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여느 때와 별 다를 바 없이 아이와 함께 학교 기숙사로 가던 중이다.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중에 아들의 휴대폰이 울린다.
" 응! 형! 나 학교 가고 있지. 뭐라고? 어디라고?"
아들 녀석은 숨 넘어가게 웃다가 다시 말을 잇는다.
" 어떡해! 그럼 학교 어떻게 와? 미치겠네. 이거 어떡하지? 아니.. 어쩌다 용산역이야!"
가만히 아들의 통화 소리를 들으며 운전하던 나는 차 속도를 줄였다. 전화를 누가 걸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드니 아들의 통화에 끼어들고 만다.
" 왜 그래? 형이 무슨 일 생겼데?"
" 형! 엄마가 지금 물어보는데, 내가 말해도 돼? 아니 형아가 직접 말해 봐."
바로 전화를 바꿔 통화를 했다.
"어머니. 저 아세요?"
" (당연히 모르지) 안다고 치고 얘기해 봐. 무슨 일이야?"
아이의 목소리에서 긴장과 탄식이 느껴져 긴장을 풀고자 농담처럼 첫마디를 열었다.
" 제가 기차를 두 번째 탔는데요, 평택에서 반대 방향으로 탔나 봐요. 살짝 잠이 들었는데 눈 뜨니까 홍성이 아니고 용산역이에요. "
" 놀랐겠구나. 그런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괜찮아. 다시 내려오면 되잖아. "
" 표를 보니까 홍성 가는 기차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게 매진이래요. 그래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순간 차를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속버스를 타면 어떨까 권했지만 기차도 헤맨 아이가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터미널을 찾아가는 것도 무리지 싶었다. 우선 코레일 앱에서 좌석이 나오는지 몇 번 더 검색해보라고 하고 다시 전화를 할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휴게소에 들어가야겠다. 막차 시간은 두 시간 뒤, 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는 열한 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거 같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주고 싶었다.
차를 세우고 남동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말하며 이 아이를 어떻게 무사히 학교에 돌아오게 할 수 없을까? 하니 그 아이 부모는 뭘 하고 왜 누나가 그걸 걱정하냐고 핀잔을 준다.
남동생은 평택으로 가는 건 기차가 많을 테니 일단 원점으로 내려가서 방법을 찾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한다.
그 때 직행 열차가 아닌 환승 열차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났다. 남동생과 통화를 하며 코레일 앱을 띄워놓고 검색을 하니 용산- 천안아산, 아산- 홍성으로 오는 기차가 있다. 좌석도 있고, 바로 십분 뒤에 탈 수 있는 6시 50분 기차였다. 당장 표를 끊었다.
" 현우야. 형 바로 올 수 있겠다! 호림(예명)이한테 빨리 전화 걸어봐"
아들은 소리를 지른다. 우와 우와 우와!!!
그 사이 호림이는 어딘가에 통화를 하고 있는지 바로 연결이 안 된다. 속이 탄다. 출발 시간은 십 분도 채 안 남았는데 전화를 받지 않으니 이건 또 무슨 일이람!
문자를 보내 두고 잠시 기다렸다. 이삼 분쯤 후에 아이에게서 전화가 온다.
"호림아. 표 지금 네 번호로 보내줄 거니까 바로 플랫폼으로 내려가. 천안에서 내려서 환승하면 되겠어. "
" 아! 너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
" 이번엔 부산까지 가면 안 되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천안에서 내릴 때까지 현우랑 계속 톡 하고..
호림아. 살다 보면 이런 날이 부지기수야. 거꾸로 갈 수도 있고, 길을 잘못 들 수도 있어. 그럼 어때. 다시 길을 찾으면 되니까 웃으면서 넘겨. 알았지? 학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니까 좋다. 그렇지? 행복하다. "
이들 녀석은 " 엄마는 역시 해결사야! 뭐든 해결이 안 되는 게 없어!" 하며 입이 귀에 걸렸다.
그렇게 좋을까. 까르르 웃고 신이 났다. 전화를 끊고 아들에게는 천안아산역에서 아산역 가는 길을 찾아 캡처해서 형한테 보내두라고 했다. 5분 거리니까 쪼르르 바로 가서 환승 잘하라고, 천안아산역이 아닌 아산역에서 타야 한다고 몇 번을 일러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리 말을 안 했으면 천안아산역에서 내려 그 자리에서 또 다른 기차를 탈 뻔했다. 표를 보더니 아들도 호림이도 아!! 하며 알아차린다.
나도 다시 학교로 출발했다. 안도의 숨을 내쉰다. 곧 기차를 탔다는 말을 듣려 온다.
" 일주일 잘 보내고, 형 오면 엄마한테도 알려줘! 감기 조심하고 다음 주에 보자꾸나!"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7시 반, 다시 집에 가면 9시 정도 될 터였다. 급할 거 없다. 천천히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학교에 오려던 아이가 거꾸로 올라간 일처럼 때때로 인생은 예상치 못한 일들로 힘겨운 순간이 많았다. 그것이 삶이었다. 혼자 중얼거린다.
"그래. 맞아. 좀 느리게 가면 어때, 잘못 가면 어때, 다시 내 속도로, 다시 길을 찾으면 되는 거지..."
한참 힘이 빠져 있던 한 해이다. 나 역시 내가 가고자 한 곳이 맞는지,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지 의심하던 시간으로 꽉 차 있었기에 마음이 묶여 있었다.
크고 작은 일이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두려운 마음이 앞서면 모든 게 막막해졌다. 1년간 준비했던 초고가 무산되고 다시 글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약해져 있었다.
기차를 타고 내려오고 있는 아이를 생각하면서
"다시 바로잡으면 되지, 뭐가 문제야." 하는 베짱이 생기고 있다.
" 엄마, 형아 왔어요!"
기차표 값이 얼마인지 물어보길래 , 나중에 커서 어른 되면 갚아~ 하니 둘이서 한바탕 웃는다.
며칠이 지난 후 아이는 내게 이런 말을 한다.
" 엄마~ 호림이 형아가 나한테 먹을 걸 갖다 주고 자꾸 뭘 챙겨 줘. 어떡해? ㅋㅋ"
아이의 행복한 일상이 내게도 전해진다.
그래. 그럴 수 있어. 그 마음으로 지금을 살자. 어찌 자로 잰 듯 모든 일이 딱 딱 진행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