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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Sep 26. 2021

이 주의 시들-안개

안개가 잔뜩 낀 어느 날, 나는 구름을 감싸안았다.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한주를 마무리하는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이번 주제는 안개였습니다. 여러분은 안개라는 단어를 보면 무슨 느낌을 받으십니까? 습함? 음침함? 불안함? 답답함? 정답이 없는 질문이니 편하게 생각해주세요.

저는 안개가 불확실한 무언가를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에 낀 구름과 달리, 안개는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에도 쉽게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실생활에서 안개를 가까운 곳에서 비교적 자주 마주치죠. 시야를 가리는 습기, 묘하게 찝찝한 호흡 등 감각적으로 안개의 방해를 받으면서요.

그 방해 때문에 안개의 속성이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안개가 사람의 시야를 가린다는 사실이죠. 눈에 비치는 풍경을 불확실하게 만드니까요. 러브 크래프트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말한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 '미지의 공포'를 알게 모르게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안개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을 묘사하거나 암시할 때 쓰입니다. 슬픔과 처량함을 겸비한 비랑은 또 다른 매력이 있죠. 자칫해서 감정이 과잉되기 쉬운 글이나 정서가 건조해질 필요가 있는 텍스트에선 안개같이 색이 옅은 단어가 힘을 십분 발휘합니다. 여러 분위기를 쉽게 오가며 줄타기가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이번 주는 안개가 주는 심적인 파동이 깊은 글, 아니면 안개의 주된 정서를 벗어나 새로운 분위기에서 줄타기를 벌이는 글을 베스트로 뽑았습니다.

그럼 같이 보러 가시죠.



1. 체리맛콜라님의 '안개'

https://m.fmkorea.com/390987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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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길을 걷다가

헤쳐나온 모퉁이에 서서

아직 아무것도 이룸이 없음에

한탄하는 젊은이

의 젖은 두 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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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미래에 관한 불확실성, 거기에서 오는 불안함을 안개로 형상화한 글이네요.

전진이냐 포기냐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는 화자. 사실 이 화자가 처한 상황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겨우 5줄의 글로 설명할 수 있는 명료한 이야기죠.

어쩌면 시의 젊은이는 그것을 제일 슬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고민이 사실은 별것도 아닌 일인 건 아닐까. 뺨이 젖은 이유는 안개 때문이 아니라 눈물이 흘렀기 때문은 아닐까.


잘 읽었습니다.


2. 여왕님의 '뿌연날'

https://m.fmkorea.com/391752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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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꾹 참고있는 잠겨있는 나의 모든 마음들이  

어떻게든 닿기만 바랬다

또박또박 한마디 한마디 나에게 뱉으며 말하는 목소리 ,

잠겨있던 내 모든 물먹은 실뭉텅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뿌옇게 가려지던 시야는 어느새 안개가 지듯 또렷해지고

내모든 잠겨있던 마음들은 수도꼭지라도 달아준거마냥

쏟아 내려갔다

나또한  이미 내려놨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두려웠던 것을.

그저 안보려 했던것을.

안개가 걷히고 고개를 드니  

마음은 오히려 따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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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앞길에 무엇이 있는지 두려워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던 화자가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앞으로 나아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이 일련의 상황을 안개가 껴서 뿌연 하루에 빗댄 글입니다.

모든 시련은, 또 시련에 비유되는 모든 상황은 언젠가 끝이 있습니다. 비바람도 폭풍도 폭설도 다 그치는 때가 오죠. 영원히 펼쳐져 있을 장막 같은 안개도 저것들과 비슷합니다. 뿌연 날이 가고 날씨가 맑은 내일이 오면 자연히 눈 앞을 가리던 것들이 모습을 감추죠.

그리고 두려운 대상의 실체가 대개 그러하듯, 화자가 마주한 근심도 그렇게 무섭지 않았습니다. 어제까지 바랐던 갈망은 다시 태어나 티없이 깨끗한 희망이 되었죠.

잘 읽었습니다.


3. Richking님의 '안개의 추억'

https://m.fmkorea.com/392587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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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놀다보면 노을이 지기 전에 오는 안개가 있었다

작은 오도바이에서 내뿜는 흰것은 무리들을 모두 숨겨주었다

그 땐 흰 것 안에서 걱정이 없었다


일찍이 날 부르는 소리에 일어나 걷다보면 나를 감싸는 안개가 있었다

높은 언덕에 있던 흰것은 나와 선임을 감쌌고 피곤함도 감싸주었다

그 땐 잠시지만 마음이 편했다


지금 나를 맞이하는건 뜨겁게 몰아부치는 일과 끝나고 나면 차가움이 느껴지는 달빛 뿐

조금 더 일찍이어야 하는지 아님  늦게까지 기다린다면 날 편안함으로 이끄는 그것을 볼 수 있을까


가끔은 그 때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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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사람이 길에 낀 안개를 꺼리는 이유는 앞에 있을지도 모를 존재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서운 까닭은 자신이 앞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죠.

바꿔 말하면, 앞으로 가기 싫은 사람에겐 안개가 무척이나 편한 현상으로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잠깐만이라도 안개에 휩싸여 쫓고 쫓기는 하루에서 벗어나고픈 마음. 어릴적 추억의 한 페이지에 자리한 오토바이 매연과도 닮은 그것. 그렇게 화자는 육체의 노곤함을 잠시 잊고 정신적 풍요로움의 바다에 풍덩 빠져 헤엄을 칩니다.

여러 가지 사유가 각각 그에 맞는 단어에 들어간 구성이 보기 좋은 글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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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베스트도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모두들 재밌게 읽으셨나요? 단어 자체가 공감각적으로 몰입하기 쉬운 주제였다보니 정서가 풍부한 작품들이 많이 나온 한 주가 된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들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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