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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Sep 19. 2021

이 주의 시들-회광반조

무엇 때문에 그리 환하게 불타오르는거요? 내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소.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이주의 베스트 '회광반조', 시작하겠습니다.

회광반조는 어떤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깐 동안 기력을 되찾는 것을 두고 이르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어원에서 뜻하는 바도 이것과 비슷하고요. 그래서 쓰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비유처럼 느껴지지 않는 '죽은 비유'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마지막이 허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죽음 뒤에 찾아오는 고요함은 영원하고, 살아있을적에 인상깊은 족적을 남겨놓지 않았다면 잊혀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더군다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도 기력이 쇠한 상태로만 있는다면 그 사람은 죽기도 전에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겠지요.

회광반조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쌓아올려서 만든 단어입니다. 이 지구에 자신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작게나마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표현인 것이죠. 자기가 실제로 그럴 수 있는지는 제쳐두고 말입니다. 여러 방면에서 강력한 의지가 엿보이는 주제, 회광반조였습니다.

그럼 이번 주 베스트에 오른 작품들을 같이 한번 살펴볼까요.


1. 범과야차님의 '세상 모든 촛불들을 위하여'

https://m.fmkorea.com/3899228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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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광반조의 비유를 들 때, 항상 촛불로 예시를 드는 이유가 뭔지 아는가?


촛불이 꺼지기 직전, 자신의 온 힘을 다하여 가장 강렬한 빛과 타는 냄새, 그리고 가장 뜨거운 열기가 몸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루의 끝인 노을을 볼때도 그렇고,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을 볼때도 그렇다.


누구에게나 마지막 숨을 뱉어낼 권리가 있는것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누군가는 용서를, 누군가는 후회를 하겠지.


모든 감정엔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이 있으니


순간을 소중히 여기어 내 미래 내 인생의 회광반조의 순간에


모두 불사르고 후회없는 마무리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나아가고,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내가 살았다는 사실도 모르겠지만,


나와 함께했던 친구, 내 평생의 사랑, 나의 자식들을 위해.


삶의 끝에서 만나는 주마등의 순간에 점점 나를 빛낼수 있게.


그 빛으로 날 비추어 내 삶의 거짓됨은 없었는지, 확인 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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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불꽃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하게 만들지만, 사실 그 불꽃을 제일 기쁘게 여기는 사람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다가오는 죽음을 거역하지 못하는 사람이 미리 마음을 정리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축복이 있을까요. 죽음을 막진 못하되 형태와 길은 내가 정한다. 어쩌면 영생보다 더 숭고하고 어려울 겁니다.

잘 읽었습니다.


2. 시써보려는인간님의 '회광반조'

https://m.fmkorea.com/390869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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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는 지하철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  

책꽂이의 책이 되어


온통 사람 투성인데

왜 아무도 없는지


어두운 터널 지나 한강

해 지기 전 왜이리 밝은지


눈 부신 이별

그걸로나마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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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비참한 내일보다 찬란한 오늘에 맞는 죽음이 좋은 구석은 더 많은지도 모르겠네요.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아마 내일도 똑같은 지하철과 똑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출근길 퇴근길을 함께해야 하는 화자. 그런 화자에게 지기 직전에 더 밝은 빛을 내는 태양빛은 평소보다 아름다워 보였겠죠.

잘 읽었습니다.


3. 량이해님의 '깜빡임'

https://m.fmkorea.com/3907729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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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써가는 배터리는 모두 천천히 죽어가더라


깜빡거리는 전등은 항상 전보다 희미하더라


모닥불은 늘 흰색 재만 남기고 흐트러지더라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


천천히


사라질거야


결국엔


사라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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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회광반조라는 표현에 직설적인 물음표를 던지고 있는 글이네요. 사람의 희망이 듬뿍 들어간 동화적 소원.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끝에 선택한 현실도피적인 망상. 화자는 회광반조를 하나도 믿지 못합니다.

말투로 미뤄보아 경험으로 인해 생긴 가치관이겠죠. 회광반조를 이제껏 믿어왔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국엔 목숨의 등불이 서서히 꺼져간다. 그러니까 그런 허황된 바람은 품어봤자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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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비교적 어려운 주제였던만큼 베스트를 쓸 때도 썼다 지웠다를 자주 했습니다. 사자성어 주제...앞으로는 자제해야겠어요.

온 국민이 함께하는 명절 추석연휴의 둘째 날 밤입니다. 모두 건강과 즐거움 둘다 챙기는 연휴가 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도 좋은 작품들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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