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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Oct 19. 2020

'형제'를 주제로 한 시들

시평, 시 모음

안녕하십니까, FCB9입니다.

여러분들은 형제자매가 있으신가요? 저는 6살 차이나는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요새 사춘기라 영 귀엽지 않은 놈인데 그래도 가끔씩은 '아 이게 형제구나'싶은 생각이 들게 해주는 앱니다.

이번주 주제 '형제'는 직관적으로 가족애를 불러일으키는 시어였습니다. 처음부터 일정부분 방향성을 정하고 시작한 단어였죠. 그래서 나온 시들도 우리 모두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진 않는 글이었습니다. 제가 예전부터 자주 뻔한 글은 싫다고 했었는데 왜 이번주는 그렇게 했을까요? 단순한 변덕 때문에?

왜냐하면 이런 단어는 변주를 주거나 표현방식을 달리해도 결국 비슷한 감상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그저 시어의 특성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형제, 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애틋함, 우애, 소중함, 가족같이 입으로 말하면 낯 부끄러운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의 영역에 들어있는 개념이니 이는 어찌 바꿀 수 없는 부분인거죠. 그리고 이런 시어는 직접적으로 나타내야 맛이 삽니다. 외형적인 미는 다소 부족할지라도요.

그럼 이번주 베스트를 같이 살펴볼까요?


1. 리버풀에코님의 '인연의 휘발성'

https://m.fmkorea.com/3139840471

//////////

술잔을 기울이며

영원한 형동생으로

살아가자던 그 말들은

술이 깨어나면서

같이 사라졌나보다


마치 삼국지의 한 장면처럼

장소는 다르지만

각각 이름은 다르지만

끝없는 인연을 맺자던 말들은

이야기가 끝나가면서 사라졌나보다


형제가 없어 홀로자란 나는

그 순간 술잔에 진심을 담았으나

같이 부딪힌 다른 잔들에는

무엇도 담기지 않았나보다


언제부터 인연이라는 것이

형제라는 것이

공기중으로 이리도 빨리

휘발되었는가


오늘 나는 떠다니는

기억과 감정들을

내 술잔에 담아

홀로 술잔을 기울인다

///////

시평: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우애와 형제애를 바랬던 화자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시네요. 서로가 느끼는 친분의 차이를 발견했을 때만큼 마음에 상처가 되는 것이 없지요.

의리와 우정을 안주 삼아 부딪혔던 술잔을 이제는 혼자 기억을 보듬으면서 기울이네요. 무겁고 의미 깊은 말을 입에 담는 건 쉽지만 그걸 지키는 건 훨씬 무거운 책임을 요합니다. 적어도 말로만 얘기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건 확실해요.

잘 읽었습니다.



2. 아떽띠해님의 '형제'

https://m.fmkorea.com/3128995756

//////////

형제여 묻고 싶은게 있소.


피차 마찬가지로 서로 바라기 전에 존재했고

거부하기엔 이미 함께인 우리 사이에

무슨 앙금이 그리도 많이 끼였는지 궁금하다오.


사람은 다 달라도 가족이니 같으리라고 생각한적 없었고

윗물이 맑으니 아랫물도 맑아야한다 주장한적 없건만

무엇이 그대를 그리 옭아매어 상하게 하였는지 말해주시오.


감히 기대할 수 없어 내려 놓은 우리의 모습을

화목이라 부르는 이들이 많아

감정 보다 푸석한 마른 웃음만 남은듯 하오.


어느 순간에는 잘잘못을 가릴 수 있었겠으나

지금 여기서는 가당치도 않은 흑백사진 같다하여

찢기지 않는 끈을 반쯤 잡은듯, 반쯤 놓은듯 사는게 맞나 싶소.


'피를 나눈 형제'라는 말 뒤에 뻔뻔히 숨어

다른 것은 나누지 않은 우리로 인해

가엽게 여위어 가는 부모님의 낯을 어찌 했으면 좋겠소.

///////

시평: 겉보기에는 다툼도 없고 별 허물이 없어보이는 형제는 사이가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바꿔 말하면 한번도 서로의 의견을 끝까지 고집해본 적이 없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서로 선을 긋고 살았다는 거니까요.

그래도 눈에 보이는 흠집은 없어 그대로 살았던 화자는 작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문제를 파악합니다. 그러나 이젠 너무 늦어버렸죠. 부디 동생이 답해주길 바래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금 타지에 있는 저도 자주 동생한테 안부문자를 넣어야겠어요. 괜스레 마음이 찔리는 시였습니다.


3. 메넬라오스님의 '형제같던 너'

https://m.fmkorea.com/3138326190

//////////

나에게는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었으나 따로 형이나 아우는 없었다.

그래서 나랑 취미가 같았지만 눈치가 없고 고집만 쎈 너는 맞추기 힘든 동생같았다.

그렇지만 너만의 장점이 있고 둥글둥글한면도 있던 그런 너가 친구이자 동생같아서 좋았다.

나도 완벽한 한명의 인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보다 나은점도 있었고 낮은점도 있어서 

우리는 서로 어울릴수 있었던것 같다. 그렇게 10년을 같이 지낸만큼 너와 내가 군대를 갔다와서도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었다. 나는 군대에 가서 많은것을 배웠고 많은것이 달라졌다. 너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에게 군대는 많이 힘들었던것 같다. 너가 가지고 있던 동그라미는 좀 더 각이졌고 날카로워졌다고 느껴졌다.

너가 가지고 있던 고집쎈 망치는 두께가 좀더 두꺼워지고 무거워진것 같았다. 10대와 20대초반의 너가 비슷하면서도

거리감이 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너는 단점은 두꺼워지고 장점은 빛을 바랬다. 

20대와 10대때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너만의 울타리로 자신을 가두어버린 너는 그렇게 결국 나와 멀어지고 나는

너를 손절했다.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친했던 친구이자 가족같고 반쪽같았던 때로는 아우이자 때로는 동갑내기 형제같던

너를 그렇게 나는 너를 잃어버렸다.

////////

시평: 외형미는 부족하지만 텍스트에서 진솔함이 묻어나오는 글은 여타 글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습니다. 멋짐을 내려놓고 오로지 자기 감정에 솔직한 마음 일색으로 글을 써내려 갔으니까요.

보통 형제가 없는 사람들은 살면서 형제같은 이가 생기길 바랍니다. 자기가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던, 날 때부터 있었던 그 결핍을 채우고 싶어하는거죠. 저 역시 주변 외동 친구들이 형이나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형제같이 가까운 사람은 분명 다른 친구보다 친밀합니다. 그러니 형제라는 칭호가 붙었겠죠. 그러나 '같은'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소한 차이, 소소한 원인으로도 형제같던 사람은 눈 앞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게 피가 아닌 사람과의 연이자 인간관계입니다. 참 웃기죠. 한쪽만 등을 돌려도 멀어지는 이 관계가.

잘 읽었습니다.

/////////

이번주 베스트는 어떠셨습니까?

형제가 없으신 분들은 조금 소외감이 들수도 있었던 한주였습니다. 그래도 나름 소소한 수확은 분명히 있었으니 그리 아쉽진 않았네요.

그럼 다음주 베스트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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