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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Sep 12. 2021

이 주의 시들-피아노

예술의 횡단보도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피아노를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이번 주제는 피아노였죠. 피아노는 우리에게 제일 친숙한 악기 중 하나입니다. 건반악기의 대표격을 넘어 '나 교양 좀 있다'는 어필의 최소 척도로써 피아노에 입문하기도 하죠. 제가 어릴 적엔 부모님들이 요즘 젊은이면 악기 하나 정도는 조예가 있어야 한다면서 무턱대고 애들을 피아노 학원에 보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예술적인 측면에서 다소 친숙하지만 그렇다고 쉽지는 않은 악기. 저는 이 애매한 경계가 피아노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시작부터 어려워 보이는 분야는 그 분야에서 잘하는 사람을 봐도 뭐가 어떻게 대단한지 잘 모르지만, 피아노는 다릅니다. 나는 저렇게 못 치는데...진짜 잘하네, 이런 식으로 디테일하게 악기의 심오함에 빠져들 수 있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친숙함의 영역에 들어온 악기는 사람의 기호를 침범하고, 더 나아가서는 중요한 심상이 부여되는 사물의 자리를 꿰찹니다. 비유로써, 투영의 대상으로써, 추억의 매개로써 글에 음을 깃들게 하지요. 음악과 글이 만나 이뤄낸 케미스트리라 칭해도 무방합니다.

이번 주는 이러한 조화가 잘 일어난 글을 베스트로 뽑았습니다. 가슴에 스며드는 검고 흰 건반이 읽기만 해도 느껴지는 작품들이죠.


1.DDOL3님의 '쉼표'

https://m.fmkorea.com/3892029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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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춘 것은 내 음계 사이로  

네가 떠올랐을 때다


그 해 나란히 앉은 자리에서

네가 그려놓은 동그란 머리에

내가 줄기 그려 넣던 새벽녘은

다시 오지 않지만


다 그려지지 못한 악보에

오늘 나는,  

쉼표 하나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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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왜 그리도 짧은지. 지나고 나서 보면 찰나에 가까운 순간이지만, 기억 속에서 계속 곱씹고 되뇌이며 추억한다면 그 순간은 영원에 한 발자국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상징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화자가 오늘 그려넣은 쉼표같이. 완성하지 못한 악보한테 말하는 겁니다. 결코 끝이 아니라고, 그러니 지금은 여기서 쉬게 해달라고, 그런 증거로써요.

잘 읽었습니다.


2. 이재익벨기에이적님의 '피아노'

https://m.fmkorea.com/3890387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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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늦은 날에는

완주 두 번에 색칠 한 개

 
내가 늦은 날에는

완주 한 번에 색칠 두 개


네가 없는 날에는

완주 없이도 색칠 열 개


미 취학인 우리 둘에게

파 스텔 사랑은 불완전 하기에

시 도 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이리도 허무하게 끝날 것을 알았다면

다 카포처럼 고백이라도 할 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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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학원에서 피어나는 사랑...학창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신비한 경험이죠. 피아노 학원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꼼수와 사랑을 잘 녹여낸 글이네요. 그럴 때 저는 빨리 가고싶은 마음밖에 없었는데.
어린 아이들의 사랑은 애틋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하죠. 나아갈 방법을 모르고, 또 방향을 모르기에. 물론 순박하고 산뜻한 파스텔 톤의 연애는 저런 불완전함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요.

앞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는 끝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끝은 언제나 허무하리만치 빠르게 찾아오죠.

줄임표를 마구 늘어놓아 뜸을 들여도 좋으니 고백이라도 한번 해볼걸, 이라 하지않고 굳이 다카포라 표현한 것은 화자가 저 애틋한 사랑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싶은 거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3. 아떽띠해님의 'ㅍㅣㅇㅏㄴㅗ'

https://m.fmkorea.com/3875497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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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아노를 배워둘 걸 그랬다.


이 런 감정, 이런 마음


아 무래도 말로 하긴 너무 쑥쓰러우니 말이야.


아 름다움이란 단어를 이제서야 이해 했으니


노 랫말로, 멜로디로


오 직 너만을 위한 찬가를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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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말의 대변자격 역할을 수행할 때, 음악은 참으로 매력적인 선택지 같습니다. 과묵하고 애정표현이 서투른 이도 얼마든지 음으로 사랑을 치장할 수 있으니까요.

배워둔 악기는 없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요. 사랑을 전하기만 하면 됐지. 고백의 말을 노래에 담고 멜로디의 힘을 빌려 사랑을 포장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음악은 아름다움의 일부고, 사랑은 그마저도 끌어안는 포용력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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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취미삼아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 몇년하다 그만둔 뒤로 처음이라 그런지 많이 헤매게 되네요... 그래도 실수 없이 완주하면 꽤 기쁘고 보람이 있어서 좋습니다. 앞으로 음악이 제 삶을 차지하는 비율이 차츰 높아졌으면 합니다.

이주의 베스트는 다음 주에도 읽을 맛이 나는 작품들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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