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펨코리아의 '창작 도서 갤러리'에선 일주일마다 관리자가 주제를 하나 선정한다. 그러면 갤러리 이용자들은 그걸주제로 게시판에 글을 쓰는데, 그중에서 좋은 글을 뽑아 베스트에 선정한다.
안녕하십니까, FCB9입니다. 휴가철이라 가게 일이 바쁜 관리자는 이렇게 모두가 잠이 든 새벽에 타자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풍선이었죠. 밤에 피곤한걸 잊으려 풍선껌을 씹다가 떠오른 주제라고 여기서 밝힌다면 여러분들이 조금 실망하실 것 같네요. 그래도 뭐, 이게 사실인걸요. 때론 가볍게 튀어나온 사유가 깊은 고뇌의 산물을 뛰어넘기도 하잖습니까. 이번 주제 풍선도 그랬길 바랍니다.
풍선은 '동심'을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어릴때 심심하면 불어서 갖고 놀았던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장난감. 풍선이 가지는 실질적인 의미는 이게 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위로 던지거나 쳐서 공놀이를 했을뿐 그 시절의 어렸던 우리는 풍선을 동심의 자세로 대했습니다. 그리고 다 큰 다음에야 비로소 깨닫는거죠. 풍선은 어린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거였구나. 동심을 상징한다는 말은 곧 유치하다는 소리도 됩니다. 다시 말해 풍선의 표면적인 이미지, 그러니까 사람이 흔히 풍선하면 생각하는 것은 동심, 유년기 그 자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풍선을 주제로 글을 쓰면 노소를 막론하고 비슷한 양상이 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아이는 아이의 생각대로 풍선을 글로 쓰니까 저절로 동심이 담기고(자각하진 못하겠지만요), 어른은 어른대로 동심을 구현하려 노력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몇몇 어른들은 생각과 관점을 바꿔서, 시 안에 있는 풍선의 의미를 변형하기도 합니다. 제가 이번에 뽑은 베스트는 바로 그런 유형의 글입니다.
시평: 위에서 말한 변형의 첫번째 예시입니다. 원래 풍선이 가지는 동심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 글같지만 사실 이 글은 거기에 약간의 변주를 가했습니다. 동심을 관망하는 태도이긴 하지만 동심을 주체적으로 쓰지 않고 도구로써 떠나간 화자의 어린 시절을 애상적인 어조로 추억하는 데에 쓰고 있습니다. 구성적인 측면에도 신경을 써 '조카'라는 동심을 가진 존재를 서두에 등장시켜 화자의 행동에 자연스러움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위 글과 비슷한 내용의 시도 있었는데 유독 이 시가 눈에 띄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안에 담긴 의미와 시의 내용, 두 가지 요소가 적절히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시평: 풍선의 변형 그 두번째입니다. 이 글은 어른이 된 사람이 풍선을 만났을 때 나오는 생각을 텍스트로 생생하게 옮겨 적은 듯합니다.
조금 외람된 얘기지만 제 얘기를 잠깐 하고 가겠습니다. 전 풍선을 어릴적에 아주 좋아했습니다. 놀이공원에 처음 갔던 5살 때(기억 상으로는 처음..) 놀이기구보다 더 눈에 들어왔던 게 풍선이었습니다. 화려하고 이쁜 색깔의 구체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좋았거든요. 그리고 제가 풍선을 입으로 처음 불어보았던게 6살 때 어린이집에서였습니다. 입으로 크게 크게 불어서 선생님께 묶어달라한 풍선은 위로 두둥실 던지자마자 저를 실망시키고 말았습니다. 바로 아래로 떨어졌으니까요. 나중에 가서 그게 헬륨과 입김의 차이란걸 알게 되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이미 제 마음의 풍선은 바람이 빠졌는데요.
이 시를 읽고 그 때 느꼈던 실망감이 상기되었습니다. 물론 시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지만 풍선에게 느낀 '실망감'이란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은 것 같습니다.
생각팔이님의 시는 항상 제 생각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어찌보면 닉값을 제대로 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쓰다보니 시평이 아닌 그저 고백하는 투의 줄글이 되어버렸네요. 사실 이 시는 시평을 하기보단 풍선에 '실망'을 담았다는 점을 고평가해야 하는 글입니다.
시평: 풍선의 변형 마지막 세번째입니다. 첫번째 글이 동심의 변형, 두번째 글이 사라진 동심에 대한 실망이었다면 이 글은 제 3의 감정을 싣고 왔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시어들은 다 저마다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몇몇 시어들만이 가지는 특별함이 있는데, 풍선도 그 시어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들도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우셨을 겁니다. '상승감을 주는 시어'. 새, 연기, 오르막길... 풍선은 상승감도 상승감이지만 산뜻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다른 시어와 궤를 달리합니다.
우리는 풍선을 실수로 놓치면 금세 흥미를 잃습니다. 저 높이 날아가는 풍선을 조금 지켜보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좀 가다 보면 터지겠네'하고 관심을 끄고 말죠. 솟아오르는 풍선이 어쩌면, 어쩌면 우리의 생각보다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르는데도요.
결국 터진다할지라도 풍선한테 생각이 있다면 풍선은 절대 두려워하지 않을겁니다. 평생을 쭈그려진채 살다가 마침내 몸을 한가득 부풀리게 된 풍선은 광활한 하늘로 올라가고픈 마음 뿐입니다. 비록 자길 구해준 인간이 절대 못할거라며 관심을 끊어도요. 설령 두려운 마음이 들어도 풍선이 굳힌 결심에 흔들림은 없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하늘은 완전히 자기 것이 되니까요. 어두컴컴하고 답답했던 포장지에서 일생을 보내던 풍선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가는 겁니다.
이 시평은 위 시에 나온 풍선의 속내를 제가 지레짐작으로 추측한 것입니다. 길게 썼지만 풍선의 마음이 다들 이해가 되시죠? 원래 사물에 의지를 부여해서 의인화하는 시를 읽을 땐 수준 높은 과몰입이 필요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 풍선이 부럽네요. 자신의 모든 걸 다 걸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자세도 그렇고, 목표를 끝끝내 이룰 미래도 그렇고요.