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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Dec 06. 2020

초원을 주제로 한 시들

자연, 초원과 녹음

안녕하십니까, J.HAN입니다.

초원을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 되었습니다.

초원은 광활하면서도 자유로운 공간의 대표적인 상징물입니다. 예로부터 희망을 노래하고 바람을 얘기할 때 비유적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였죠. 그 왜 유명한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초원은 들판과 성질이 유사합니다. 떠오르는 이미지에 차이가 조금 있을 뿐. 전자가 녹음이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도 같은 넓이의 대지를 상징한다면, 후자는 좀 더 거칠고 쓸쓸한, 불어오는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는 자연의 모습이 떠오르죠.

올려주신 글들을 읽어보니 창도갤러 여러분들은 초원이 가진 자유와 희망에 중점을 두신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텍스트에서 마치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어요.

그럼 이번주 베스트에 오른 글을 같이 둘러봅시다.

1. 로건님의 '담장 속 초원'

https://m.fmkorea.com/3229775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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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파란 초원 하나를 가지고있다.


내 초원은 너무 작고 초라해

넓게 담장을 둘렀다.


담장에 그림을 그렸다.


내가 가지지 못했던 큰 초원들을 생각하며

내가 가지지 못한 멋진 것들을 그렸다.

그리고 그걸 가진 척 했다.


작은 초원을 가진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했고

큰 초원을 가진 사람들은 나를 그들과 같다고 생각했다.

나를 그렇게 보아 준다는 것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의 초원을 볼때마다 점점 두려워졌다.

내 것이 너무 초라해서, 그들같지 않아서.


그래서 더 높게 담장을 쌓았다.

담장 위에 철조망을 둘렀다.

아무도 볼 수 없게


담장을 더 화려하게 꾸몄다.

인조잔디를 깔고 조화를 심었다.

아무도 알 수 없게


어느날 문득 돌아본 내 진짜 초원은 노랗게 말라가고 있었다.


담장은 햇빛을 막았고 인조잔디와 조화는 숨을 막았다.

담장에 그림을 그리는 동안 풀들은 물을 먹지 못했다.


그렇게 말라버린 초원이 부끄러워 오늘도 담장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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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첫 시부터 양상에 반하는 글이 튀어나오다니... 할 말이 없군요. 변명은 아니지만 그만큼 이 시는 초원에 대해 독자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사람이 각자 품은 초원을 소망에 비유해서 시상을 풀어나갑니다. 화자가 초원을 가꾸면서 점점 느끼는 열등감은 각종 시어, 담장과 인조잔디 등으로 치장하여 꾸밈새를 더했고요. 그리고 본질이 흐려져 마침내 노란색으로 말라버린 초원은 소망에 반하는 감정을 품은 화자의 내면이 파멸하는 결말로 박진합니다.

마지막 행에서 화자는 현실을 부정하며 안 그래도 초원을 마르게 한 원흉인 담장을 더 높게 쌓아올립니다. 진정한 파멸은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했을 때가 아니라 그 내리막길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진가를 발휘하죠.

잘 읽었습니다.


2. 안뇨오오옹님의 '푸른 초원이길 바랐다'

https://m.fmkorea.com/3222318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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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도 지평선 끝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훌훌 털어버리는

푸른 초원이길 바랐다

그 사람과 누워 부드러운 구름과 퍼런 달을 보며 속삭이는

푸른 초원이길 바랐다

알싸한 바람과 비 냄새에 흠뻑 젖어 삶과 청춘을 노래하는

푸른 초원이길 바랐다

무너져 버린 한번 뿐 내 청춘은

오늘도 내일도 

푸른 초원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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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희망이나 소망을 품을 땐 보통 그 상황과 반대되는 처지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보지 못한 자유의 땅, 초원은 그 이상향으로써 역할을 수행합니다.

힘든 지금을 이겨내면 언젠가는 먼지가 들러붙은 아스팔트가 아닌 생명의 박동이 꿈틀대는 초원의 대지를 밟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여유와 회한과 추억은 거기서 만들겠노라.

결국 청춘을 회색빛으로 떠나보낸 화자는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초원을 머리에서 지우지 못했을겁니다. 어느새 초원은 자신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평생토록 한번도 가지 못했던 초원이 오히려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이죠. 아이러니한 시상입니다.

그렇기에 화자는 삶에 미련은 남을지언정 후회는 남기지 않을겁니다. 초원을 위해 달려온 생이라는 사실은 자기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잘 읽었습니다.



3. Lata님의 '나침반을 잃어버린 순간'

https://m.fmkorea.com/321727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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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을 잃어버린 순간

초원은 사막처럼 느껴진다


걷는 곳이 곧 앞인

초록색 사막


지나간 길을 되돌아 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을 땅

빛을 벗 삼자


텅 빈 공간이지만

혼자 있는 게 아님을

누군가 밟은 길임을

알기에


마음 속 그림자가 커질 때는

가끔 보이는 나무 그늘과의 대화를

밤이면 드리워지는 어둠에 안식을


그리고 날이 밝으면 다시 앞으로

초원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하지만 본질은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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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모르는 곳에서 길을 잃으면 그 전까지 좋은 점으로 여겼던 광활함은 낭패가 됩니다. 여유를 가질 턱이 없으니 그 충격은 다른 때보다 몇배는 크겠죠.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자연을 느끼고 주변을 돌아본다면?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조막만한 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대지의 맥동과 하늘의 화폭, 바람의 속삭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봅시다. 그럼 길이 열린다고, 그보다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시는 말합니다.

마지막 연의 '본질은 푸르다'는 힘든 상황에도 초원과 같은 푸르름으로 우리의 탁해진 마음 속을 닦아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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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시상의 스펙트럼이 넓으면 전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베스트를 작성할 때마다 어디론가 미지의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거든요. 시나 소설을 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다음주에도 이런 여행길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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