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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May 29. 2022

이 주의 시들-마스크

가려주세요. 보기 싫은 부분은 다.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마스크를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마스크, 요 몇년 사이에 너무 친숙해진 물건이죠. 실외 마스크가 해제돼도 아직까지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 이제 집 밖으로 나왔을 때 숨이 이상하게 상쾌하면 찝찝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고요.


어쨌든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질병 때문에 마스크는 일상적으로 흔하게 쓰는 '가면'이 되었습니다. 얼굴을 다 가리는 물건은 아니지만, 입가가 안보이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숨기기가 더 용이해졌죠.


실룩대는 입꼬리가 남한테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마음이 담긴 숨결을 뱉어도 상대에게 닿기는 커녕 자기가 다시 들이마셔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봐도 덜컥 의심부터 듭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더 효과 있고 확실하게 사람들 간의 거리를 멀어지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마스크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 베스트는 이러한 심리가 투영한 글들을 뽑았습니다. 모쪼록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설탕탕님의 '회고'


https://m.fmkorea.com/4632180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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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남짓한 시간동안

이 하얀 천 뒤에서 편하게 살아왔나보다


모난 곳을 가려주고

이쁘장한 곳만 보여주던 것이

내 삶마저 그리 바꿔놓았다


이제는 내 치부라 생각한 부분도 드러내야 하는 시간


이것은 나를 살리는 숨구멍이었나

아니면 서서히 죽이는 도모지(塗貌紙)였나


////////////

시평: 외모 때문에 받는 마음의 상처는 여러모로 아프고 깊죠. 사실 저도 이것 때문에 계속 마스크를 쓰고 다닙니다. 뭐...사실 하관만의 문제는 아니긴 한데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시킵니다.


그치만 가까운 시일 내에 내던져야 하겠죠. 턱 모양이 컴플렉스인 사람이든 입가에 점이 큼지막하게 난 사람이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모난 곳을 밖에서 드러내는 순간이 올 겁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다른 이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마음은 그렇지 않은 건지.


잘 읽었습니다.



2. 에뗌의신2님의 '마스크'


https://m.fmkorea.com/464189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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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명이여, 그를 안전하게.

나의 고됨이 그에게 닿지 않도록.

그리고 그의 가시만을 빼낼 수 있도록.


나의 얼이여, 나를 막아서고.

나의 은빛 붓을 도와주고.

그 구덩이에 빠진 양을 도울 수 있다면.


나의 숨이여, 그의 숨을 되돌려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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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사물을 의인화 시켰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의의는 물건으로써의 기능이 인격체의 희생과 헌신으로 치환된다는 것입니다.


제목을 안 보고 이 시를 읽는다고 가정해보죠. 이 얼마나 숭고하고 자애롭습니까. 뒤늦게 제목을 읽으면 김이 빠지기에 앞서 소모적으로 쓰고 버리는 마스크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 정도입니다.


고마워, 따봉마스크야. 속으로나마 우스운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3. 원즈위님의 '그 모든 일들을 겪고도 평화, 중얼거렸다'


https://m.fmkorea.com/463460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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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네가 깊고 깊은 설원으로 떠나버린 것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아도

여름의 얼굴이 하얗게 칠해지고 만다는 것


영원의 마스크를 끝내 벗지 못 하고

긴긴 낮과 밤을 견뎌야 한다는 것


믿지 않는다


그만 다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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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실체적이고 세속적인 성격을 띠는 이번 주 작품들 중에서 몇 안되는 추상적 이미지의 글입니다. 추위를 연상시키는 개념인 '설원'의 하얀 이미지를 마스크에 대입한 것이 특징이네요.


무더운 여름이 사라지고 나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계절은 아마도 겨울일 겁니다. 봄과 가을이 사이좋게 시간을 나눠먹는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네요. 그러니 남는 계절은 겨울밖에 없죠.


여기서 말하는 설원은 어두운 미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미래는 화자가 속든 안 속든 이미 확정이 난 상태입니다.


온통 하얗게 칠해진 세상. 영원의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나. 그러나 그 일은 아직 현재가 아니라서, 화자는 평화를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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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마스크라는 친숙하고 일상적인 주제가 나와서 평소와는 다른 양상의 작품이 꽤 보였었는데요. 역시 사물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표현하기가 편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마스크가 다시 생소하고 마이너한 패션 아이템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좋은 계기로 친해진 사이가 아니잖아요. 우리랑 마스크는. 선을 그을 곳은 그어야죠.


그럼 저는 다음 주에도 좋은 작품들과 함께 이 시간에 찾아오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밤 되시고요. 바라는 일 다 이루는 한 주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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