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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Aug 16. 2021

달을 주제로 한 시들

어느 날 달이 말했다. 이제 기다리지 말라고.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달을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달은 단적으로 봤을 때 문학적 시어에 가장 부합하는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일 오래된 자연물로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시상과 사유를 담아왔을테니 말입니다. 이 양상은 달이 텍스트 내에서 다뤄지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죠.

한 가지 개념에 여러 형태가 가지처럼 매달려 있기도 하고, 한 물체에 여러 가지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보름달, 상현달, 하현달, 그믐달 등 개념과 존재의 경계를 넘어 글의 분위기를 폭 넓게 아우를 수 있는 단어가 바로 달입니다.

하지만 이런 단어일수록 글 속에 넣을 때 더욱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익숙한 방식 그대로 썼다간 느낌이 식상해지기 마련이니까요. 문학적인 요소가 많은 시어들은 여태까지 그만큼 이미지가 많이 소비되어 왔습니다. 이번 베스트는 그런 와중에도 인상적인 감명과 색채를 지닌 작품들로 선정해보았습니다.

그럼 함께 보러 가시죠.


1. 원즈위님의 '.'

https://m.fmkorea.com/3808218211

////////////
1

선 채로 누워 당신을 그린다

지난밤 흘리고 간 것들을 주워 담으며......

이 방을 가득 메운 당신은

어슴푸레 밀려온 달빛처럼 짙어 버리고 


여러 달이 뜨고 진다

무던히 생각하면 곧 지나갈 테지만

내내 가지 않는 것도...... 있다  

늘 다른 몸짓으로 흔들리는

달떡처럼 고운 얼굴 


숱한 이들이 모두 당신 같은 표정을 짓고  

나는 다만 꺽꺽 짖으며 빠지고


2

나날이 쌓인 피로에

결국 누워버린 몸에게

친구는 여행을 떠나보라 한다마는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사실은 친구 녀석도 알고 있습니다


좁은 방 한 칸에

차갑게 식은 바닥

아니 뜨거운 적이 없었으니

식은 것도 아닙니다

달빛이 방 안을 적시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으니

결코 바닥은 젖지 않습니다


어렴풋한 암등이

당신의 눈빛보다 아늑합니다

이번 휴가는

참 만족스러워서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쪼록 좋은 꿈을 꾸었으면—

작별의 시간입니다
//////////
시평: 달은 상반되는 속성이 동시에 공존하는 물체입니다. 형태는 일시적이지만 늘 그 자리에 있는 영속성, 언뜻 보면 멈춰 선 것 같지만 사실은 항상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정적 속의 동적'이 돋보이는 단어죠.

그래서 이 시는 지속되는 감정의 흐름과 갑작스럽게 이어지는 작별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는 달이 가지는 '익숙함'의 최대 강점이기도 합니다. 어떤 모습이든 사유의 한켠에 자리잡고 있으니 화자가 무슨 생각을 해도 그에 맞춰 비유의 대상과 뜻을 달리하죠.

글의 제목이 점인 이유도 '......'로 표현되는 화자의 독백 안에 모두 작은 달이 들어있다는 의미로 적힌 것 같았어요.

잘 읽었습니다.



2. 90탄 님의  '달 주위를 공전하는 것'

https://m.fmkorea.com/3813780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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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다


낮엔 떠오르지 않았던 생각들이 깊어지는 걸 보니

어쩌면, 생각에 한해선  

태양보다 저 달의 인력이 강할지도 모른다


저 달을 보며

누군가는 소원을 얘기하고

어떤 이는 그리움을 토해내고

내가 그랬듯

군복 입은 어느 청년은 미래를 걱정하겠지


오늘도

달 주위를 생각들이 공전한다

///////////
시평: 전체적인 구성도 구성이지만, 두 번째 연이 주는 충격이 남다른 글이었습니다. 타성에 젖은 감각으로 '새벽 감성'이라 치부할 수도 있는 생각을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셨을까요. 처음 읽었을 때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생각들의 나열은 보통 어물쩡 넘어가거나 밋밋하게 끝날 때가 많은데, 작성자님은 '어느 청년'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서 시의 주도권을 끝까지 유지하셨습니다.

사회와 어느정도 단절되어 지내는 군인은 자연, 즉 별을 보는 때가 일반인보다 많습니다. 이를테면 주로 보초를 설 때가 그렇겠지요. 생각에 색깔이 있다면 군인의 생각은 달의 주위를 화려한 색으로 감쌀 겁니다.

달의 문학적 쓰임새 중 하나인 '생각의 집합'을 잘 조명한 글이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3. 끝없는갈증님의 '달이 되어야지'

https://m.fmkorea.com/3800463781

///////////
나는 달이 되어야지

수많은 별들보단 조금 나은,
하나뿐인 달이 되어야지

그대 기분 맞춰
뚱뚱 했다 , 홀쭉 했다
재롱을 피우는 달이 돼야지

그러다 해가 그대 눈에 들어올 때
흐릿해질 달이 내겐 적격이지

그대여 걱정일랑 마세요
낮이라고 달이 사라집니까
그저 잊혀질 뿐이지

언감생심 해를 바랄까요
용기없어 속내도 못 비치는,
내겐 달이 딱이랍니다
///////
시평: 탐독할만한 가치 없이 그저 옛날 느낌만 나는 글은 식상한 글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잊고 있었던, 혹은 잊혀져 가는 가치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글은 '클래식'이라 불리며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바로 이 글처럼요. 달을 보고 떠올릴 수 있는 대중적인 감정인 연심.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달의 관계어인 해. 평범한 소재와 시상이 만난 글. 하지만 거기에 실감나는 전개와 수려한 표현이 더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굳이 뜻을 파악하려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뜻이 하나도 없는 서정시니까요. 고전의 가치는 거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이번 주 베스트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주제로 내놓기 편하고 쓰기도 쉬운 소재였지만 결과물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그럴거라 생각지도 않았고요. 어떤 때는 어려운 주제로 심오한 글을 쓰는 것보다 쉬운 주제로 좋은 글을 쓰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 어려운 한 주를 알차게 보냈죠. 개인적으로 정말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도 좋은 베스트로 돌아오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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