는 일상에 날 집어넣어야 한다.

그래야 하고, 그러고 싶다.

기억을 지우고 싶어 떠났던 여행은 메마른 나의 감정, 너도 살아있는 사람임을 잠시라도 알려줬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지만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자꾸만 그가 떠오른다. 즐길만한 고통이다.

지독하게 앓게 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잊고자 그 속을 뚫고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찰나로 내 머릿속은 필름 하나가 통째로 바뀌어서 재깍재깍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전혀 다른 장면이다.

심장에서 열이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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