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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Oct 25. 2020

'바위'를 주제로 한 시들

굳건한 바위

안녕하십니까, FCB9입니다. 바위를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 되었네요.

바위는 나무와 더불어 '영원성'을 상징하는 자연물 중 하나입니다. 나무와 달리 이쪽은 진짜 영원토록 존재하기 때문에 훨씬 그 뜻이 진하지요. 돌멩이나 모래로 부서지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굳건함, 단단함, 무거움, 고요함, 모두 바위를 연상케하는 개념들이지요.

전에도 몇번 말했지만 자연물을 시어로 다룰땐 자연물에 어떤 의미를 담는지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이번 주제 바위 역시 저 위의 개념을 무슨 형식의 글로 풀어내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저는 바위,하면 석탑이 생각납니다. 여러 사람들이 오랫동안 공을 들여 쌓은 건물이, 다른 것들보다 더 없이 인간적으로 느껴지면서 정이 가거든요.

그럼 베스트에 오른 글들을 같이 살펴봅시다.


1. 유리병한잔님의 '가위바위보'

https://m.fmkorea.com/3146418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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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위다.

가위는 나를 자르지 못한다고 하지만,

오늘따라 가위의 날카로운 날이 무섭다.

나는 바위다.

언제나 이기는 것이 좋다고 배웠지만,

오늘은 보자기의 품 안에 숨고 싶다.

//////

시평: 바위와 가위와 보. 간단한 연상법이죠? 바위를 시의 화자로 설정해 각 시어의 색다른 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날이 있지요. 평소대로 했으면 진작 쉽게 풀렸을 가위같은 일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안되고, 원래같으면 입에도 안댔을 음식이 묘하게 당기는. 그런 오묘한 의외의 마음이 드문드문 떠오르는 하루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건 이상하지 않냐'며 자신을 다그칩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가끔은 넘어가세요. 그런 날도 있는거죠.

잘 읽었습니다.


2. 테재앙종신님의 '시시포스'

https://m.fmkorea.com/3148957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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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시시포스들

계속 바위를 굴린다.


아침부터 일어나 바위를 굴린다


해 질때쯤, 정상에 도착한다.

가끔은 힘이 너무 부쳐서,

주위의 채찍질 때문에,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정상에 도착한다


잠시 눈 감는 도시의 시시포스들


다음 날 아침에는

또 바위가 반대편 저 아래에 있다


끝나지 않는 노동의 굴레

도시의 시시포스들은

저마다의 사연들을 가지고

바위를 굴리러 간다


죄 진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존재의 증명같은 것도 아닐테지만,

각자의 바위를 굴리러 간다


도시의 시시포스들

////////

시평: 무가치한 나날을 보내는 현대인의 삶을 시시포스의 바위 신화에 빗댄 시입니다. 발상이 정말 창의적이십니다. 평소 식견이 넓은 사람은 똑같은 단어를 들어도 떠올리는 생각이 다릅니다. 신선한 충격은 바로 거기에서 나오는 거죠.

모든 일에는 가치가 존재합니다. 생각의 가치, 노동의 가치, 운동의 가치, 행복의 가치...이 모든 가치들은 당사자 자아의 실현과 관련이 있습니다. 고된 노동과 머리아픈 깊은 생각과 가혹한 운동은 사람이 가치를 부여해야 의미가 생기는 활동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 하는 일에 의미는커녕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현대판 시시포스가 되는 것이지요.

만약 시시포스가 언덕 위까지 바위를 올려서 어떤 결과를 내었다면, 무언가 성과를 달성했다면 이 신화는 절대 내려오지 못했을 겁니다.

잘 읽었습니다.



3.각시탈레반님의 '벌칙'

https://m.fmkorea.com/3147708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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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민 손은 '바위'

친구들이 내민 손은 '보자기'

머쓱함과 부담감을 뒤로한채

그녀에게 벌칙주를 받으러갔다

빈 잔을 가득채우는 봄꽃 같은 단아함

그땐 그것이 사랑인줄 몰랐다

그땐 그것이 벌칙인줄 알았다

그저 한순간 스쳐가는 것으로 여기며

꿈에 그리던 인연인줄 몰랐다

이젠 그녀를 만날 확률을 준 바위를 쥐면

아련해지는 단풍 같은 그리움

그것만이 내 손에 가득하네.

/////////

시평: 단단한 자연물인 바위가 써내려가는 서정시라, 상당히 풍류있네요. 첫번째 시와 똑같은 가위바위보지만 이건 좀 더 친근합니다.

이 시에서 구성적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위', 이 단어의 의미 변형입니다. 시의 초반부와 후반부의 주먹은 분명 똑같은 주먹이지만 안에 있는 함의가 다르죠?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소재 이동 기법을 글로 옮기면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저 풋풋하기만 한 청록파류 서정시는 이제 그만 나올 때도 됐죠. 감정과 구성 두 토끼를 모두 잡은 시가 이토록 많으니까요.

잘 읽었습니다.

//////////

이번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역시 사물을 주제로 정하면 나타나는 시상이 몇가지로 정해지네요. 이번주에도 마찬가지로 그랬고요.

대학교가 대면수업으로 바뀌어서 또 스케줄이 빡뻑해졌네요. 그래도 여기는 들어올 때마다 즐겁습니다^^

그럼 다음주 베스트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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