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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Sep 05. 2021

이 주의 시들- 날개

아득히 멀어져가는 그대, 남은 자리엔 티없이 맑은 깃털만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이주의 베스트 '날개' 시간이네요.

날개라는 단어를 보면 여러분들은 뭐가 떠오르시나요? 자유? 상승? 꿈? 도전? 한가지만 떠오르진 않을 겁니다. 광범위한 의미변화를 지닌 '하늘'과 연관이 많이 되어 있는 단어거든요. 좋든 나쁘든 현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의 발로. 진취적인 발상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시어입니다.

한편으로 날개는 막대한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날개가 언제 부러질지 모른다는 불길함, 날던 도중 무언가에 부딪혀 순식간에 추락할 수도 있다는 노파심. 원하는 곳에 착지해서 자신의 의지로 날개를 접기 전까지, 비행하는 이는 늘 불안감을 안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번 주제는 날개가 주는 가슴 벅찬 희망이 글 전체의 분위기를 감싸는 듯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어둡고 우울한 기색이 느껴졌습니다. 구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아주 은근히요. 심층의식같은 거창한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정말 그런게 반영된 것만 같았습니다.

이번 주 베스트는 그런 이면의 감정이 드문드문 엿보이는 글을 뽑아 보았습니다. 그럼 같이 보러 가실까요.

1. 완듀콩님의 '계단 속 날개'

https://m.fmkorea.com/3868468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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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도시 외곽을 돌아다니면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집들이 있다

사람 사는 집이라는 공통점 빼곤

도시 아이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마을


도시 사람들은 외곽 마을을 품고자

마을 벽에 그림을 그리고 함께했다

방문객이 늘고 시끌벅적한 마을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금가고 변색된 벽화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줄어만 갔다


그래도 나는 이 마을이 좋다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크게 그려진 주인 없는 날개를 보고 있자면

산 정상에서 뛰어내려 비상(飛翔)하는 나를 상상하게 된다


날개의 주인인 마냥 사진 하나 찍고

자리로 돌아와 찍은 사진 출력하고

비행기 하나 접어 창문 밖으로 날린다


이제 나도 하늘을 날았으니

날개의 주인으로 기억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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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보내는 동정의 표시는 때때로 낙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중충하고 낙후된 동네 분위기를 밝게 꾸며보자는 취지는 좋았으나...어떤 동네든 다 그렇게 그려놓으니 맨날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일종의 기호가 되고 말았죠. 아, 우리가 그렇게 보이나.

하지만 그런 와중에 벽화를 보고 희망을 품는 화자같은 이들도 있습니다. 상상의 나래에만 있었던 날개가 진짜같이 그려진 벽에, 그리고 마을에 감사하면서요. 어느 누구도 주지 못한 비상을 날개는 주었습니다. 비록 그림으로 된 가짜일지라도.

잘 읽었습니다.


2. 범과야차님의 '이카루스'

https://m.fmkorea.com/3855710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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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 날았다.


그 아래에서 쳐다본 광활한 대지는

벅차오르는 멎은 숨이 되어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아찔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음에.


그리하여 우린 서투른 날개짓으로

자꾸만, 조금만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멎은 숨은 점점 더 죄어오르고

광활한 대지와 다른 드높은 창공은

감각의 카타르시즘을 야기시키니

우린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음을 추구했다.


그리고 추락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멎은 숨, 졸도의 순간

추락하는 날개가 되어서도

우린 더 높은 곳의 만족감으로

서로를 향해 웃고 있었다.


드높은 창공에서 광활한 대지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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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착륙과 목적지가 없는 비행의 끝은 언제나 추락입니다. 땅에 떨어지면 모든 걸 잃지만, 그보다 더 값진 것이 하늘에 있다고 믿는 사람은 결코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않겠지요.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꿈은 과거 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욕망일 것입니다. 꿈의 동기는 각기 다를지라도 말입니다. 이 시의 화자는 높은 경지에서 바라보는 대지에 예술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또 그에 쾌감을 느낍니다.

물론 아무리 그의 믿음이 굳건하다 해도 추락의 순간에 두려움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겁니다. 단지 그것이 꿈을 향한 갈망보다 적을 뿐이죠. 누군가는 그가 맞이할 추락을 예견하고 혀를 찰지도 모릅니다. 멍청하다면서 대놓고 쪽을 줄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뭐 어떡하겠습니까. 꿈이란 원래 이해를 바라고 품는 개념이 아닌 것을. 작품의 제목도 아마 저와 비슷한 생각에서 지어진 게 아닐까요.

잘 읽었습니다.


3. 이켈님의 '익몽(翼夢)'

https://m.fmkorea.com/3861997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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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비상하지 못한 자


저 먼 태양에

손을 뻗는 것이 잘못된 걸까

나는 그저 더 높이 날고 싶고

원하는 것에 더 닿고 싶을 뿐인데


결국 그 끝에 남는 것이

추락뿐이라 하더라도

은빛의 밀랍 날개는  

하늘을 향해 높게 뻗어 나갈 테니


내 야망 녹아 없어져도

피 끓는 이 마음 멈출 순 없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어리석다 해도

이 뜻을 관철할 것이니


하늘로 날아간 외로운 새 하나

바다 밑으로 떨어진 그리운 별 하나

애써 눈감는 곳의 하늘은

저 붉은 석양과 가까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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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실패는 꿈을 향한 길을 꺾을 순 있어도 꿈 그 자체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오로지 현실에서만 존재하고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정말로 꿈을 진지하게 마주하려는 사람은 실패조차도 '꿈이 있긴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길을 가로막는 바위에 부딪혀 깨지고 의지가 파편이 되어도, 떨어져 나간 그 파편들로 하여금 마음을 다잡죠. 이 글은 전체가 꿈의 실현을 향한 기나긴 의지의 표명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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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베스트는 어떻게 잘 읽으셨나요? 글에 진심을 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주제가 있었을까요. 숭고하면서도 간절한 감정이 절절하게 흘러나오는 한 주였습니다.

다음 주에도 울림이 있는 글들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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