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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Aug 10. 2020

가보고 싶은 영화 속 장소(feat. 싱스트리트)

더블린은 어떤 곳인가

여러분들은 음악을 좋아하는가? 아니, 질문을 바꾸겠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인생에 견디기 힘든 난관이 닥쳤을 때 지탱할 수 있었던 무언가가 있었나?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20년 남짓한 세월을 살아온 사람에게 그 정도의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만약 닥쳤다 하더라도 그런 시련이 자신을 위협하기 전에 주변의 어른들이 그것을 막아주기도 하니 말이다.


내가 오늘 소개할 영화 속 장소는 기댈 곳 없는 청춘들이 음악에 기대어 인생의 캔버스를 새로 직조했던 곳이다. 바로 영화 <싱 스트리트>에 등장하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이다. 영화 속 장소를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 내용을 간략히 알려주지 않을 수 없는데, <싱 스트리트>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85년, 아일랜드는 큰 경제공황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적잖은 가정들이 무너지고 수많은 젊은이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아일랜드를 떠나 영국에 이민을 가는 형국이었다. 수도 더블린에 사는 이 영화의 주인공 '코너'의 집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정이 어려워진 코너의 부모님은 코너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싱 스트리트(SYNGE STREET)에 있는 불량 학교  '싱 스트리트 크리스천 브라더스 스쿨'로 전학을 보낸다. 덩치도 작고 성격도 드세지 못했던 코너는 등교 첫날에 끔찍한 하루를 보냈다. 가톨릭 학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재미로 패싸움을 하는 학생들, 수업 시간에 담배를 피우는 동급생, 그걸 방관하는 교장, 라틴어 수업 시간에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선생 등 모두가 코너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코너는 검은 신발을 신고 다녀야 하는 교칙을 어겨 맨발로 교내를 오가야 했고 쉬는 시간에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춤을 추고 초콜릿을 빼앗겨야 했다. '대런'이라는 친구가 생긴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대런과 코너는 하교 중 골목길에서 담배를 입에 문 라피나를 발견한다. 첫눈에 반한 코너는 모델 일을 한다는 그녀에게 자신들은 밴드를 하고 있다며 뻥을 치고, 뮤직비디오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한다. 첫사랑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꽤 큰 거짓말을 한 코너는 주변에 있는 대런의 친구들을 모아 싱 스트리트(sing street) 라는 밴드를 만든다. 라피나와 찍은 뮤직비디오와 처음 만든 자작곡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한때 음악을 전공했던 형에게도 칭찬을 듣게 된다. 그리고 코너에게는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 허구한 날마다 집에서 싸워대는 엄마와 아빠 밑에서 우울해하던 소년은 점점 인생의 적지 않은 부분을 음악으로 채워나가게 된다. 계속해서 새로운 곡들을 만들고, 그에 맞는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며 라피나와 코너는 가까워지게 된다. 중간에 라피나의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사실과 라피나가 얼마 있으면 런던으로 떠난다는 것을 그녀에게 들은 코너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둘의 사이는 더더욱 깊어져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간 바다에서 마침내 키스까지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코너의 엄마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고, 코너를 비롯한 자식들은 따로 살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코너의 머릿속에는 음악과 라피나가 있었다. 걱정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중간고사 기간에도 노래를 만들며 코너와 싱 스트리트 팀원들은 얼마 뒤에 있을 학교 축제를 준비한다. 신곡 'Drive It Like You Stole It'의 뮤직비디오에도 라피나를 넣고 싶었던 코너는 그녀에게 다음 주 토요일에 촬영할 거라며 일러준다. 그러나 뮤직비디오 촬영 당일 날, 라피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런던으로 떠나고 만다. 결국 싱 스트리트는 라피나 없이 뮤비를 찍게 된다. 라피나가 떠나 삶의 활력을 잃은 코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된다. 라피나는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았다고 말하며, 코너를 남자로 여기지 않는 언행을 보인다. 그에 실망을 느낀 코너는 자신의 마음을 담은 노래, 'to find you'를 작곡해 테이프에 담아 그녀의 집 우체통에 넣어둔다.


마침내 다가온 축젯날, 싱 스트리트는 그동안 갈고닦았던 실력을 발휘하며 온 학교를 뜨겁게 만든다. 교장에 대한 불만과 학교생활을 하며 느꼈던 불편함을 담은 노래 'Brown shoes'로 교장의 얼굴을 시뻘겋게 만들기도 했다. 한편 코너가 준 테이프에 담긴 그의 세레나데를 들은 라피나는 마침내 마음을 정하고 코너의 학교로 달려간다. 공연이 끝나고 재회한 둘은 영국 런던으로 떠날 결심을 세운다. 운전면허가 있는 형에게 항구까지 데려다 달라는 코너, 형은 '런던에 아는 사람은? 또 돈은 있냐?' 라고 물었고 코너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라피나는 포트폴리오, 난 데모테이프랑 비디오뿐이야'. 코너의 눈빛을 본 형은 라피나와 코너를 항구까지 데려다준다. 항구에 있던 할아버지의 작은 배를 타고, 안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헤쳐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싱스트리트>의 감독은 <비긴 어게인>으로 유명한 존 카니 감독이다. <싱스트리트>는 그가 말하길 자신의 색이 가장 많이 들어간 영화라고 한다. 실제로 그의 출신이 아일랜드이기도 하고, 음악을 주제로 하는 평범함 역시 존 카니 감독 작품답다고 할 수 있는 영화였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싱스트리트>를 '사랑스러운 범작. 사내아이들에게 락밴드란.'이라는 한 줄로 평했다. 영화의 구성은 평범하지만, 소년들의 순수함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잘 녹여냈다는 평가다.


