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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Aug 29. 2021

염세를 주제로 한 시들

기대가 안된다. 희망도 없다. 나도 세상도.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염세를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염세, 염세주의는 만사에 대한 기대치를 낮게 보는 가치관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현상이 지금 이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고, 능동적으로 행동할수록 좋은 부분이 우하향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죠.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단어지만, 세상을 다각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창작자에게는 여러모로 배울 점이 있기도 한 자세입니다. 마냥 희망을 설파하는 낙관주의보단 비관과 맞닿아 있는 염세가 더 객관적이니까요. 물론 이것도 계속 발을 들이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기 마련이지만...

저는 염세가 문학적으로 '세상의 끝자락에서 보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다 덜어낸 시선으로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들어오는 일말의 내일. 이번 주의 베스트는 그 내일의 편린이 느껴지는 작품을 위주로 선정했습니다.

그럼 함께 보러 가실까요.


1. 박지성님의 '자작곡-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https://m.fmkorea.com/3848609182
(노래입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 한번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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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e 1]

오늘을 견디면 괜찮아질까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될까

날카로웠던 감정이 점점 무뎌져 가는 것이 나를 더욱 무섭게하네


사실은 꿈을 꿀때도 많았지

열정을 따라가진 못했지만

언젠가는 거울앞에 선 내 모습을 바라보며 만족하기 위해 살았지


부모님의 기대도, 남들과의 비교도 이제 그만 그만 그만

날 위해 하는 잔소리도, 한심 해하는 표정도 이제 그만 그만 그만

[Chorus]

왜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Verse 2]

그래 난 아무것도 아냐 내 존재의 이유가 희망이 아닌걸 알아

난 원래 이랬어 항상 나약했어 도망치고싶었어 상처받기 싫었어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질 때 걷잡을 수 없이 내가싫은데
왜 아직도 내 안에선 어둠이 사라질 거란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지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왜 난

누구보다 힘들게 사는건지

이건 날 위한 고백이야, 살기위해 날 위한 다짐이야  

지극히 아무것도 아닌 내가 편하게 좀 살면 되는데

[Chorus]

그래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Bridge]

너의 달콤한 말이 장미가 되어 나를 찔러도

날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사람 단 한명도 없어도

남들보다 잘나지 못해서 죄책감에 빠져도

모두 날 바보처럼 생각하고 못되게 굴지라도


[Chorus]

그래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왜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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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사람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저주는 어쩌면 '포기의 불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한없이 낮아진 화자이지만, 그런 그도 끝내 모든 걸 다 놓아버리진 못했지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이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을 겁니다. 희망을 버리고 존재의 이유 중 하나인 행복을 부정하고, 많은 걸 내려놓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의문이 피어오릅니다. 왜 나는 아무것도 아니냐는 물음. 누군가가 답을 내어줄 수도 없는 질문.

아까 전에 말한 일말의 가능성이 아무래도 이 글에선 화자 자신의 존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 히끌님의 '염세'

https://m.fmkorea.com/3845083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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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과도 같은 이 권태감이


세상을 보는 시선을 뒤집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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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일수록 추락도 빠른 법이죠. 아마도 그건 심리적인 높낮이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처음부터 기대치가 낮은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후천적인 일로 인해 생각이 바뀌는 사람이 더 많겠지요. 그리고 그 원인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습니다.

짧고 굵은 이행시, 잘 읽었습니다.


3. DDOL3님의 '여름밤 누런 달은 구름에 가려'

https://m.fmkorea.com/3840389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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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 부질없다고

베란다에 앉아서 혼자 중얼거린다


아직 자정도 안 지났는데

좀 전까지 나랑 이야기하던 누런 반달은 어디로 갔을까


거기 구름 뒤에 있으면

끄집어내 묻고 싶다

가을이 언제 오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니다,

너라도 구름 덮고 푹자렴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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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염세적인 사람은 미련이나 집착이 거의 없습니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으니 저것들이 생길리 만무하죠.  그렇다고 저 사람들이 아예 그런 감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단지 이어지는 과정이 옅어서 눈에 잘 안띌 뿐.

이 시의 화자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약간의 여유까지 겸비하고 있습니다. 화자같은 사람에겐 말동무의 존재가 다른 이들에 비해 더 소중할텐데도 말이죠. 숨은 달을 끄집어내서 이기적으로 의문을 해소하기보단 달이라도 편안한 안식을 누리는 쪽을 택했습니다.

화자한테 '가능성'을 상징하는 존재는 달이겠지요. 존재 그 자체든 단순한 대표격 매개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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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를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어떠셨나요. 생각보다 그렇게 어둡지 않은 한 주였습니다. 시상의 반전을 중요시 여기는 분들이 많은 건지 그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다음 주에도 양과 질 모두 잡은 베스트 시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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