영화 내에 등장하는 지역인 아이랜드 더블린은 리피 강 하구에 위치해 남북으로 도시를 끼고 있다. 전체 인구의 10%가 사는 아일랜드 최대의 도시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아일랜드는 예전에 경제불황을 겪은 전적이 있다. 가축, 맥주, 농산물들이 주 생산품인 아일랜드는 보수적인 정책과 이민으로 인한 인구 유출, 경제 불황이라는 악순환으로 경제의 침체를 겪었었다. 다행히 90년대 이후 유럽연합에 가입한 뒤 경제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내가 더블린에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역사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성공담을 보거나 들을 때 대부분 성공한 모습을 중심적으로 여긴다. 그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성공하기 전의 초라한 모습은 성공한 뒤의 화려한 자태를 더 빛나게 해주는 '배경'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이 영화가 조명을 비춘 1985년의 침체된 더블린에 애착을 느꼈다. 젊고 힘이 넘치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는 10~20대의 모습이 영화 속에 너무나도 잘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싱 스트리트>에는 코너를 때리는 나쁜 반 친구도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 친구는 어떤 처벌이나 보복도 받지 않는다. 바람을 피운 주인공의 어머니나 양아치 아들을 학대하는 부모도 마찬가지로 어떠한 응보를 받지 않는다. 그들 모두가 당시의 아일랜드 사회가 만들어낸 불행의 피해자라는, 감독 나름의 주제 의식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아이는, 소년은 대체 무엇에 기대어야 할까. 이런 상황을 의연하게 대처하는 이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러지 못한 이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마땅치 않다. 그 나이대 소년에게는 그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스트리트(SYNGE STREET)에서 나고 자란 이 소년들은 싱스트리트(Sing street)가 되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들의 부모들조차도 포기한 저주받은 세상 속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소년들이 자라서 청년이 된 더블린은, 아일랜드는 침체기를 딛고 일어나 발전했다. 그리고 십몇년이 지나 더블린은 아일랜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젊은이들이 영국으로 떠나기 급급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 아닌가.


<싱스트리트>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마법처럼 눈앞으로 찾아왔다. 나도 한때는 내 앞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파고 있는 우물이 어쩌면 무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쳐대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글쟁이가 되면 먹고살 수나 있을까? 나는 장남인데,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와 같은 고뇌를 반복했었다. 그러고 있던 와중에 이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 코너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돈 한 푼도 없이 런던으로 향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말리고 싶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철없고 허무맹랑한 청춘영화라고 웃어넘기기에는 이미 가슴 깊이 울고 있는 내가 있었다. 현시대의 청춘은 젊음이라는 잠재가치를 담보로 너무 많은 부담을 짊어진다. 그런 부담을 훌훌 털어내는 소년들의 모습이, 화면 밖의 나에게는 태양보다도 더 빛나 보였다.

소설가 이외수가 한 말이 있다.

"제가 생각하는 기인의 행동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글이나 그림, 음악을 한다고 하면 다 말립니다. 춥고 배고프다 이거지요. 저는 30년 동안 글을 쓰면서 제 마누라와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이건 기인 중의 기인이지요."


<싱스트리트>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춥고 배고플 자신이 없어서 현실에 타협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영혼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육체의 허기는 견딜 수 있었다. 아니면 까짓거 기인이 되어버리자고도 생각했다. 나는 그때 인간으로서의 큰 한 걸음을 내디뎠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영화를 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사랑은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음악을 주제로 한 성장영화이지만 그와 동시에 첫사랑을 다룬 로맨스 영화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사랑의 비중이 다른 요소들보다 더 크다고 할 수도 있겠다. 코너는 첫사랑과 엮이기 위해서 음악을 시작한 것이니 말이다.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코너도 부러웠지만, 그 옆에 첫사랑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내심 더 부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해 준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이자 선물인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나는 30살이 되기 전에 더블린으로 여행을 갈 것이다. 만약 그때 혼자라면 조용히, 과거의 내 모습을 비춰보며 갔다 올 생각이지만, 혹시 나와 함께 걸어줄 짝이 있다면 아일랜드의 청춘들이 조국의 미래를 그린 것처럼 나도 그녀와 함께 두 사람의 미래를 그려내기 위한 여행길에 오르고 싶다.


이제 글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삶에 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성장영화가 그렇듯이, <싱 스트리트> 역시 보는 관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참으로 직설적이면서도 대답하기 어려운 난해한 질문이다. 나는 이 물음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없는 게 아니라, 정답이 너무 많아서 어느 한 형태를 정답으로 정의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코너와 라피나는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를 작은 배 하나로 건너간다. 건너가다가 폭풍을 만나 물을 흠뻑 뒤집어쓰기도 하고, 큰 유람선에 부딪힐 뻔한 위기도 겪는다. 런던으로 넘어간 두 사람 앞에 희망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더 힘든 일이 일어났으면 일어났지, 코너와 라피나는 또 다른 시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역설적으로 이런 장면에서 희망을 필름에 담아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며 희망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해준다.


물론 존 카니 감독의 메시지가 인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시련을 겪지 않길 바라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정답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함께 헤쳐나가는 것이 코너와 라피나가 내놓은 인생의 정답이라면 그것은 정답이다. 나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나만의 정답이다.

그리고 <싱 스트리트>와 더블린은 그런 정답을 찾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더블린에 가보고 싶다. 이런 영화를 만든 감독을 배출해낸 곳은 과연 나에게 어떤 기분을 안겨줄까? 역사가 어떻고 인생이 어떻고를 떠나서 기쁜 마음만이 가득하다. 부푼 기대를 가슴에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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